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열리는 후끈한 오일장 성남 모란민속오일장
도심에서 열리는 후끈한 오일장 성남 모란민속오일장
세월이 흐를수록 옛것이 점점 잊히거나 사라져가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옛것에 대한 향수마저도 잊혀가는 것 같아 아쉽다.
옛것에 대한 생각은 장터도 예외일 수 없지만, 경기도 성남의 모란장은 짧은 역사에도 전국 최고의 민속장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모란장은 북적이는 도심에 서는 오일장이라 장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향수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도심 속 장터, 그 안에는 없는 물건 없고, 파는 물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도심에서 즐기는 오일장은 그래서 더욱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민속오일장
모란은 1960년대 성남 일대의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붙인 지명으로 닷새마다 열리는 모란장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북적이는 거리, 꼬리를 길게 무는 차량들, 바쁜 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
모란역 주변의 일상도 여느 도시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모란역 주변으로 오일장이 펼쳐지면 회색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지하철 입구든, 버스 정류장이든, 골목 한 귀퉁이든, 자리만 있으면 바로 장터가 된다.
이곳이 대한민국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모란장이다.
모란시장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수의 오일장과 달리 이제 겨우 40년 남짓이다.
모란시장은 홀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남하한 김창숙이란 이로부터 시작됐다.
군에 입대한 뒤 한국전쟁을 거쳐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황무지였던 지금의 모란시장 주변을 개간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살고 있는 평양을 상징하는 ‘모란’이라는 지명을 붙이게 되었다.
그후 생활문제가 대두되면서 오일장을 열게 되는데 이것이 모란장의 시초라 한다.
모란장이 유명해진 것은 1980년대다.
도심 속 재래시장이라는 특수성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이다 보니 살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당연히 늘어났을 터.
아닌 게 아니라 모란장은 다른 어떤 장터보다 규모나 품목면에서 압도적일 뿐 아니라 장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지나다니기조차 힘겨울 정도가 되었다.
모란장은 1만 2,000여 ㎡의 대원천 복개지 위에 4,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분당선 모란역 5번 출구로 나감과 동시에 시끌벅적한 장이 펼쳐진다.
모란민속장은 동서로 길게 펼쳐져 그 길이만 300m가 족히 넘는다.
큰길 건너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형형색색 파라솔에 뒤덮인 모란민속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란민속장 상인회에 등록된 상인들 수만도 1,000여 명을 헤아린다고 하니 각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500명이 훨씬 넘는다.
게다가 모란시장을 찾는 손님과 구경꾼까지 합세하면 장터는 늘 밀려다닐 정도로 북적거린다.
모란장은 14개 부서로 정확히 구획되어 있어 장보기가 편하다.
장터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화훼부를 시작으로 잡곡, 약초, 의류, 신발, 잡화, 생선, 야채, 음식, 고추, 애견, 가금 순으로 4∼5개의 길이 동서로 길게 이어진다.
모란민속장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고추장터는 마늘과 함께 한 블록을 이루고 있다.
가까운 이천, 여주, 천안을 비롯해 전국에서 올라오는데, 도매를 겸하고 있어 다른 장터에 비해 규모가 제법 크다.
고추장터는 1980년대만 해도 80여 명의 상인이 모여 고추를 팔았다.
한 때 “수도권 고추 시세는 모란장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지금은 상인이 많이 줄었지만 국내산 고추를 시중보다 저렴하게 판매해 김장철이면 문전성시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