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불교의 역사적 변천 양주 회암사지의 이야기
조선 불교의 역사적 변천 양주 회암사지의 이야기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유적지는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서 배우는 조선의 유교 문화 발전 단원에 나오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초기 불교를 중시하던 왕실과 유학자들 사이의 강력한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회암사는 200년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절로 기존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힘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새 세력에 의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옛나라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회암사는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덧없는지 무언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절은 천보산을 등지고 불곡산과 삼각산을 바라보는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주변에 공장과 비닐하우스가 있어 다소 엉성해 보일 수 있지만 처음 자리 잡았을 당시의 모습은 여전히 고요하고 기운이 넘칩니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2세기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소규모였으나 1328년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와 그의 제자인 나옹선사에 의해 큰 사찰로 재탄생합니다
고려 말 문헌에 따르면 당시 회암사는 262칸에 이르는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법당에는 15척 불상 7구와 10척 관음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 회암사가 불타고 폐허로 방치되었으며 현재는 발굴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조선 건국자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했으며 퇴위 후 이곳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옛나라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회암사는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덧없는지 무언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절은 천보산을 등지고 불곡산과 삼각산을 바라보는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주변에 공장과 비닐하우스가 있어 다소 엉성해 보일 수 있지만 처음 자리 잡았을 당시의 모습은 여전히 고요하고 기운이 넘칩니다
이후 다시 번영을 맞았던 회암사는 명종 때 문정왕후의 지원을 받은 보우대사와 관련된 사건으로 폐허가 됩니다
명종실록에는 유학자들이 회암사를 불태우려 했다는 기록과 선조실록에는 옛 터에 불에 탄 종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암사는 조선의 유교와 불교 사이의 첨예한 대립의 무대였습니다
지금도 회암사지에 가면 당간 지주와 무학대사 부도가 산중턱에 남아 있고 좌청룡 우백호 지형 속 명당자리라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현대에 신축된 또 다른 회암사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공과 나옹의 부도 그리고 무학대사의 부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나옹선사의 부도는 특별한 기운을 가진 명당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적지를 통해 당시의 문화적 조류와 역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