조선시대 왕의 남자 내시 들이 잠든 곳 내시네 산 서울 초안산

조선시대 왕의 남자 내시 들이 잠든 곳 내시네 산 서울 초안산

조선시대 왕의 남자 내시 들이 잠든 곳 내시네 산 서울 초안산

조선시대 왕의 남자 내시 들이 잠든 곳 내시네 산 서울 초안산

바다의 낭만을 담은 울산 전지적 낭만 시점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자리한 초안산(114m).

겉으로 보기에는 집 근처 동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제법 우거진 수풀 사이로 여러 갈래의 길이 이어진다.

덕분에 동네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초안산 곳곳에 산재해 있는 조선시대 사대부·내시들의 묘를 살펴보며 ‘역사 공부’까지 더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최고 권력자 왕의 최측근 ‘내시들’이 모여 잠든 ‘내시네 산’, 조금은 오싹한 초안산을 소개한다.

초안산으로 들어서기 전, 오늘의 주인공 ‘내시’들의 삶에 대해 살펴보자. 내시라.

‘왕’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거세된 왕의 남자. 조선의 궁에는 왕을 중심으로 왕의 여자 ‘내명부’와 왕의 남자 ‘내시부’가 존재했다.

왕의 후궁들과 궁녀가 속한 ‘내명부’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소개된 적이 제법 많다.

그에 비해 ‘내시부’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내시부’, 사전을 찾아보면 ‘조선시대 궁중 안의 식사 감독, 왕명의 전달 등을 맡은 관청’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실무 담당자는 모두 환관이 임명됐으며 내시부의 으뜸 벼슬은 왕의 식사와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종2품 ‘상선’이었다.

종2품은 조선시대 제4위 품계로 그동안 ‘내시’하면 떠올리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권력을 보여준다.

물론 정1품(빈)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왕의 여자’들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기도 있지만 왕의 최측근으로 머물던

‘왕의 남자’들도 만만치 않은 권세를 누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시부의 정원은 140명. 그들은 궁의 음식과 청소 등 궁중 살림살이를 담당하며 왕과 왕비 등 왕족을 모신 유일한 남자 궁인이었다.

이들은 거세당해 남성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왕의 남자’로 권세를 지니게 된 이들은 혼인을 하고 양자를 들여 대를 이었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내시들의 혼인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상소가 이어졌지만 왕실의 비호 덕분에 내시들도 ‘혼인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좋았던 시절도 잠깐. 내시들이 잠들어 있는 분묘군은 처참하다. 양자를 들여 대를 이었건만 언젠가 왕의 옆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흉측하다.

주소는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산8-3번지.

월계고등학교 운동장에 자리한 비석골 근린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묘지석물을 살펴보면 더 내실있는 ‘초안산 역사여행’이 가능해진다.

비석골 근린공원에는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 인근 석물들이 모여있다.

복두공복·금관조복 차림의 문인석과 망주석, 동자석, 상석, 비석 등이 실물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멀리서도 ‘묘’를 알아보는 역할을 하는 망주석은 묘 앞에 세우는 돌기둥을 뜻한다.

또 자그마한 키에 상투 튼 모습이 귀여운 동자석은 학문적 업적은 뛰어났으나 벼슬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나 당하관 이하의 무덤 주인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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