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예술 여행 광주 의재미술관
봄날의 예술 여행 광주 의재미술관
볕 좋은 봄날 주말. 산길을 가다 쉬다, 주변도 좀 두리번거리고 하늘도 쳐다보면서 느긋하게 걷는 산책길.
그 중간 어디쯤,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들어앉은 미술관이 있어 또 슥 들어가 어슬렁거리다가,
지루해지면 되돌아 나와 푸른 차밭도 구경하고 절집도 둘러보고… 그런 산책로, 그런 미술관이 집 가까이 있으면 참 좋겠다. 여기 무등산 자락 증심사 계곡의 의재미술관처럼.
요즘 남도는 물 오른 나뭇가지며, 만개한 개나리며, 따스한 햇살과 바람이며, 아주 터질 듯 봄이 무르익었다.
예향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은 이맘때면 봄을 마중하려는 상춘객들로 등산로 곳곳이 울긋불긋 원색 물결을 이룬다.
수많은 등산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증심사에서 오르는 길.
어린아이도 갈 만한 쉬운 코스라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유난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무등산 등반이 아니다.
증심사 입구의 햇볕 잘 드는 계곡 옆에 둥지를 튼 작은 미술관, 진도에서 태어나 무등산 자락에 30년을 거하면서
평생 남도의 산수를 그리다 간 남종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 선생의 그림들이 살고 있는 집, 의재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이다.
광주 시내에서 증심사 입구까지 직선 도로에는 ‘의재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승용차로 간 사람도, 광주터미널 앞에서 증심사행 시내버스를 탄 사람도 모두 의재로를 거쳐 증심사 입구 주차장에 닿게 된다. 여기서부터 일반 차량은 더 들어갈 수 없다.
넓고 평평하게 난 길을 따라 가볍게 걷기 시작한다. 아웃도어 용품점과 식당, 카페 등이 즐비한 풍경은 다른 산들과 비슷하다.
무등산의 국립공원 승격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어라, 무등산이 여태 국립공원이 아니었어?’
무등산은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40년 만인 2012년 말에야 21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
완만한 등산로를 천천히 걸어 20여 분. 길 왼쪽에 드디어 건물 하나가 나타난다.
무등산 등산로 지형을 그대로 살려 비스듬한 경사 위에 앉힌 ‘풍경 속의 미술관’, 의재미술관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은 건축가 조성룡과 김종규의 공동 설계로 지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미술관은 모두 3개 동으로 이루어졌다. 증심사를 향해 오르다 처음 만나는 이 건물은 전시동이고,
바로 그 옆에 삼애헌이라는 작은 건물, 또 그 옆에 관리동까지 총 3개 건물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살아생전 의재 선생이 농업학교로 쓰던 건물을 수리해 만든 삼애헌은 차문화교실로 쓰인다.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유리로 마감한 의재미술관은 산과 물과 나무들 옆에 무심한 듯 툭 놓여 있어 튀거나 도드라지지 않는다.
자연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의재 선생의 작품과 무등산의 조화를 건축물에 담아냈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아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