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처럼 예쁜 기단 계단에 새긴 꽃송이
조각보처럼 예쁜 기단 계단에 새긴 꽃송이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은 동방5현 중 가장 웃어른인 김굉필을 모시는 곳이다.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는 생각은 오해다.
도포 자락 여미고 겨우 오를 수 있는 계단과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입서출의 규칙에도 귀여운 다람쥐가 등장한다. 12각 돌을 조각보처럼 이은 기단 앞에 서면 심장이 멎는다.
지루한 강학 공간에 보물처럼 숨겨진 장치를 하나하나 소개한다.
도동서원으로 향할 때는 낙동강을 끼고 한적한 길을 달리다가 다람재를 넘는다.
다람재는 도동서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왼쪽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서원의 기와지붕이 모여 앉았다.
배산임수를 몰라도 절로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주차장에 차를 멈추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400여 년 세월 동안 도동서원을 지켜온 수문장으로 ‘김굉필나무’라 불린다.
어른 6명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앙하기 위해 세웠다.
건립을 주도한 이는 외증손자인 한강 정구다. 은행나무 역시 그가 서원 중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하늘마저 가린 무성한 초록빛 사이로 수월루가 보인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수월루 앞은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붉은 꽃이 그늘을 드리운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사방 담장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 가파른 돌계단이 눈에 띈다.
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오를 정도로 좁고 소박하다.
도포 자락 단단히 여미고 더듬어 올랐을 계단.
이 앞에서 포기하고 돌아간 선비도 더러 있었으리라.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디디려는 찰나, 초입 난간 소맷돌에 조각된 꽃봉오리가 보인다.
긴장한 와중에 꽃향기가 사르르 퍼진다.
계단 끝에서 만나는 환주문은 배움터인 중정당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높이가 1.5m에 불과해 어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숙여야 한다. 갓 쓴 선비야 오죽했을까.
자신을 낮추는 선비의 마음을 갖춰야 배움이 허락됐다.
환주문에는 문지방 대신 꽃봉오리 모양 정지석이 있다.
문 닫을 때 고정하는 정지석에 소박한 멋을 담았다.
배움터로 들어서는 마지막 발걸음에 놓인 돌부리가 엄중하면서도 부드럽다.
중정당은 강학 공간이다. 중정당 마당에 기숙사인 거인재와 거의재가 마주 보고 있다.
마당 한가운데 돌판 깔린 길이 놓였고, 길 끝에 돌 거북 한 마리가 머리를 불쑥 내민다.
눈을 부릅뜨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무섭게 노려본다.
중정당으로 오르는 길에 눈곱만큼이라도 딴생각을 하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화재 같은 액운을 막기도 하지만, 배움의 품으로 들어설 때 잡생각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경고이리라.
도동서원 소박한 멋의 진수는 중정당 기단이다.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다. 크기와 색깔,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아 올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전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돌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페루에 잉카제국의 12각 돌이 유명하다는데, 중정당 기단에도 12각 돌이 있다.
4각에서 12각까지 틈새 없이 쌓은 모양이 조각보처럼 곱다.
기단에는 용 네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해 용이 되라는 기원이 담겼다.
중정당 계단 옆에 다람쥐가 새겨졌다. 오른쪽은 올라가는 모습이고, 왼쪽은 내려오는 모습인데 너무나 귀엽다.
동입서출의 딱딱한 규칙을 사랑스럽게 표시한 마음이 전해온다.
중정당 굵은 기둥 위에 흰 종이(상지)를 둘러놓은 것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