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이 태어난 차이나타운의 먹자골목
짜장면이 태어난 차이나타운의 먹자골목
인천차이나타운에 있는 북성동원조자장면거리는 중식 먹자골목이다.
붉은빛이 화려한 건물과 홍등이 어우러져 영락없이 중국의 전통 거리가 떠오른다.
거리에는 중국집 외에도 공갈빵, 월병, 탕후루, 양꼬치 등 중국식 주전부리를 파는 집이 많아 외식 나들이 삼아 찾기에 제격이다.
북성동원조자장면거리는 짜장면박물관부터 관람하고 둘러보는 게 순서다.
수도권전철 1호선 인천역 1번 출구에서 길을 건너면 ‘중화가(中華街)’라는 현판을 단 패루가 보인다.
패루는 예전에 중국에서 큰 거리에 길을 가로질러 세운 시설물 혹은 무덤이나 공원 어귀에 세운 문을 가리킨다.
이곳에서는 차이나타운의 경계를 표시하는 4개 문으로, 중화가와 선린문(善隣門), 인화문(仁華門), 한중문(韓中門)이 있다.
중화가에서 3분쯤 걸어가면 짜짱면박물관이 나온다.
짜장면박물관은 짜장면의 모든 걸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인천 선린동 공화춘(국가등록문화재) 건물에 자리한다.
정문 위에 커다랗게 한자로 쓰인 ‘공화춘(共和春)’ 간판이 눈에 띈다.
공화춘은 무역상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인데, 중화요리가 인기를 끌며 음식점 공간이 넓어졌다.
여기에서 춘장(중국식 된장)을 볶아 국수에 얹은 짜장면을 처음 만들었다.
박물관에 입장하면 2층부터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을 따른다.
짜장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제1전시실에 들어가면 인천 부두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짜장면을 먹는 조형물이 있다.
짜장면의 역사는 인천항이 개항한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항과 더불어 중국(청나라), 미국, 독일, 일본 사람이 들어왔다.
중국인이 사는 거리에 문을 연 공화춘이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고, 먹기 편한 짜장면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배고픔을 달래줬다고 한다.
그 후 양파와 돼지고기 등을 넣어 우리 입맛에 맞게 바뀐 짜장면은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손꼽힌다.
제2전시실은 1930년대 공화춘 내부를 재현했고, 제3전시실은 짜장면의 전성기인 1970~1980년대를 표현했다.
당시 졸업식과 입학식을 마치고 가족이 중국집에서 외식하는 게 유행이었다.
교복 입은 학생이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 정겹다.
복도에 있는 제4전시실에 전시된 사자표 춘장과 곰표 밀가루는 짜장면이 대중화된 원인을 설명해준다.
화교 왕송산 씨가 캐러멜 소스를 혼합한 사자표 춘장을 개발했다.
짜장면에서 나는 단맛의 비밀이다.
1950년대 미국의 밀가루 원조가 면을 구하기 쉽게 했고, 정부는 1960~1970년대 혼·분식 장려 운동을 전개했다.
덕분에 짜장면은 가장 대중적인 밀가루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가정에서 조리하기 쉬운 간편식 짜장은 1970년대에 처음 나왔다.
2004년에 출시된 ‘짜짜로니’는 지금까지 사랑받는다.
제5전시실에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짜장라면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가족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짜장라면을 가리키며 즐거워한다.
중국집의 상징인 배달용 철가방 전시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고, 나중에 철가방으로 바뀌었다.
철가방은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선정한 지난 반세기 한국인의 일상 속 디자인에 들었다.
밝은 색상과 단순하면서 뛰어난 구조적 기능 때문이다.
짜장면박물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관람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이다.
짜장면박물관을 나와 북성동원조자장면거리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맛보기 공갈빵을 건네준다.
공갈빵은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인천차이나타운에서 탄생했다.
속이 텅 비고 겉만 부풀게 구웠으며, 빵보다 과자에 가깝다.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푹 꺼져 재미있다.
빵 안쪽에 설탕과 계핏가루를 베이스로 한 소를 얇게 발라 달콤하다. 탕후루(糖葫蘆)를 파는 가게도 많다.
산사나무 열매나 작은 과일을 꼬치에 꿰고 시럽을 발라 굳히는데, 단맛이 강해 아이들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