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치유의 길 영양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
느리게 걷는 치유의 길 영양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
한적한 초여름 산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울창한 숲을 통과한 햇살이 발밑에 부서지고, 바람에 실려 온 솔향기에 머리가 맑아진다.
푹신한 흙길은 어른 서너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고 평탄하다.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사뿐사뿐 걷는 길, 경북 영양 일월산 자락의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이다.
곳곳에 쉼터와 벤치가 있어 쉬어 가기도 좋다.
이 길은 국내 대표 청정 지역인 경북 청송에서 영양, 봉화, 강원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의 일부다.
외씨버선길이라는 이름은 조지훈의 시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닮았다고 붙인 것.
총 연장 240km, 13개 구간으로 나뉜다. 대티골 숲길은 7구간 치유의 길(8.3km)과 상당 부분 겹친다.
숲길 탐방로는 일월면 용화리 윗대티골에서 시작하는 옛국도길(3.5km), 칠밭목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칠밭길(0.9km)
옛마을길(0.8km), 댓골길(1.2km) 등 4코스로 구성된다. 전부 걸을 수도 있고 원하는 대로 골라 걸어도 된다.
옛국도길을 걷다가 칠밭목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외씨버선길이다.
대티골 숲길은 왼쪽 칠밭길로 이어진다.
옛국도길에는 수탈과 훼손의 아픈 역사가 서렸다.
원래 이 길은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31번 국도였다.
일제강점기 일월산 광산에서 캐낸 광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마을 주민을 강제 동원해서 닦았다.
해방 뒤에는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 임도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새 국도가 생기면서 버려지고 잊힌 것을 최근 대티골 주민이 정비해 치유의 길로 거듭났다.
길 중간에 ‘영양 28km’라는 녹슨 이정표가 이 길이 국도였음을 알려준다.
옛국도길을 걷다가 칠밭목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잡목이 우거진 칠밭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선다.
일월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칠밭길에는 신갈나무, 생강나무, 상수리나무
개옻나무가 즐비하고 각종 들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원시적이지만 생명력이 넘친다.
옛길을 복원하면서 대티골 사람들이 원한 것은 보존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자연은 본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티골 숲길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숲길을 탐방할 때 숲해설사의 안내를 받아도 좋다. 함께 걸으며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놀이도 즐길 수 있다.
대티골은 28가구, 40여 명이 어울려 사는 생태 마을이다.
계곡물을 식수로 쓸 만큼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았고, 곰취와 두릅, 산마늘, 참나물, 취나물 등이 많이 난다.
예약하면 대티골 주민이 운영하는 황토구들방에서 하룻밤 묵고, 각종 산나물로 차린 건강한 밥상도 맛볼 수 있다.
대티골 입구 용화2리 정류장에 있는 커다란 호랑이 조형물도 인상적이다.
해님과 달님 설화를 바탕으로 고장 난 농기구를 활용해 만든 정크아트는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숲길 탐방을 마친 뒤 인근 일월산자생화공원도 둘러보자.
금낭화, 원추리, 벌개미취 등 봄부터 가을까지 일월산과 주변에 자라는 들꽃 60여 종을 볼 수 있다.
인공 연못과 수로에는 습지식물이 자라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정자도 마련되었다.
원래 이곳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일월산에서 채굴한 광물을 골라내고 제련하던 곳이다 보니 각종 독성 물질로 오염이 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