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숭릉 비밀의 능에 신록이 깃들다
구리 숭릉 비밀의 능에 신록이 깃들다
이왕이면 아침 일찍 간다. 올해 개방한 숭릉 말이다.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다. 구리 동구릉인 9개의 능 가운데 오랜 세월 닫혀 있다 올해 초 일반에 개방됐다.
그 숭릉이 첫 신록을 드러냈다. ‘비밀의 능’으로 가는 길은 한동안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던 아늑한 숲길이다. 아침 숲은 깊고, 새소리는 완연하다.
단언컨대 이른 아침의 숭릉은 세인들의 번잡함이 없는 고요한 능이다.
‘관람제한구역’. 문화재 보호를 위해 숭릉에 붙어 있던 오랜 꼬리표다.
동구릉 안내서를 봐도 추천 관람 코스의 맨 마지막에 놓여 있다.
태조의 건원릉, 선조의 목릉, 영조의 원릉 등 유명한 임금님들을 알현하다 보면 동구릉 산책이 다소 주춤해진다.
햇살은 뜨겁고, 능이나 능 앞에 놓인 정자각, 홍살문 등이 죄다 비슷해 보인다.
경종의 능인 혜릉쯤 오면 산책보다는 휴식에 더욱 마음이 동한다.
고요한 숲속의 숭릉은 그래서 더욱 한갓지고, 빛을 발한다.
동구릉 산책의 묘미는 굳이 능을 마주보고 서는 게 전부는 아니다.
능과 능을 연결하는 흙길이 묘미다.
이미 세계문화유산 사이를 걷는다는 대단한 가치가 그 속에 배어 있다.
오랜 세월 왕릉을 지켜냈을 고목들이 허리를 구부린 채 산책길에 도열해 있다.
전나무, 참나무, 동백나무, 소나무 등이 수백 년 세월을 함께한 왕의 신하들 같다.
숲에는 연녹색 이끼가 자라나고, 이끼 위에 올라서면 포근한 양탄자를 밟는 느낌이다.
나무 사이로 한줌 볕이 들고 길가에는 정적을 깨듯 가녀린 시냇물이 흐른다.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숭릉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에 서려 있다.
숭릉에 얽힌 사연들은 산책길을 더욱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현종은 조선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타국인 청나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봉림대군(효종)이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을 때 얻은 아들이다.
현종은 19세에 왕위에 오르자 임진․병자 양난을 겪으며 흔들렸던 조선 왕조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모한 북벌정책을 중단하고, 호남에 대동법을 실시하기도 했다.
숭릉은 쌍릉으로 돼 있다
왕비인 명성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다.
숭릉에서 돋보이는 명물은 제사를 지낼 때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다.
조선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돼 있어 그 모습이 특이하다.
숭릉의 정자각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정자각 외에도 왕릉 주변 구조물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기면 왕릉 나들이가 더욱 새로워진다.
왕릉 밖으로는 시내가 흐르는데 이 냇물은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그 냇물 위 다리를 금천교라 부른다.
왕릉 앞 붉은 기둥의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이며,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참도는 왼쪽과 오른쪽의 높낮이가 다르다.
왼쪽 길은 신(神)이 다니는 신도이고,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