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고래잡이 어촌으로 떠나는 추억 여행
1970년대 고래잡이 어촌으로 떠나는 추억 여행
장생포(長生浦)는 울산만 서쪽의 어항(漁港)으로, 앞바다의 물이 깊고 바람이 적어 선박지로서 최고의 장소다.
또한 고등어, 대구, 멸치, 전광어, 도미 등이 잘 잡히는 좋은 어장이자 과거에는 고래 서식지로서 포경업이 성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울산은 ‘고래’의 도시가 됐다.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고래바다여행선 등 장생포 고래문화특구가 조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래문화마을은 2015년 조성된 생태 체험공원으로 다양한 세트를 활용해 1960~70년대
당시 장생포 어민의 실제 생활상 등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동물권 운동의 확산으로 동물보호와 동물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과거 장생포는 고래 포경(捕鯨)으로 전성기를 누린 역사가 있다.
장생포는 고래와 함께 성장했다.
장생포 고래잡이 역사는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태평양어업주식회사를 설립한 데서 비롯된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포경업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장생포는 포경업의 중심지 중 하나로 지목됐다.
광복 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회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액 공동 출자한 조선포경주식회사로 거듭났고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포경 역사는 쓰이기 시작했다.
고래잡이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에
장생포는 20여 척의 포경선과 1만여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큰 마을로 성장했지만
1980년에 이르러 무분별한 포경으로 포획량이 줄고 일부 종이 멸종하게 되며 조금씩 침체기를 맞았다.
1982년 7월,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제34차 총회에서 고래 자원 보호를 위해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하는 의안을 가결하며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은 전면 금지됐고,
이로써 우리나라 유일의 포경 지역이었던 장생포에서도 고래잡이를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인근에 공업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포경에 종사하던 주민 대부분은 이주했고 마을은 점점 쇠퇴하게 됐다.
인간과 고래, 모두가 공생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절차였고 과정이었다.
울산광역시는 고래와 함께 성장했던 장생포에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고래문화특구를 설계,
최근 고래와의 지속 가능한 동행을 위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한 고래문화마을은 고래광장, 장생포 옛마을, 선사시대 고래마당, 고래조각정원, 수생 식물원 등의 다양한 체험 공간을 통해 탐방객이 고래를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작업에 힘쓰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도 좋고, 아이와 함께 동심 여행을 떠나도 좋은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가을의 안심 여행지로 적극 추천한다.
환경 오염과 해양 오염으로 인해 머지않아 전설의 동물, 상상의 동물로 기억에 남을 해양보호동물 고래.
최근 tvN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남방큰돌고래가 등장해 고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몰리기도 했다.
과거 포경으로 전성기를 이뤘던 장생포는 현재 고래와의 지속 가능한 동행을 모색하는 생태 체험 도시로 탈바꿈했다.
사람과 고래가 함께 꿈꾸는 바다, 고래가 뛰어노는 바다를 염원하며 건강하고 안전하게 고래문화마을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