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한탄강벼룻길 낙엽 따라 걷는 자연사 시간 여행
포천 한탄강벼룻길 낙엽 따라 걷는 자연사 시간 여행
혹, 아시는지. 한반도에 용암대지가 수십만년 강물에 깍이면서 형성된 혐무암 협곡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북녘 땅인 강원도 평강군 오리산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했다.
이때 솟아오른 것은 물처럼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용암.
오리산에서 시작한 용암은 한탄강을 따라 흐르고 흘러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 파주까지 이르렀다.
강물과 만난 용암은 빠르게 식어 육각형 연필심 모양 주상절리가 되었는데,
그 틈으로 다시 강물이 흐르면서 바위를 조금씩 깎아 거대한 현무암 협곡을 만든 것이다.
용암대지가 협곡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수십만 년.
그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포천시와 연천군 일대의 한탄강 협곡 지대는 2015년 국가지질공원이 되었고,
독특한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문화를 엮는 지질트레일이 조성 중이다.
모두 4개 코스로 구성된 지질트레일은 현재 1코스가 개통했다.
2코스는 공사 중이고 3·4코스는 일부 구간 통행이 가능한데, 포천시는 2019년까지 총 30km에 이르는 지질트레일을 완성할 계획이다.
부소천협곡에서 비둘기낭폭포까지 이어지는 1코스는 ‘한탄강벼룻길’.
벼룻길은 강이나 바닷가로 통하는 벼랑길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길은 이름처럼 한탄강 옆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폭포와 협곡, 마을을 잇는다.
한탄강벼룻길은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늦가을 푸른 하늘 아래 낙엽을 밟으며 걷는 맛이 각별하다.
벼룻길의 공식 시작점인 부소천협곡 대신 비둘기낭폭포에서 출발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비둘기낭폭포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짙푸른 비둘기낭폭포 아래 소에도 낙엽이 수북하다.
안내판에는 <선덕여왕>부터 <괜찮아, 사랑이야>까지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 포스터가 줄줄이 붙었다.
높이 30m가 넘는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 아래 거대한 동굴을 품은 비둘기낭폭포는 신비한 풍경 덕분에 촬영 명소가 되었다.
가만, 현무암이라면 제주도를 상징하는 검고 구멍 숭숭 뚫린 돌 아닌가? 그런데 비둘기낭폭포 주변의 주상절리는 검붉은 색에 구멍도 없다.
현무암은 땅 위로 나온 용암이 급속도로 식으며 생기는 돌이다.
부글거리는 용암 속에 있던 가스가 빠져나오면 급격히 굳으며 생긴 것이 구멍 뚫린 현무암이다.
그러나 한탄강 현무암이 제주도보다 여유 있게 굳은 셈이다.
풍화 과정에 돌 속의 철분이 산화되면 붉은색이 더해진다. 용암과 물, 바람이 만들어낸 비둘기낭폭포는 살아 있는 지질학 교과서다.
비둘기낭폭포에서 출발한 길은 멍우리협곡으로 이어진다. 멍우리는 ‘멍’과 ‘을리’가 합쳐진 이름이다.
멍은 ‘온몸이 황금빛 털로 덮인 수달’을 뜻하고, 을리는 ‘강물이 새을(乙) 자처럼 흐른다’는 의미라고.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황금빛 협곡이 굽이치는 강물을 따라 4km 넘게 뻗었다.
협곡 위로 난 길은 전망대를 지나 숲으로, 캠핑장으로, 한적한 마을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