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국립공원을 걷다 동학사에서 보낸 가을 편지
계룡산국립공원을 걷다 동학사에서 보낸 가을 편지
바야흐로 가을이다. 해마다 오는 계절이건만, 서늘한 바람이 불 때면 들떴던 마음도 문득 차분히 가라앉는다.
누구라도 무시로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누구는 가을을 탄다고 하고, 누구는 추남추녀(秋男秋女)가 되어 가을을 만끽한다고도 한다.
천천히 계절을 걸으며 나를 돌아보는 여행, 오늘은 계룡산으로 간다.
오르기도, 쉬기도 좋은 계룡산국립공원
‘계룡산 도사’라는 말이 친근하게 들릴 정도로 계룡산은 그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때때로 이곳 계룡산에 발길을 두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산세만 봐도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질 만큼 좋은 기운이 가득 서려 있는 산이다.
국립공원이기도 한 계룡산은 동학사뿐 아니라 갑사와 신원사 등의 절을 품고 있지만, 이번에는 동학사 쪽으로 걸음을 뗀다.
자동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좋다.
계룡산을 거슬러 트레킹을 하자면 차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차가 주차된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계룡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지만 돌산인 데다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갔다가 출발점으로 다시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주나 대전에서 버스를 타면 동학사 입구에 쉽게 닿는데, 공주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오후 4시 45분에 일찍
끊기지만 대전에서 동학사로 가는 시내버스는 저녁까지 꽤 많은 편이다. 국립대전현충원 쪽에서 가깝다.
오후에 출발해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하고 싶다면 동학사 아랫자락의 계룡산 온천과 24시찜질방을
이용해 피로를 풀고 가볍게 하루 묵어 갈 수도 있다. 다양한 숙박 시설도 몰려 있다. 매표소와 멀지 않은 곳에 약 20동의
텐트가 들어가는 아늑한 계룡산오토캠핑장도 있어 가을날의 캠핑과 산행을 두루 즐기기에도 좋다.
그렇게 슬렁슬렁 걷다 보면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등 몇 개의 작은 절을 지나 어느새 동학사다.
동학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동학사에는 승가대학인 동학 강원이 있는데, 이곳은 운문사 강원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힌다.
724년(신라 성덕왕 23년)에 지어진 동학사는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동학사(東鶴寺)라 지었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을 정립한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셔 동학사(東學寺)라 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조선 세조 3년부터는 단종을 비롯해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김종서, 사육신 등을 모셔 제를 지낸 절로도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런 의미 있는 고찰이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대 이후 중건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은 출가하는 행자가 많지 않다지만, 이곳에 오니 여리고 풋풋한 어린 비구니들이 얼핏얼핏 눈에 띈다.
이렇게 어린 여승들이 한곳에 모여 인생 공부를 하고 불교 공부를 하고 도를 논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애틋하고 기특한 게 아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학사 대웅전에서 삼배(三拜)를 해본다.
삼배는 원래 몸과 입과 생각을 다 바친다는 뜻에서 세 번 절하는 것이라지만, 오늘은 세 번 절을 하며 산과 신과
나 자신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몸과 마음도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불상에 하는 절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절이다.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뜻에서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