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자의 마음으로 걷다 고양 행주산성
수호자의 마음으로 걷다 고양 행주산성
‘산’을 오르는 것과 ‘산성’을 오르는 것은 다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정복자가 되기 위함이고, 산성을 오르는 것은 수호자가 되기 위함이다.
정상을 향해 도전하는 마음으로 산에 오를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수호자의 마음으로 산성을 걸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세월을 품은 고목 한 그루, 소담하게 피어있는 노란색 야생화. 지키고 싶은 것들을 새록새록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이 수호자가 되어 산성을 걷는 이유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산에 있는 행주산성.
삼국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임진왜란(1592년) 이후 중건된 모습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행주산성은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으로 총 1km의 길이이다.
산성은 본디 방어를 위해 지어진다. 행주산성 역시 한강 유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함께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방어요새로 활약했다.
가장 잘 알려진 전투는 임진왜란 때 권율이 왜군을 대파한 ‘행주대첩’.
산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9차례에 걸쳐 맹공격을 해오는 일본군을 결국엔 퇴각시키고 승리를 쟁취한 곳이다.
이 전투는 대한민국 역사에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로 남아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목숨을 걸고 행주산성을 지켰던, 그래서 이 나라를 기어코 지켜냈던 용맹한 수호자 ‘권율’.
행주산성의 대첩문에 들어서면 그가 가장 먼저 사람들을 반긴다.
대첩문을 지나 300m 가량 올라가면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행주대첩비가 있는 정상 쪽으로 오르는 길이고, 홍살문이 멋들어진 오른쪽은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로 가는 길이다.
권율 장군에게 먼저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행주산성 정상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추천한다.
이 성의 가치를 먼저 깨우쳐야, 수호자의 절실함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평평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언덕길을 적당히 힘이 들어가는 걸음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고고하게 서 있는 덕양정을 발견할 수 있다.
덕양정은 1970년대 건립한 정자로 한강의 윤슬을 감상할 수 있는 행주산성의 경치 맛집이다.
행주대첩비 바로 앞에는 대첩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행주대첩의 경과와 권율 장군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선조 35년 장군의 부하들이 직접 세웠다고 한다.
비문은 최립,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고 하니, 아군의 3배가 넘는 적을 물리친 행주대첩이 당시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옆에 신행주대첩비가 왜군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았던 민족의 용맹함을 품고 하늘을 향해 늠름하게 뻗어 있다.
한없이 높은 가을 하늘도 단번에 뚫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는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만든다.
행주대첩비를 바라보다 뒤를 돌아서면 서울, 김포, 고양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3개의 도시를 하나로 연결하듯 흐르는 한강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주듯 반짝인다.
지금이야 건물들이 늘어선 도시가 밤낮없이 찬란하지만 권율 장군이 이곳에 서서 바라봤을 풍경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