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최고의 벼루 보령 남포벼루 명장 김진한
추사 김정희 최고의 벼루 보령 남포벼루 명장 김진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해응이 《연경재전집》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벼루 모으기를 좋아해서 좋은 것을 많이 모았으나,
우리나라 것으로는 남포 돌 가운데 최상의 백운상석을 따를 것이 없다”고 했다.
벼루는 문방사우(종이, 붓, 벼루, 먹) 가운데 하나로 옛 선비들이 늘 곁에 두고 사용한 필수품이다.
벼루 중에서도 남포벼루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충남 보령의 남포 지방에서 생산되는 돌로 만든 벼루를 남포벼루라 하며,
이는 최고급 벼루의 대명사가 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 유물 중에는 벼루가 세 개 있는데, 그 중 두 개가 남포벼루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벼루를 사용하는 일은 급격히 줄었지만, 남포벼루의 명맥은 이어진다.
남포벼루 제작 기능 보유자 김진한 명장의 집안은 3대째 남포벼루를 제작하고 있다.
6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인 김진한 명장은 할아버지 김형수, 아버지 김갑용을 통해 남포벼루 제작기법을 전수받아 가업을 계승했다.
7세 때 공방에 들어가 망치와 정으로 돌을 깨고 놀면서 장비 다루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고, 아버지를 따라 성주산에 오르며 돌 고르는 안목을 키웠다.
13세 때 정식으로 입문해 60여 년 동안 벼루와 함께했다.
대를 이어 전수한 조각 기술에 뛰어난 벼룻돌을 찾아내는 안목, 전통적인 제작 기법이 더해져 김진한 명장이 만드는 남포벼루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평생 한길을 걸은 노력으로 1987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6호, 1996년 석공예 부문 대한민국 명장이 되었다.
좋은 벼루는 먹을 갈 때 매끄럽고 끈적거리지 않아야 한다.
먹이 곱게 갈리고, 글을 쓰면 윤기가 나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묵지(벼루 한쪽에 오목하게 파여 먹물이 모이도록 한 것)에 물을 붓고 열흘이 지나도 마르지 않아야 한다.
뚜껑과 바닥을 부딪치면 경쾌한 쇳소리가 난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 하품 벼루다.
“좋은 벼루는 서예 하는 분들이 잘 알아요. 글을 쓸 때 획이 매끄럽게 나가는 것을 느껴 서예에 의욕이 생기거든요.”
좋은 돌을 사용해야 좋은 벼루를 얻을 수 있기에 노구를 이끌고 직접 산에 올라 원석을 채취한다.
백운상석만 골라 제대로 된 벼루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남포벼루의 재료가 오석이라고 알려졌지만, 김진한 명장은 백운상석이 진짜 남포벼루의 재료라고 말한다.
성주산 중턱에서 채취하는 백운상석은 원석에 흰 구름 문양이 박혔다.
석질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돌결이 윤기와 온기를 고루 갖춰 먹을 갈면 먹이 벼루 바닥에 들러붙는 느낌이 든다.
벼루 하나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두세 달.
백운상석을 자르고 다듬어 틀을 잡고, 용과 학, 거북, 봉황, 사군자, 십장생 등을 조각하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조각할 때는 도안에 의지하지 않는다. 기본 밑그림을 그리더라도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상황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한다.
생각을 틀에 맞춰놓고 손으로 표현하면 결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힘들고 거친 일이지만 김진한 명장은 하나하나 정성을 쏟는다.
그렇게 만든 벼루가 5000여 점이다. 자신이 제작한 남포벼루에 자부심이 있기에 소장자 명단을 작성해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남포벼루의 진가를 확인하고 발길을 옮길 곳은 산과 바다의 여행지다.
산에 위치한 대표 여행지는 보령석탄박물관이다. 보령 지역은 국내 주요 석탄 산지였다.
보령석탄박물관은 충남탄전의 발달 과정과 채굴 장비, 작업 환경 등을 소개하기 위해 1995년 5월 18일 문을 열었다.
석탄은 1970~1980년대 우리 국민의 주된 연료이자, 근대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