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역과 무쇠다리 마을 여름 여행 소백산역과 무쇠달마을
산골 역과 무쇠다리 마을 여름 여행 소백산역과 무쇠달마을
무쇠달마을은 소백산역이 있는 마을이다. 산자락 경사지에 옹기종기하다.
죽령옛길 진입 마을이자 소백산 3자락길 시작점으로 알려졌지만, 풍기 사람에게는 손쉽게 떠날 수 있는 동네 피서지다.
물론 무쇠달마을과 소백산역이 주는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무쇠달마을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산골이었다. 북적대는 희방계곡을 피해 풍기 사람들만 간간이 찾아들었다.
무쇠달마을이 알려진 건 죽령옛길을 복원하고 소백산자락길이 지나면서부터다.
죽령옛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길 문화재로, 지난 2007년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렸다”고 적혀 있으니 1,900년 가까운 시간이다.
소백산역은 무쇠달마을의 랜드마크였다. 1942년 4월 간이역으로 문을 열었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에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한동안 대부분의 기차가 소백산역에서 정차했다. 소백산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희방계곡을 지나 연화봉으로 올랐다.
그때 소백산역을 찾았던 이들에게는 희방사역이라는 옛 이름이 더 친숙하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불렸다.
희방사는 희방계곡에 있는 사찰로 무쇠달마을과는 각별한 관계다.
무쇠달은 무쇠다리를 의미한다.
수철리의 옛 지명도 수철교(水鐵橋)리였다.
이름과 관련한 일화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선덕왕 12년, 희방사 두운스님이 비녀가 목에 걸린 호랑이를 구해줬다.
호랑이는 은혜를 갚으려고 서라벌 호장 유석의 딸을 데려다 바쳤다. 두운스님은 크게 노하며 유석의 딸을 서라벌로 돌려보냈다.
호장 유석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희방사 가는 개울에 무쇠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다. 그러니 그 이름을 어찌 쉽게 지워낼까.
지금도 소백산역 간판 옆에 희방사라는 역명이 함께 적혀 있다.
기차표를 예매할 때도 희방사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지난 5월에는 영화 <소백산역>을 촬영했다. 산골 작은 역을 살리려는 역무원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쇠달마을은 그 자체로 영화의 이야기이고 생동하는 세트다.
2014년에는 간이역 문화 프로젝트 사업이 시행되었다. 소백산역 역시 문화역으로 변모했다.
기차역 본연의 역할은 물론 소백산과 무쇠달마을의 정취를 담고 있다.
역 안에서는 마을의 수호신 다자구할머니가 이야기를 건넨다. 과거 죽령옛길은 산세가 험하다 보니 산적이 자주 출몰했다.
산적에게 아들을 잃은 다자구할머니는 아들을 찾는 척하며 산적 소굴로 들어갔고, 관군은 할머니의 신호로 산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그때 산적들이 자고 있으니 공격하라는 신호가 ‘다자구야’, 안 자고 있다는 신호가 ‘돌자구야’였다.
벽에는 무쇠달마을 노래와 함께, 죽령옛길에서는 ‘다자구야’ 하고 인사하면 ‘돌자구야’ 하며 받는다고 적혀 있다.
소백산역을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가면 무쇠달마을 갈림길이다.
북쪽은 희방계곡의 물길이 마을을 가른다. 희방사까지 잇는 희방사옛길로 도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희방사와 소백산을 걸어서 오갔다.
1시간 30분쯤 걸리는데 희방폭포 등이 있어 다녀올 만하다. 하지만 여름에는 마을 구판장휴게소까지 가벼운 산책으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