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 문화예술의 요람 계산예가 이상화,서상돈 고택
대구 근대 문화예술의 요람 계산예가 이상화,서상돈 고택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은 대구 근대 문화 유적의 살아 있는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계산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동네에 있던 산인 계산(桂山)에서 유래하는데 계산은 현재 동산병원이 들어 서 있는 동산(東山)의 옛 이름이다.
이곳은 당시 한양을 오가던 길목이었으며 1989년 전후 여러 서양 선교사가 자리 잡은 삶의 터전이었다.
계산예가는 계산동, 그리고 남산동 일대에서 활약하며 20세기 초 한국 근대문화를 이끌었던 예술인의 활동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근대문화체험관으로, 2022년 대구광역시가 추천한 한국관광공사 안심 관광지로 선정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분단,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계산동 일대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문인,
화가, 음악인들로 붐비는 명실상부한 문화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문예지 간행, 동인 활동, 미술전람회, 음악회도 줄을 이었다.
계산성당 옆 골목에 위치한 계산예가는 한국 문단의 주류를 이룬 이상화·현진건·백기만, 근대 서양음악의 기틀을 다진
김문보·박태준·현제명, 대구에 서양미술의 뿌리를 내린
이상정·박명조·서동진,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 이인성 등 근대 시기에 계산동과 남산동
일원에서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선도한 예술인의 활약상을 알리기 위해 2012년 4월 1일에 개관했다.
계산예가는 대구의 문화예술인과 그들의 성취를 소개하는 전시관, 근대 문화예술인의 작품을 게임으로 풀어보는 근대문화체험실,
계산동을 포함한 도심 일원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영상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대 수집한 유물과 문물 전시를 비롯해 사진과 영상 자료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재생하는 것이다.
한편, 계산예가는 대구 도심 골목 투어의 핵심 거점인 이상화·서상돈 고택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계산예가와 이웃한 장소에 위치한 이상화 고택은 항일문학가로 잘 알려진
이상화 시인(李相和, 1901~1943)이 1939년에서 작고하던 1943년까지 거주하던 역사적 장소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의 광복을 위해 저항정신의 횃불을 밝힌 이상화 시인의 시향(詩香)이 남아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상화 고택은 도심 개발로 헐릴 위기에 처한 바 있으나 1999년 전개된 대구고택보존시민운동으로 터를 지킬 수 있었으며 한옥
목조주택 2동의 1940년대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한 1년간의 보수공사 끝에 2008년 8월 12일 개방됐다.
이상화 고택 옆에 위치한 서상돈 고택은 조선 말기의 관료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상돈 선생(徐相敦, 1851~1913)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으로,
대구광역시는 서상돈 생가 이전 복원과 동시에 국채보상공원을 조성하고 서상돈 선생 동상을 세우는 등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서상돈 선생은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해 대구 광문사 김광제 사장과 함께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바 있다. 고택 내부에 서상돈 선생이 작성한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대구, 나아가 대한민국 근대 문화예술과 역사의 ‘뿌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 계산예가와 이상화·서상돈 고택 여행.
인생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욜로족’이라면 단연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근원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계산동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근대 문화유산의 흔적을 두 발로 걸으며 찾다 보면 자기 자신, 나아가 삶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