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재 넘어 펼쳐진 동강의 샹그릴라 정선 연포분교 가는 길
물레재 넘어 펼쳐진 동강의 샹그릴라 정선 연포분교 가는 길
연포분교는 늘 그리운 이름이다.
소사마을과 연포마을 사이에 다리가 없던 28년 전, 줄배를 타고 동강을 건너 연포분교에 간 적이 있다.
거대한 뼝대(바위로 된 높고 큰 낭떠러지) 아래로 물안개 헤치고 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 앞에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나?’ 감탄했다.
연포분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몇 번 더 연포분교에 들렀고, 연포분교가 캠핑장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연포분교로 가는 길은 한없이 설렌다.
드라이브 시작점은 인적 뜸하고 소박한 예미역이 적당하다.
예미역은 청량리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다섯 번 정차한다.
무인역으로 운영되지만, 내부가 깔끔하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다.
예미교차로에서 유문동·동강 방면으로 직진하면 산비탈에 너른 밭이 펼쳐진 유문동이 나온다.
몇 가구가 드문드문 모여 있고, 슬레이트 지붕 위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이 영락없는 오지 마을 같다.
정자가 있는 곳에 ‘동강 가는 길’ 이정표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유문동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고성리재를 오르는데, 터널이 있다.
일반 터널과 달리 입구가 너무 좁아 들어가도 되는지 망설여진다.
고성터널은 1985년 고성리재 아래로 수도관을 묻으며 생긴 도수 터널(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산을 뚫어 만든 길)이다.
내부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만큼 좁고 어둡다. 시멘트로 만든 갱도와 다름없지만, 지름길이라 주민들이 이용한다.
어두운 터널에서 나오면 첩첩산중인데, 지도에 없는 샹그릴라가 나타날 듯한 기분이다.
동강고성안내소를 지나면 삼거리와 만난다.
왼쪽 연포길을 따르면 덕천리 원덕천마을이 나온다.
잠시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마을을 둘러본다. 옥수수밭 한가운데 외양간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니 어미 소와 송아지가 우물우물 맛있게 여물을 먹고 있다.
어미 소가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눈을 부라린다. 외양간 앞에서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구불구불 물레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그 옆에 동강 일대 최고봉 백운산이 장수처럼 버티고 섰다.
물레재 정상에는 솔숲이 우거지고, 서낭당이 자리한다.
물레재는 옛날 고갯마루에 실을 뽑는 물레가 걸려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연포마을과 소사마을 사람들이 장에 가려면 물레재를 넘어야 했다.
도로가 없을 때는 걸어서 험한 고개를 넘었다. 서낭당에 그 시절 주민들의 애환과 기원이 담겨 있다.
물레재에서 내려오면 소사마을이다.
산비탈에 들어앉은 마을이 수려한 뼝대와 동강을 바라본다.
비료를 뿌린 널찍한 사과밭이 평화롭다.
소사마을에서 내려오면 동강을 건너는 세월교와 만난다. 다리가 없던 시절, 연포마을은 동강으로 끊긴 섬 같았다.
여기서 줄배를 타고 연포마을로 들어갈 때, 얼마나 설렜던가.
연포분교는 캠핑장을 꾸미면서 많이 변했지만, 학교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오지 캠핑 장소로 마니아 사이에 인기다. 연포분교는 영화 〈선생 김봉두〉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옛 분교의 아름다운 모습이 영화에 오롯이 남았다. 연포분교캠핑장 마당에서 뼝대 세 봉우리가 잘 보인다.
주민들은 칼봉, 둥근봉, 큰봉이라 불렀다. 연포마을에는 달이 세 번 뜬다는 말이 있다.
달이 세 봉우리에 가렸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연포분교는 1969년 개교해 졸업생 169명을 배출하고 1999년 폐교했다.
캠핑장 옆에 연포상회가 있어 반갑다. 연포상회는 마을의 유일한 가게이자 식당으로,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켰다.
소사마을에 살던 곤옥란 씨 부부가 20여 년 전에 인수했다.
곤 씨의 세 아들도 연포분교를 나왔다.
대처로 나간 세 아들은 지금도 명절에 모이면 줄배 타고 등교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