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에서 보내는 느긋한 휴가 한개마을과 포천계곡

성주에서 보내는 느긋한 휴가

성주에서 보내는 느긋한 휴가 한개마을과 포천계곡

성주에서 보내는 느긋한 휴가 한개마을과 포천계곡

해안길 걸으니 부산이 품에 안긴다 부산 이기대 해안산책로

참외가 노랗게 익어가는 6월이다. 이 무렵 성주에 가면 농장에서 갓 딴 참외를 판매하는데,

한 봉지만 사도 차 안이 온통 달큼한 냄새로 가득하다. 옛 골목이 아름다운

한개마을을 천천히 걷다가 시원한 포천계곡에 앉아 아삭한 참외를 한입 베어 물면, 그보다 여유롭고 느긋한 휴가가 또 있을까 싶다.

성주 한개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주민들이 살며 옛 모습을 지켜가는 전통 마을이다.

뒤쪽으로 영취산이 포근히 감싸고, 앞으로 두 하천이 만나서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길지다.

한개는 ‘큰 개울’ ‘큰 나루’를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과거 마을에 큰 개울이나 나루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한개마을은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들어와 개척한 마을로,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사도세자의 호위 무관으로, 뒷날 정조가 되는

세손을 업고 몸싸움 끝에 입궐해 영조에게 아비를 살려달라 청할 수 있도록 도운 돈재 이석문이 한개마을 출신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관직을 빼앗기고 낙향해 평생 은거했는데, 사도세자를 추모하는 뜻에서

여닫이문을 북쪽으로 냈다는 북비고택(응와종택, 경북민속문화재)이 바로 돈재가 머물던 곳이다.

돈재의 증손자이자 조선 유림을 대표하는 문장가 응와 이원조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병조참판을 지냈는가 하면, 1866년 병인양요가 발발하자 75세 노구에도

의병을 모집해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이 같은 업적 덕분에 응와종택은 대감댁으로 불린다.

조선 후기 대학자로 꼽히는 한주 이진상과 그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 대계 이승희도

한개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주는 ‘심즉리설’을 내세워 당대와 현대 철학자들에게 주목받았다.

대계는 을사오적을 참수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구감옥소에 투옥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일제 침략을 폭로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 부자의 숨결이 남아 있는 대산동 한주종택(경북민속문화재)은 국가보훈처에서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

한때 100여 채에 이르던 집은 현재 70여 채 남았다.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지은 집으로,

그 원형을 잘 간직해 지역의 건축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대산동 교리댁(경북민속문화재)은 멋스러운 사랑채와 잘 가꾼 정원이 아름답다.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온전한 모습을 감상하기 어렵지만,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사랑채 툇보에서 경북 한옥의 미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튼 ㅁ’ 자형 배치가 두드러진 대산리 하회댁과 도동댁,

대산동 월곡댁 등도 경북민속문화재로 지정돼 눈여겨볼 만하다. 후손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보니 문이 닫힌 경우, 외부 관람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정겨운 담장이 고택을 이어 골목이 호젓하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초록빛과 알록달록 피어난 꽃이 어우러져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다.

한개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포천계곡이 있다. 가야산이 빚어낸 그림 같은 계곡으로,

반석의 짙푸른 무늬가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고 포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7km에 이르는 물줄기를

따라 곳곳에 너럭바위와 작은 폭포가 펼쳐져, 주민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이자 물놀이 명소다.

포천계곡에 처음 간다면 상류에 자리한 성주 만귀정(경북문화재자료)을 목적지로 추천한다.

한개마을 출신 이원조가 만년에 후학을 양성하고 자연을 벗 삼아 독서하던 곳이다.

포천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꼽은 포천구곡 가운데 9곡에 속하는 홍개동 근처라 풍광이 빼어나다.

물빛이 맑고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계단처럼 이어진 폭포가 한낮의 무더위를 시원스레 날린다.

한개마을에서 포천계곡으로 향하는 길에 성주역사테마공원도 들러보자.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기록으로 남은 성주읍성을 비롯해 객사

연못에 세웠다는 쌍도정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성주사고

등이 볼거리를 더한다. 특히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실록각 2층에 관련 전시 공간을 마련해 방문객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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