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같은 삶을 살아라, 이하연 명사

김치 같은 삶을 살아라, 이하연 명사

김치 같은 삶을 살아라 이하연 명사

김치 같은 삶을 살아라, 이하연 명사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다 남양주 북한강 자전거길

이하연 명인은 어릴 적부터 엄마 곁에서 보고, 먹고, 배우며 기막힌 손맛을 물려받았다.

엄마를 따라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달래를 캐고, 버섯을 땄다. 식재료로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감각을 익혔다.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만 고들빼기김치를 담갔어요. 그땐 신기했죠.

후에 김치 공부를 하고 보니 고들빼기는 전주 아랫녘에서만 김치로 만들더라고요.

제가 살던 익산이나 옆 동네인 논산 같은 전주 위쪽 지방은 김치 재료로 쓰지를 않았어요.

근데 다행히 저희 어머니 고향이 전북 임실이라 고들빼기김치를 맛볼 수 있었죠.”

명인의 어머니는 배추김치를 담글 때도 검은깨를 뿌려 오방색을 맞췄다.

쓴맛이 나는 김치에는 단맛이 나는 밤이나 고구마를 넣어 맛을 중화했다.

칼국수 한 그릇을 끓이더라도 멸치 육수에 따로 삶은 면을 넣고 달걀지단을 채 썰어 올렸다.

어머니 덕분에 정성이 깃든 음식을 체득했고, 폭넓은 미각 훈련과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물려받은 맛의 자산은 팔도진미를 선보이는 한정식 전문점 ‘봉우리’를 운영하며 빛을 발했다.

정갈하고 단정한 음식 맛은 물론이려니와 김치 맛에 손님들의 칭찬이 그칠 줄 몰랐다.

그러던 2003년 어느 날, 이하연 명인은 강원도 지역의 폭우로 배추와 무값이 폭등하면서 중국산 김치가 수입된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우리 밥상에 김치까지 수입되어 들어온다니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날 이후, 명인은 운명처럼 김치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흔 살이 넘어 뛰어들었지만 김치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넘쳐흘렀다.

김치와 식재료 연구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전복김치, 홍어김치, 빙어김치 등 수십여 종의 이하연표 ‘명품 김치’가 탄생했다.

각종 대회에서도 연이어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2014년에는 전복, 낙지 등 제철 해산물을 섞어 버무려 담그는 ‘해물섞박지’ 김치로 농림축산식품부 전통식품명인 제58호로 지정되었다.

명인의 철학은 분명하다. 우리 김치가 저급해지길 원치 않는다.

지역별로 좋은 제철 재료를 엄선해 김치를 담그는 이유다.

맛은 기본이고, 눈으로도 예쁜 김치를 담가 품격 높은 우리 고유의 김치 문화가 오래오래 이어지도록 앞장서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했다. “새로운 세기는 제3의 맛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여기서 말하는 제3의 맛은 발효의 맛을 일컫는다.

“저는 김치의 세계화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김치는 대표적으로 제3의 맛을 가진 발효음식인 데다가 제1의 맛인 짠맛과 제2의 맛인 양념 맛도 가지고 있거든요.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2030년에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장수국으로 등극한다는 전망을 내놓았잖아요.

저는 세계 5대 건강식품 중에서도 김치가 가장 최고라고 봐요.”

명인은 김치의 가치와 효능을 알리는 일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간다.

지금까지 런던, 이탈리아,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홍콩, 중국, 일본 등에서 김치 행사와 김치 강의를 진행해왔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김치로 시작해서 김치로 끝난다는 이하연 명인은 김치처럼 살아 숨 쉬는 ‘김치체험박물관’ 설립을 꿈꾸고 있다.

“김치체험박물관은 박제된 듯 죽어 있으면 안 돼요.

제가 그곳에 살면서 김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해주고, 김치 만들기 시연도 하고, 다양한 김치 종류의 맛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마지막엔 김치 밥상을 딱 차려줄 거고요. 엄마한테 받았던 따뜻한 밥상을 사람들에게 정성껏 대접해주고 싶거든요.

요즘엔 우리 전통 소리를 배우고 있는데요.

김치 강의하기 전에 한 가락 읊으면 정말 좋지 않겠어요? 저는 이게 진짜 김치를 체험하는 박물관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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