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즐기는 해안 트레킹 양남 파도소리길
경주에서 즐기는 해안 트레킹 양남 파도소리길
대관령자연휴양림 맑은 자연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
그대, 천년 신라를 품은 경주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학창시절 수학여행지로 봉인되어 있던 경주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어느 봄날 이후였다.
경주 시내 봉분들 위로 흩날리는 꽃비 덕분에 경주를 흠모하게 되었으니까.
봄날의 경주를 만난 적이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리라. 물론 벚꽃 말고도 경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석굴암·불국사를 필두로 경주시내의 대릉원·첨성대·안압지 등.
어렴풋하게나마 추억 한 조각쯤 떠오르지 않는가.
여기에 남산까지 속속들이 걸어봤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그대는 경주를 흠모하고 있다.
경주, 어디까지 가봤나요?
경주는 크게 시내권, 석굴암·불국사권, 남산권 그리고 동해권 이렇게 4개 권역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찾는 이들이 늘어난 양동마을과 독락당 등 조선시대를 오롯이 품은 공간까지 더하면 더 풍요로운 경주 여행을 누릴 수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대릉원과 첨성대를 품은 시내권은 천년 신라 귀족들의 무덤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석굴암·불국사와 함께 경주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신라인들의 염원을 오롯이 품은 불국토, 남산도 빼놓을 수 없다.
오죽하면 경주에서 천년 신라를 속성(?)으로 살필 방법으로 국립경주박물관과 노천박물관 남산을 찾으면 된다는 말이 있을까.
경주에서 만나는 신라시대 동해안…문무대왕수중릉과 감은사지
포항 구룡포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27km쯤 내달리면 감포항과 닿는다.
경주의 대표적인 동해안 관광지로 꼽히는 감포항은 횟집이며 숙박시설 등을 제법 갖추고 있다.
2박 이상의 일정이라면 이 근처에서 하루쯤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경주에 와서 감포항만 보고 가서는 곤란하다.
감포항에서 남쪽으로 10km만 달려가면 문무대왕 수중릉과 닿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경주 동해권 여행의 중심은 문무대왕 수중릉과 여기서 내륙으로 1.6km 파고든 곳에 자리한 감은사지 3층석탑이다.
문무대왕(文武王), 그가 누구인가. 기어코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게 한 장본인.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가야 왕손 김유신의 누이, 문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라 최초 아니, 한반도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과 함께 천년 신라의 토대를 만든 김춘추를 아버지로 또 김유신을 외숙으로 둔 것.
그가 잠들었다는 수중릉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김유신과 김춘추도 함께 떠오른다.
그들이 그 시대에 만나지 못했더라면 과연 신라는 지금과 같은 역사를 꾸릴 수 있었을까.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모든 것을 걸었던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염원을 놓지 않았다.
21세기 후손들이 지금 문무대왕 수중릉을 볼 수 있게 된 이유다.
문무대왕이 잠든 이곳은 동해에서 신라 수도 서라벌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문무왕은 부처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품고 감은사지를 지었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神文王)때 완공했다.
수중릉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감은사지 3층석탑이 자리한다.
두 개의 커다란 삼층석탑은 이후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원형이 된다.
금당 아래 석축 사이에 넓은 공간이 비어 있는 것은 동해에 잠든 문무왕이 용이 되어 오가던 통로라고 전해진다.
수중릉의 진위여부를 두고 이견이 분분하지만 삼국 중 가장 변방에 자리한 신라를 한반도 중앙, 아니 전면에 등장시킨 문무대왕의 마음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