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집집마다 김치를 담가 먹듯 술을 빚어 먹던 때가 있었다.
손맛도, 물맛도 제각각이었을 테니 고개 하나 넘으면 술맛이 달라졌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가양주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술을 빚으려면 면허를 내고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34년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가 아예 없어져 집에서 빚은 모든 술이 밀주(密酒)가 되었고
1965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되자 쌀이 주원료인 전통주는 거의 맥이 끊긴다.
1990년 민속주 제조 허가와 함께 가까스로 몇 종류가 기사회생했는데, 이때 살아난 술이 잘 알려진 안동소주, 이강주, 문배주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주가 어디 이뿐이랴.
삼국시대 이래 역사상 전략적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는 조선 선조 때부터 빚어 먹었다는 ‘남한산성소주’가 400년째 이어져 내려온다.
그 맛과 향을 재현해 세상에 내보낸 사람은 경기도 광주의 강석필 옹이다.
남한산성에서 대대로 술을 빚어온 이종숙이라는 이가 술도가를 그만두면서 강석필 옹의 부친(1971년 작고)에게 비법을 전수했고
강석필 옹이 아버지에게 배운 제조법을 재현해 19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남한산성소주 제조기능)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 40도의 증류주다.
요즘 우리가 마시는 소주가 농축된 증류액에 물과 감미료, 향신료를 섞은 희석식 소주인 데 반해 전통 소주는 순수하게 곡물로 만들었다.
화학 성분이 섞이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높아도 숙취가 없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남한산성소주에는 쌀과 누룩, 물 이외에 독특한 재료가 한 가지 더 들어간다. 재래식으로 고은 조청이다.
조청이 독특한 맛과 그윽한 향을 더하고, 저장성도 높인다.
누룩을 빚을 때 한 번, 백미를 쪄서 식힌 지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밑술을 만들 때 또 한 번, 덧술을 빚을 때 한 번 더 들어간다.
이렇게 두 번 빚어 발효시킨 술은 맑게 떠내면 약주, 탁하게 걸러내면 탁주가 된다.
소주는 발효주인 약주나 탁주와 달리 증류 과정을 거친다.
전통적인 방법은 소줏고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액을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지피면 증발해 위로 올라가는데, 소줏고리 맨 위의 냉각수 그릇에 닿아 식으면서 이슬처럼 맺힌 원액을 받은 것이 소주다.
요즘은 소줏고리 대신 현대화된 기계를 쓰는데, 온도를 균일하게 맞추고 완벽한 진공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맛이 더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