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닮은 지리산 바래봉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닮은 지리산 바래봉
매화, 산수유, 벚꽃 등 흐드러지게 피어 봄을 알리던 꽃 잔치도 끝나고, 연둣빛 신록과 더불어 계절의 여왕 5월이 찾아왔다.
해마다 5월이면 남원의 지리산 자락에는 아름다운 꽃길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정상을 향해 불길처럼 번진다.
진분홍빛으로 물드는 바래봉 일원의 철쭉 군락이다.
바래봉은 바리때(승려의 공양 그릇)를 엎어놓은 모양을 닮아 ‘바리봉’이라 부르다가 음이 변한 이름이다.
바래봉 아래 운봉 사람들은 산이 삿갓처럼 생겼다고 ‘삿갓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래봉의 철쭉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60년대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뒤 면양 사육이 시작되면서부터다.
1972년 남원의 운봉에 면양시범농장이 들어섰고, 바래봉 일대에 면양을 방목했다.
면양 수천 마리가 바래봉 일대를 휘저으며 나뭇잎과 풀을 모조리 뜯어 먹었다.
하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지 않아 그대로 남았고, 면양의 이동 통로를 따라 차츰 영역이 확대되어 지금처럼 군락을 이뤘다.
1990년대 이후 경제성이 떨어지는 면양 방목이 중단되자, 철쭉 군락이 명성을 얻었다.
바래봉은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허브밸리에서 시작해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을 에둘러 올라야 한다.
지리산허브밸리에서 운지사 삼거리까지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길 옆 소나무 숲을 따라 300m 정도 데크가 이어져 밋밋한 등산길을 대신한다.
운지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을 지나 본격적인 탐방로가 시작된다.
해발 1165m 바래봉 정상까지 3km가 채 안 된다. 가파른 길을 따라 꼬박 한 시간쯤 힘겹게 오르면 비로소 능선에 닿아 편한 길이 이어진다.
바래봉에 오르는 산길은 박석을 깔거나 시멘트 길을 내지 않았지만, 두 시간이 채 안 되어 바래봉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점은 매력적이다.
바래봉 철쭉은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을 지나 만나는 산 하단부와 바래봉으로 오르는 구릉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정상부 등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가축유전자원시험장 인근의 철쭉 군락은 바래봉 철쭉의 개화 지표로 가장 먼저 핀다.
4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한 철쭉은 5월 초순에 700~900m 8부 능선, 5월 중·하순이면 정상 부근 능선에 만개한다.
특히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 정상을 거쳐 팔랑치로 이어지는 2km 구간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철쭉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래봉 철쭉은 사람 가슴 높이 정도로 빽빽하게 군락을 이뤄 잘 가꾼 정원 같다. 40여 년 전 면양과 산철쭉이 만든 작품이다.
진분홍 꽃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지면 천혜의 비경이 따로 없다.
바래봉의 철쭉은 빛깔이 진한 산철쭉이다.
철쭉은 연분홍빛을 띠고 꽃잎과 잎이 둥그스름한데, 산철쭉은 빛깔이 훨씬 진하고 꽃잎과 잎이 뾰족하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꽃과 잎이 같이 나는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하기 때문에 개꽃이라 부르는 점도 기억해두면 좋다.
이왕 나선 김에 바래봉 정상에 올라보자.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까지는 0.5km, 절반쯤 숲길을 따라가나 싶더니 어느새 공양 그릇을 엎어놓은 듯 둥그스름한 바래봉이 보인다.
바래봉에서는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래봉삼거리에서 정령치를 거쳐 성삼재로 이르는 능선 가운데 세걸산과 만복대가 보이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연하봉, 천왕봉 등 지리산의 고봉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진분홍 철쭉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철쭉 군락이 이어지는 팔랑치를 거쳐 세걸산에 다녀오기를 권한다.
지리산허브밸리에서 바래봉 정상까지는 왕복 7.4km로 여유 있게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원의 5월은 바래봉 철쭉뿐만 아니라 춘향과 몽룡의 사랑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