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겨울이 되면 거제도 어부의 통발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12월~3월 산란기를 맞아 심해에서 연안으로 올라온 ‘꼼치’ 또는 ‘물메기’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물메기는 ‘물텀벙’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생선이 잡히면 도로 바다에 던져져 “텀벙”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인데, 물메기탕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이 속설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조라마을 포구, 바다와 나란히 횟집과 식당이 즐비하다.
제철인 물메기가 수족관에서 짧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축구 선수 종아리처럼 굵은 몸통과 메기처럼 넓은 입에서 대어의 풍모를 풍기지만, 눈은 어찌나 작은지
이 녀석은 배고프면 동족의 알을 먹기도 하는데, 아마 자기네 알인지 분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고 작은 카메라 화면으로 보니 꼭 올챙이 같다.
이 생선이 보여줄 맛이 궁금하다.
수족관에 살아있는 물메기를 넣은 집은 하나같이 ‘물메기탕’이 써진 종이를 입간판 주위에 최소 한 장은 붙여 놨다.
물메기는 4계절 내내 잡히는 어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집에 들어가 물메기탕을 주문했다.
거제도 하면 대구로 축제도 하는 곳이기에 주인장에게 물었다.
“대구탕하고 물메기탕 중에 어느 게 더 맛있어요?” “대구탕도 맛있고 물메기탕도 맛있지 우리 집 대구탕은 더 맛있고” 주인장 입담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결 편안해지면서 혼자 왔는가?, 어디서 왔는가? 연이어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흔쾌히 취재협조를 수락하신다.
수족관 유리에 발판을 붙이고 있던 녀석을 채로 건져내자 두 번 팔딱거리는데, 주인장 팔이 흔들릴 정도로 힘이 세다.
거제의 물메기탕은 김치나 고춧가루 없이 맑게 요리하기 때문에 물메기의 신선도가 중요하단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인 도마 위에 물메기를 얹고 손질을 시작한다.
머리와 몸통 사이에 칼집을 내고 순식간에 껍질을 벗기자 반투명하면서 뽀얀 살이 드러난다.
마치 젤리처럼 탱탱한 것이 살아있는 물메기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어서 머리를 자른 후 내장을 빼낸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물메기는 먹음직스런 4~5토막 탕거리로 바뀌어있다.
흐르는 물에 씻긴 후 미리 무를 넣어둔 끓는 육수에 넣는다.
물메기와 술의 관계가 알면 알수록 참 재밌다. 물메기의 살은 연하기 때문에 회로 먹기가 어렵다.
그래서 물메기를 반건조해 먹기도 하는데, 이게 술안주로 제격이란다.
물메기, 술맛 돋궈놓고 나중에 달래주기도 하는 ‘병 주고 약 주는’ 녀석이다.
일례로, 강원도에서는 물메기탕이 맛없다고 하면 “아직 술이 덜 취했구먼”이라고 한마디 듣는다고 한다.
약한 불에 끓고 있는 물메기탕과 경남 거제의 찬이 놓인 한상이 차려졌다.
물메기탕을 국자로 크게 한번 덜어낸 후, 지느러미와 뼈를 발라내니 하얗고 통통한 살이 먹음직스럽다.
젓가락으로 집어보지만 이내 부서지고 만다. 숟가락으로 건더기와 살점을 크게 떠서 한입 물었다.
조금은 생소한 식감과 맛이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딱히 인상적으로 남는 포인트가 없다.
비린 느낌도 전혀 없이 고추 몇 조각이 우려진 미미한 칼칼함이 뒷맛에 남는다.
왜 맑게 끓이는 지, 살아있는 신선한 생선을 고집하는지 알 것도 같다.
물메기 특유의 맛을 살리려면 양념을 최소화해야했던 것이다.
이어서 먹다 보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기 시작해 몸에 기분 좋은 온기가 돈다.
물메기탕이 시원한 맛으로 유명한 이유를 2접시 정도 비워보니 알 수 있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후릅 마시듯 먹는 사이에 냄비는 금방 허전하게 변했다.
먹는 양에 비해 포만감도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허전하게 남은 냄비의 국물은 허전한 것이 아니다.
국물에는 바스러진 물메기살과 특유의 풍미가 가득 고여 있다.
국물을 퍼서 밥과 말아 드시라. 조금 맛이 밋밋하다 싶으면 김치나 고춧가루를 넣으면 밥 두 그릇은 금방이다.
이런 시원한 맛이 매력임에도 물메기라는 생선과 물메기탕이란 음식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음식대열에 끼진 못한 듯하다.
얼마 전 예능 프로에서 ‘꼼치’라는 말을 출연자가 은연중에 내뱉는데,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생선인지 찾아보는 상황이 방송되기도 했다.
물메기 특유의 식감과 흐물거리는 살점이 일부 사람에겐 거부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본 기자도 어렸을 땐 국물은 좋아했지만, 살은 쉽게 먹지 못했다.
그럼 주위 어른이 “아직 어려서 맛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좋아하는 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