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가을 정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옥상정원
사유의 가을 정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옥상정원
초록이 진 자리에 울긋불긋 단풍이 피어난다.
바람마저 선선하니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이하 과천관)은 무겁지 않은 나들이 삼아 가기에 알맞다.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 옥상정원―시간의 정원〉 전시가 가을 정취를 더한다.
MMCA 과천프로젝트는 과천관 특화와 야외 공간 활성화 계획이다.
올해는 과천관 옥상정원을 재생의 대상으로 공모해 조호건축(이정훈 건축가)의 ‘시간의 정원’이 당선, 지난 6월 29일 첫선을 보였다.
과천관 옥상은 이전에도 개방했는데, ‘시간의 정원’이 들어서며 기능적 공간에서 벗어나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간의 정원’은 과천관 초입의 야외조각공원을 지날 때 건물 꼭대기에 얼핏 형상을 드러낸다.
야간에는 흰색 파이프의 원이 과천관의 엔젤 링처럼 보인다.
과천관 1층에서 ‘시간의 정원’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승강기를 이용해 곧장 옥상으로 가거나,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을 감상하며 기대감을 고조하는 방법이다.
‘다다익선’은 과천관을 대표하는 초대형 작품이다.
개천절(10월 3일)을 뜻하는 1003개 모니터를 탑처럼 쌓아, 1층부터 3층까지 중앙홀을 채운다.
2018년 이후 복원을 위해 중단했다가 지난 9월 15일 재가동했다.
작품이 자리한 중앙홀은 로톤다 형태다. 높이 18m 모니터 탑 주위로 나선형 관람 통로가 3층 옥상정원 입구까지 이어진다.
거대한 모니터의 나무를 오르는 듯하고, 거대한 수직 영상의 정원인 양하다.
‘시간의 정원’은 ‘다다익선’의 제일 높은 자리에서 바깥 옥상정원 입구로 나가면 만날 수 있다.
지름 39m 원형 캐노피 구조물로, 흰색 파이프가 원형 이동로를 따라 늘어서 도넛 모양 벽과 지붕을 이룬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난간이 성장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력이 모티프다.
머리 위 높이는 2.1m에서 시작해 4.2m까지 올라가고, 파이프가 가리던 풍경은 그 정점에서 주변 청계산과 관악산을 향해 활짝 열린다.
가까이 청계산과 서울대공원, 국립과천과학관 등이,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이정훈 건축가의 말을 빌리면 “공간의 한편에 존재하는 시간이 아닌 순간의 연속으로서 시간의 존재를 오롯이 보여주는 장소”다.
풍경 좋은 자리에는 역시 파이프로 만든 의자를 배치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쉬기에 적당하다.
머리 위를 두른 흰색 파이프가 시간에 따라 그림자 길이를 변주하는데, 해시계의 흐름 같다.
‘시간의 정원’은 정원 디자이너이자 환경 미술가 황지해 작가의 〈원형정원 프로젝트 :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전시와 떼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시간의 정원’에서 미술관 바깥으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보인다면, 안쪽은 발아래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가 매혹한다.
‘시간의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는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달의 뿌리 같기도 하다.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시간의 정원’으로 인해 한층 안온한다.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는 ‘시간의 정원’에서 계단으로 연결된다.
과천관 주변 산과 들의 식생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우리 땅 곳곳의 생태를 옮겨 왔다.
‘청계산과 관악산에 사는 새와 곤충의 식량 창고이자, 나비의 산란장’이 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