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사임당 빛의 일기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배우 이영애가 기나긴 침묵을 깨고 지난 1월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 이후 13년 만이다. 그녀의 반가운 귀환을 알린 작품은 <사임당 빛의 일기>.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사실과 픽션이 교차하는 퓨전사극이다.

극중 이영애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과 조선시대 사임당 1인 2역을 연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현모양처로만 알고 있는 사임당을 재해석하여 예술혼에 불타는 ‘천재화가’이자 이겸(송승헌 분)과 첫사랑에 빠지는 ‘여자’ 사임당을 동시에 그려내는 중이다.

또 하나의 대작이 탄생한 곳, 강릉 오죽헌(이하 오죽헌)과 강릉 선교장(이하 선교장)을 찾았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한국미술사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수진방일기(드라마 상 허구로 설정된 책)>를 입수하면서 시작한다.

<수진방일기>는 신사임당의 일기로 추정된다. 서지윤은 이를 해독하던 중 사임당과 이겸(드라마 상 허구의 인물)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오죽헌으로 향한다.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이자 사임당의 외가이다. 흔히 경내에 자리한 별당, 안채와 바깥채,

문성사, 어제각을 합하여 오죽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율곡이 태어난 별당을 말한다.

오죽헌은 뜰에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유독 많다 하여 이름 붙었다.

율곡이 태어난 방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질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용꿈을 꾸었기 때문에 몽룡실이라 불린다. 현재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졌다.

오죽헌은 현존하는 주거용 주택 중 비교적 오래된 축에 속한다.

간결한 형식으로 지어져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어떻게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의 존재 덕분이다. 율곡은 여덟 살 때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팔세부시(八歲賦時)’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다.

열세 살 때 치른 진사시 초시를 시작으로 스물아홉 살 때 치른 문과에 이르기까지 아홉 번의 과거시험에서

모두 다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능히 조선 최고의 천재라 불릴 만하다.

오죽헌 왼편 건물은 문성사다. 율곡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인조가 율곡에게 내린 시호(학덕 높은 선비가 죽은 뒤 임금으로부터 받은 이름)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건립했다.

오죽헌 왼쪽 통로를 통해 안채와 바깥채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택의 고즈넉함을 느껴 볼 수 있다.

바깥채는 오죽헌 정화사업 당시 오죽헌과 더불어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은 고마운 존재이다.

툇마루 기둥에 걸린 주련(기둥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라 하니 그 가치가 각별하다.

어제각에는 율곡이 어릴 때 사용했던 벼루와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격몽요결을 전시하고 있다.

뒤뜰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길이 있는데, 이겸(송승헌 분)이 고뇌에 잠긴 채 걷는 장면을 촬영한 길이다.

이겸은 사임당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인물이다. 도포를 멋지게 차려입은 이겸이 감정을 잡고 터벅터벅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솔내음 짙게 배어 있는 소나무길은 상쾌한 산책로로 제격이지만 아쉽게도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사주문 밖 율곡기념관에서는 사임당의 수묵화와 글씨, 율곡의 저서, 사임당의 그림을 살아 움직이듯이 표현한 디지털갤러리 등을 감상할 수 있으니 빼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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