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함께 지켜요 태안 유류피해극복기념관과 태배길
바다를 함께 지켜요 태안 유류피해극복기념관과 태배길
2021년 화창한 어느 가을날, 태안 앞바다에 섰다.
서해안 물빛이 이리 고왔나 놀랄 만큼 바다가 맑고 아름답다.
만리포해수욕장 끝자락에서 만난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아니면 이 바다가 10여 년 전, 기름으로 뒤덮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릴 뻔했다.
2007년 12월 7일,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해상 크레인이 충돌해 엄청난 기름이 유출되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다.
시커먼 기름이 바다를 뒤덮은 끔찍한 장면이 TV로 전송됐다.
검게 물든 바다는 쉽게 회복되지 못할 듯 보였다.
전문가들조차 태안 앞바다가 회복되려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을 했다.
이후 전문 방제 인력 외 전국 각지에서 12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태안으로 몰려와 기름 제거에 구슬땀을 흘렸다.
자원봉사자가 인간 띠를 이뤄 바다의 기름띠를 제거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그 결과 만리포해수욕장은 2008년 6월, ‘해수욕 적합’ 판정을 받고 다시 개장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당시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환경오염 사건과 극복 과정이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은 사고 발생 10년째가 되던 2017년, 사고 현장인 만리포해수욕장 인근에 문을 열었다.
잊혀가던 유류 유출 사고의 아픔과 극복 과정, 자원봉사자의 헌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이다.
2층은 영상체험실로 꾸몄다. 기름 제거하기, 해양 생물 되살리기 등 영상 체험이 가능하다.
‘기름 제거하기’는 터치스크린에서 헌 옷, 고압 세척기,
흡착포 같은 도구를 선택해 기름을 제거하는 놀이 형태 체험으로, 당시 자원봉사자의 노고를 되새기게 한다.
‘해양 생물 되살리기’는 종이에 그려진 바다 생물을 선택해 채색하고, 스캐너로 이미지를 전송해 대형 스크린에 띄우는 체험이다.
바닷속 풍경을 담은 스크린에 ‘웃는 돌고래’라는 애칭이 있는 상괭이를 포함한 태안 앞바다의 해양 생물과 체험객이 띄운 물고기가 함께 노닌다.
태안 바다 환경이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된 상괭이가 나타날 정도로 회복됐음을 보여준다.
유류피해극복기념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관람료는 없다.
해설사 안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태배길’도 걸어보길 추천한다.
유류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을 하러 오가던 길이 걷기 코스로 다시 태어났다.
전체 길이 약 6.5km 순환형 코스로, 유류 유출 피해의 아픔과 극복의 기쁨을 담아 6개 구간에 각각 순례길,
고난길, 복구길, 조화길, 상생길, 희망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태배길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이곳 풍광에 반해 시를 남겼다는 유래가 전할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의항과 구름포, 안태배, 신너루 등 해안 풍경이 아름답고,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하는 태배전망대도 있다.
태배길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찰나의 감동을 넘어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이 길을 묵묵히 오가며 곳곳을 청소한 자원봉사자의 수고가 뒷받침된 비경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태안의 아름다운 풍경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감사와 환경보호 실천 의지를 담아 한 걸음, 한 걸음 디뎌본다.
태안 유류 유출 사고를 얼마나 잘 극복했는지 살펴보려면 주요 피해 지역 가운데 하나인 만리포해수욕장 일대를 돌아보자.
백사장과 갯벌이 드넓은 이곳은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이라는 명성을 되찾았고,
최근 서핑 명소로 자리매김하며 서핑 메카인 미국 캘리포니아에 빗대 ‘만리포니아’라는 애칭도 얻었다.
맑은 바다와 백사장, 갯벌, 서핑에 서해안 낙조까지, 우리가 바다에서 원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
해수욕장 끝자락에 지난 7월 만리포전망타워가 문을 열었다.
높이 37.5m, 지름 15m 규모로 전망대에 오르면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전망대가 원기둥 모양이라 한 바퀴 돌며 바다부터 산과 논밭까지 만리포 주변 경관을 두루 조망할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내려올 때는 기상 상황이 허락한다면 야외 계단을 이용해보자.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눈에 담는 풍경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