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에서 만나는 조선 왕릉의 역사
구리 동구릉에서 만나는 조선 왕릉의 역사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왕조 500여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왕릉이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건원릉을 조성한 뒤 능이 하나씩 늘어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 수릉을 조성하면서 동구릉이 되었다.
동구릉은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4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성되다 보니 왕릉이 변하는 과정이나 문석인과 무석인, 병풍석과 혼유석 등 조형물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봉분 하나에 한 분을 모신 단릉,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합장릉, 봉분이 2기인 쌍릉, 정자각 하나를 중심으로 봉분이 다른 언덕에 있는 동원이강릉 등 형태도 다양하다.
건원릉과 휘릉, 혜릉은 단릉이고, 수릉은 합장릉, 원릉과 숭릉은 쌍릉, 현릉과 목릉은 동원이강릉이다.
경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봉분 3기가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이다.
먼저 동구릉역사문화관에 들러보자. 조선 왕릉과 동구릉에 대한 정보가 전시되었고, 조선 왕릉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역사문화관을 둘러보면 왕릉과 조선의 역사가 좀더 쉽게 다가온다.
역사문화관에서 나오면 동구릉의 유일한 합장릉이자, 추존 문조의 능인 수릉을 가장 먼저 만난다.
문조는 조선 23대 순조의 아들로 22세에 요절했다.
학문과 예술 분야에 재능이 뛰어나 효명세자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 이영(박보검 분)이 바로 효명세자다.
수릉에 이어 만나는 현릉은 조선 5대 문종과 현덕왕후가 잠든 동원이강릉이다.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첫 번째 능으로, 선대의 능보다 검소하다.
동구릉을 대표하는 능은 건원릉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의 능이고, 조선 왕릉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건원릉은 규모가 크고 조형물도 웅장하다.
봉분 위로 거칠게 자란 억새가 인상적인데,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를 모신 동원이강릉이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목릉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요?”라고 물었는데, 한 사람이 “동원삼강릉이오”라고 해서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고 한다.
동원이강릉은 다를 이(異)에 언덕 강(崗) 자를 써서 정자각을 중심으로 다른 언덕에 조성된 능을 말하는데,
목릉이 세 언덕에 봉분이 있고 다를 이(異) 자를 두 이(二)로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생긴 일화다.
건원릉 왼쪽으로 휘릉을 지나 원릉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가 잠든 곳이다.
원래 17대 효종의 능이 있던 자리인데, 석물에 틈이 생겨 여주 영릉으로 옮기면서 원릉으로 조성했다.
원릉에서 나오면 삼연릉인 경릉, 단릉인 혜릉, 쌍릉으로 조성된 숭릉이 차례로 이어진다.
동구릉에 잠든 왕과 왕비들은 조선 최고의 위치에서 나라를 좌지우지했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지극한 사랑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살아서는 뜻대로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죽어서는 그러지 못했다.
건원릉의 태조는 계비 신덕왕후 곁에 묻히길 원했으나 건원릉에 홀로 남았고, 영조 또한 정비 정성왕후가 있는 홍릉에 묻히길 원했지만 계비 정순왕후와 함께 원릉에 잠들었다.
가장 행복한 왕을 꼽으라면 헌종이 아닐까 싶다. 정비 효현황후, 계비 효정황후와 나란히 경릉에 잠들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