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불로동 고분군에서 단산지 가는 길
대구 불로동 고분군에서 단산지 가는 길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작별의 계절이다.
마음은 외롭고 머리는 복잡하다면 길을 나서보자. 팔공산 올레길 ‘단산지 가는 길’은 작별과 가장 어울리는 길이다.
천년의 무덤을 지나고 잔잔한 호수를 돌고 돌아 호젓한 숲길의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면 속절없이 쓸쓸한 풍경이 불쑥불쑥 다가와 위로가 된다.
떠나가는 계절과 저무는 시간이 오히려 아름다운 길, 그 길 끝에서 미소 짓는 나를 만난다.
대구에도 올레길이 있다. 2008년 대구올레 1코스 ‘금호숲길’이 개장되고 나서 대구올레 2코스와 팔공산 올레 8개 코스가
연이어 생겨나면서 4년에 걸쳐 모두 10개의 길이 완성되었다.
2012년에는 8개 코스를 연결하는 4개 코스가 개발되어 팔공산 올레가 하나의 길로 이어졌다.
산과 들, 마을길과 농로, 계곡과 숲은 물론 무궁무진 숨겨진 문화유적지까지 아우르는 팔공산 올레길은 어느 길을 택해도 걷는 즐거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보석 같은 길이다.
그중 6코스인 ‘단산지 가는 길’은 가을이 떠나가는 쓸쓸한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다.
1500년 세월을 넘나드는 고대 국가의 무덤 사이를 걷고, 가늘어진 가을 햇살이 부서지는 잔잔한 호수를 따라 걷는다.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리는 호젓한 숲길이 쓸쓸함을 넘어 아름답게 다가온다.
길의 시작은 불로동 고분군이다.
불로동(不老洞)은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가 이 마을에 이르렀는데 어른들은 다 죽고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금호강과 팔공산을 곁에 둬 비옥하고 살기 좋은 터였던 불로동에는 고대 국가의 무덤인 고분군이 있다.
지름 20m가 넘는 거대한 것부터 일반 무덤만 한 것까지 모두 214기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4~5세기경 이 일대에 살던 부족의 지배세력 고분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고분군 주차장 오른쪽에 작은 연못을 끼고 데크가 놓여 있다.
데크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무덤들 사이로 들어서게 된다.
길은 평지와 다름없이 순하고 고분들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낸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1500년 세월을 넘나드는 무덤 너머로 도시의 빌딩 숲이 펼쳐진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아득한 풍경은 문득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불로동 고분군이 가장 매력적인 시간은 해 질 무렵이다.
부드러운 봉분이 황금빛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야말로 떠나감과 마주 서는 편안한 시간이다.
생성과 소멸의 시간을 넘어 도시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고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가 나오고 영신초등학교를 지나 봉무공원에 닿는다.
봉무공원으로 들어서면 넓은 단산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느 쪽으로 걸어도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건 마찬가지지만,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6코스를 이어 걷게 된다.
공원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나비생태원이다. 학습관, 생태원, 영상관, 사육장 그리고 무궁화동산으로 꾸며져 있다.
165㎡ 규모의 온실인 생태원은 사계절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고, 그 위로 20여 종의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다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즐거운 공간이다.
나비생태원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오솔길이 시작된다. 호수를 바짝 끼고 걷는 길은 숲이 우거진 흙길이다.
호수는 단조로운 둥근 모습이 아니라 갈지자처럼 들쭉날쭉해서 지루할 새가 없다.
깊숙이 들어간 저수지 모퉁이에선 물에 잠긴 나무가 주산지 풍경을 선사하고, 삼삼오오 모여 햇살을 가르는 청둥오리들도 반긴다.
중간중간 놓인 벤치는 도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편안한 풍경을 감상하며 쉬어가기에 좋다.
6코스는 단산지 중간 지점에서 만보산책로로 이어진다. 호수 풍경에 빠져 이정표를 놓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