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뜨거운 성웅 이순신의 발자취가 담긴 여수 여행
가슴 뜨거운 성웅 이순신의 발자취가 담긴 여수 여행
남해안의 여러 해안도시에서 이충무공의 업적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남해안 곳곳이 이충무공의 활동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웅 이순신장군 발자취의 시작과 끝은 여수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라 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남관이 여수에 있으며, 거북선을 건조한 곳도 여수다.
뿐만 아니라 이충무공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던 사당 충민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충청 지방의 전란을 피해 이충무공이 어머니를 모셔온 곳 또한 여수다.
여수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충무공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며 어느새 그의 충절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세계박람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
스포츠가 아니지만 경제, 문화 분야의 종합올림픽으로 불리며 세계적 축제가 됐다. 세계박람회가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에서 증기기관과 기관차가 선보였고, 1876년 필라델피아 세계박람회 개최 이후 전화기 출시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는 텔레비전이 처음 소개됐다. 이처럼 세계박람회는 인류사회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다.
이번 여수엑스포의 주제는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다. 3개월 동안 진행된다. 현재는 공사 막바지 작업으로 분주한 분위기.
다소 주위가 어수선해 현장을 돌아다니기 어렵다. 여수항을 포함한 주위 경관을 한번 훑어보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수소문하니 자산공원에 가보란다.
여수 해변이 바라보이는 중앙동 해안가에 자리해 전망도 탁월하다.
광장의 넓이는 약 1만4000㎡이며 곳곳에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상징물이 설치되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광장 입구에 길게 설치된 분수이다.
‘환영의 분수’라는 이름답게 두 팔을 벌려 여행자를 맞는 느낌이다. 분수 우측으로는 11개의 조형 열주가 세워져 있다.
전라 좌수영이었던 여수에서 출정한 11번의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거북선의 화포를 형상화했다.
왼쪽으로는 ‘호국의 불’이라는 또 하나의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이충무공의 호국 정신을 상징하는 분수로서 횃불을 표현한 조형물을 가운데 두고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충무공의 활약과 여수에서 둘러볼 수 있는 유적을 소개한 3개의 석벽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이순신광장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광장과 해안을 이어주는 보행 육교이다.
용을 상징화한 육교는 임진왜란 당시 하늘을 찌를 듯한 수군들의 기백을 상징한 것이다.
입을 벌린 용의 머리가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수 앞바다와 돌산대교의 풍경이 시원하다.
이곳은 조선시대 400여 년 동안 전라 좌수영의 본거지였다.
본래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599년 이충무공의 후임으로 삼도 수군통제사 겸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75칸의 객사로 다시 짓고 진남관이라고 이름 붙였다.
진남관(鎭南館)은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1716년 또 한 차례 화재가 발생하였고 1718년 전라 좌수사였던 이제면이 다시 건립했다.
이후 역대 임금의 궐패를 봉안하고 군수가 망궐례를 올리기도 했으며 1910년부터 50여 년 동안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등 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후기 전라 좌수영 내에는 78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진남관뿐이다.
정면 15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 진남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면적이 약 780㎡에 달할 정도로 웅장하다.
이는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부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위용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며 고풍스러운 단청도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