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남포마을 영화 축제의 마을에서 맞는 일출
장흥 남포마을 영화 축제의 마을에서 맞는 일출
여행, 영화의 감동은 반전과 맞닿아 있다.
외딴 길을 고집스럽게 달려왔는데, 아늑하고 아름다운 해변을 우연히 만나는 것은 반전이 깃든 감동이다.
그 낯선 해변이 영화 속 배경이 됐다면 감동지수는 두 배가량 치솟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는 역설과 반전이 담긴 영화다.
영화는 노모의 죽음, 장례식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을 ‘축제’라는 제목으로 그려낸다.
장흥 출신의 작가 고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장흥 용산면의 외딴 포구인 남포마을이다.
“불이 꺼져 있고 길이 없는 것 같아도 쭉 오시랑게요. 그 길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습니다.”
민박집 주인이 전화로 건네는 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남포마을로 가는 길.
분명 남도의 포구를 찾아가는데 작은 산들이 굽이굽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밤늦은 시간 남포마을에 닿는 길은 그렇듯 생경하다.
지방도를 따라 야트막한 산자락을 돌면 산이 끝나는 곳에 갯내음이 차창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어슴푸레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 바다와 인접한 조그만 포구가 영화 <축제>의 촬영지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서 있는 무인도인 소등섬도 영화에 단골로 등장했다.
<축제>의 배경이 됐던 가옥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화 제작진은 이곳 민박집에 오랫동안 머물며 축제(전통 장례식)의 현장을 생생하게 스크린에 담았다.
해변에는 영화 <축제>의 촬영지라는 영화비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어 감회를 새롭게 한다.
남포는 득량만 바다를 아늑하게 품은 갯마을이다, 안개 자욱한 바다 멀리로는 고흥군 거금도, 금당도, 소록도 등이 손에 잡힐 듯 아련히 늘어서 있다.
영화 촬영지 이전에 남포는 외지인들에게 석화(굴)와 바지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겨울이면 석화구이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의 여운이 스러진 뒤로는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 남포마을을 찾는다.
“굳이 쌀쌀한데 바깥에 나갈 필요 없어라우. 방 안에서도 다 보이는디.”
주민들 말 그대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소등섬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남해에서 맞는 일출은 동해에서 경험하는 해돋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해 일출이 장엄하다면 남해의 일출은 소박하고 단아하다. 창밖으로 머리를 빼꼼히 내민 채 맞는 일출은 좀 더 오붓하다.
영화 속 배경이 된 포구, 주인공 안성기와 오정해가 거닐던 해변, 그들이 묵었던 민박집 이런 몇 가지 요소들이 일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소등섬 위로 해가 치솟는 광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겨울이 좋지만, 다른 계절에 남포를 찾아도 단아한 해돋이는 변함이 없다.
남포마을 일대는 최근 정남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후 더욱 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남진은 광화문의 정남쪽이라는 뜻이다. 정남진을 알리는 비석이 영화 축제비와 나란히 서 있다.
일출을 감상한 뒤 날이 밝으면 소등섬까지 직접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물이 빠지면 하루 두 차례 소등섬을 연결하는 길이 열린다.
외롭게 선 소나무들이 자라는 소등섬은 소의 등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작은 불빛’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실제로 소등섬은 예전에 뱃사람들에게 등대와 같은 길잡이 구실을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소등섬은 정월 보름이면 당할머니 제사를 지내는 신령스런 섬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한 백발 노파가 꿈에 나타나 소등섬에서 제사를 지내면 마을이 평안하고 고기잡이도 잘될 것이라는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소등섬 노파의 전설이 담긴 남포마을에서 할머니의 장례를 소재로 다룬 영화 <축제>가 촬영된 것은 묘한 인연이다.
남포마을 구경을 마쳤으면 장흥읍내 탐진강변에서 열리는 토요시장에 들러 배를 두둑하게 채워볼 일이다.
매 2‧7일과 토‧일요일 장이 서는 토요시장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최근 인기를 끌었다.
시장 골목의 3대 곰탕집은 고현정이 주연한 드라마 <대물>에 나온 바로 그 곰탕집이다.
곰탕집 간판에 “대통령도 먹고 반한 곳”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곰탕집이 명성을 떨칠 만큼 장흥은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특산물인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삼합 요리도 색다른 맛을 자랑한다.
시장은 두 가지 독특한 모습으로도 시선을 끈다. 이곳 상인들은 이름표를 목에 걸고 물건을 파는 토종 상인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시장 한편에 들어선 다문화 전통거리에서 현지인이 판매하는 태국, 필리핀 음식 등을 직접 맛볼 수 있다.
토요시장은 이렇듯 지방 장터에서는 보기 드문 대조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남포마을 인근 억불산 기슭에 들어선 우드랜드는 여행객에게 깊은 휴식을 선사한다.
이 삼림욕장은 40년 된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을 거니는 숲체험과 누드 삼림욕으로 최근 유명세를 떨친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황토흙집과 전통 한옥 숙소가 들어서 있는데, 이곳 숙소도 드라마 <대물>의 촬영지로 전파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