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를 감성 청주 터무니
가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를 감성 청주 터무니
요즘 SNS나 광고를 보면 “사세요!” 등 뭔가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멘트를 많이 들어볼 수 있다.
그만큼 홍보하는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말이 남용되다 보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듣기에도, 하기에도.
그런데 이 글에서 소개할 곳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거두절미하고 “가세요!”라고 추천하고 싶다.
필자의 비루한 표현력으로는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해도 이곳의 멋짐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저 가보라고 할 수밖에.
문화재생공동체 터무니는 방문하기 전까지 베일에 싸인 곳이었다.
가보기 전 사전 조사 차원에서 인터넷에 ‘터무니’라고 검색을 해봤는데, ‘터무니없다’라는 관용구만 잔뜩 등장했다.
어렵게 어렵게 문화재생공동체라는 키워드를 찾아서 문화재생공동체 터무니라고 검색해 봤다.
그런데 공식 홈페이지 같은 곳도 안 보이고, 블로그에 적힌 후기 몇 개만 찾을 수 있었다.
대충 추억 체험하는 곳인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 궁금증이 너무 많이 남았지만, 에라 한번 가보자며 무작정 떠났다.
위치마저 미스터리한 이곳. 평범한 공동주택들 사이에 혼자서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대문에 걸려 있는 ‘OPEN’ 네온사인 중 E 자만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는 것마저 독특하다.
작은 숲처럼 우거진 푸른 나무와 그에 대비되는 새빨간 우체통, 장독대, 뜀틀 등 옛날 물건에 철사로 만든 마네킹과 돌사자상.
가끔 레트로 콘셉트의 공간에 가면 볼 수 있는 옛날 소품들과 어릴 적에 익히 보았던 물건들이었는데,
이렇게 배치된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요즘 젊은 세대가 흔히 쓰는 말처럼 ‘힙하다’.
건강해 보이는 인상에 앞치마와 일바지를 입고 등장한 이수경 대표는 무심하면서도 친절한 말투로 편히 둘러보라고 말하곤 자리를 비워준다.
그 덕에 정말로 편하게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대표마저 힙한 공간이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마당의 소품 어느 것 하나 시선을 끌지 않는 것이 없었다.
소품이 비치된 위치, 각도, 모든 게 계산된 듯 절묘하게 놓여 있었다.
마당 풍경을 하나하나 묘사하려면 온종일이 모자랄 거 같고, 그래 봤자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을 것 같으니 이곳을 구역별로 나눠서 소개하려 한다.
마당에 깔린 판석들을 따라 걸어 들어와서 가장 안쪽 정면에 작은 만화방이 꾸며진 게 보인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옛날 만화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는데, 그뿐 아니라 옛날식 다이얼 전화기,
미니 피아노 등 옛 물건들로 꾸며져 있었다. 거기에 샹들리에의 조화란. 소파도 너무 포근해 보여서 숙소로 헷갈릴 정도이다.
만화방에서 나와 오른쪽을 보면 7080세대에게 친숙할 법한 문방구를 연상시키는 곳이 있다.
잡화, 문구, 음료, 담배라고 적힌 유리문 아래 사랑, 추억이라고 적힌 것이 눈에 띈다.
추억을 사고 문화를 파는 곳이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 연출이다.
그 시절에는 알았을까, 자신이 매일같이 다니는 곳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안에는 학교가 끝나면 누가 먼저 차지할 세라 달려와서 동전을 넣고 쪼그려 앉아 놀던 게임기부터 불량식품, 딱지, 문구류 등이 진열되어 있다.
이걸 어떻게 다 모았을까.
영우리점빵 옆에는 한옥을 개조한 숙소가 있다.
조그마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여기도 신기하다.
아마 시골에서 자랐거나 방학이나 명절에 시골집에 오갔던 사람이라면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이곳 내부도 어디서 공수했을지 신기할 따름인 옛 물건들이 한가득하다.
다이얼 TV부터 어릴 적 바람이 나오는 곳을 향해 입을 벌리고 아아 소리를 내던 게 떠오르는 선풍기까지.
아날로그 감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연출을 할 수 없을 듯 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곳은 원래 폐가였던 곳을 사들여서 공사까지 직접 참여하여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다락방도 있다. 빼곡히 꽂힌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있자니 어릴 때 즐겨봤던 만화 영화들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다시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가족이 이곳을 방문하면 아이들이 이곳에 앞다투어 올라와서 옹기종기 앉아 새로운 물건들을 보며 신기해하지 않을까.
마치 비밀 아지트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터무니는 이렇게 어른들에게는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리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는 동네기록관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60~80년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더 안쪽은 옛 학교처럼 분필로 적는 칠판과 풍금, 교과서 등이 있었다.
교복, 교련복 등 옛 복장과 가발도 체험해 볼 수 있다.
이수경 대표와 이야기를 하다 한 번 더 놀랐다.
인근 대학교의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쩐지, 공간 전체를 꾸민 남다른 감각이 납득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각이 있어도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멋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