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주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밀양 돼지국밥

위로가 되어주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밀양 돼지국밥

위로가 되어주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밀양 돼지국밥

영양 선바위와 남이포 역적이 된 남이장군이야기

경상도 이외 지역 사람들에게는 돼지국밥이란 음식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밥은 먹어보지 않은 이상 선뜻 상상하기 힘든 맛일 수도 있다.

경상도에서 보편화된 음식인 돼지국밥이 지난겨울 전국적으로 크게 조명을 받았다.

바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변호인>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돼지국밥은 주인공 송강호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돼지국밥집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훌훌 말아먹는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은 마음에 묘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부산과 경남 지역의 대중식인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당시 경상도 지역으로 피란 온 사람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고,

경상도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탄생설이 여러 가지이듯 원조 지방을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 부산과 경남 밀양을 돼지국밥의 원조로 인정한다.

부산의 돼지국밥집들은 이미 많이 소개가 됐으므로, 오늘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밀양의 돼지국밥집들을 찾아가보고자 한다.

먼저, 제대로 된 밀양식 돼지국밥을 만나보고 싶다면 밀양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무안면으로 가보자.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 가면 무안면 읍내에 도착한다.

밀양 돼지국밥의 원조로 손꼽히는 곳이 ‘양산식당’인데, 그 명맥을 잇는 ‘동부식육식당’에 전국의 미식가들이 모여든다.

동부식육식당 최수곤 사장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무안면 장터에서 양산식당을 운영했고, 지금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동부식육식당의 돼지국밥은 다른 곳에서 흔히 접하는 돼지국밥들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국물이 뽀얀 색을 띠지 않고 맑은 편이다. 일반적인 돼지국밥과 달리 돼지뼈가 아니라 소뼈를 고아낸 국물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돼지국밥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소뼈 육수와 함께 누린내가 나지 않는 질 좋은 암퇘지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가 없으니 굳이 부추를 함께 내놓지 않는단다.

국밥에 약간의 파와 깨소금만 올려서 낼 뿐이다. 양념장도 얹지 않고 따로 주기 때문에 깔끔한 국물 맛을 그대로 음미할 수 있다.

얼큰한 맛을 선호한다면 양념장을 넣어 먹으면 된다.

소뼈 육수를 기본으로 사용하니 돼지국밥뿐 아니라 소고기국밥도 맛볼 수 있다.

식육식당이라 질 좋은 고기도 판매하며, 수육과 소고기육회 메뉴도 있다.

주변에 자리한 ‘제일식육식당’과 ‘무안식육식당’도 모두 양산식당 후손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나라에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표면에 물이 맺혀 ‘땀 흘리는 비석’이라고도 불리는 표충비(지방유형문화재 제15호)가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유적도 관람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돼지국밥 6,000원, 따로국밥 6,500원, 소국밥 6,000원.

밀양전통시장 좁은 골목길에는 이름부터 정겨운 ‘단골집’이 자리한다.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이 아닌 이상 우연히 지나다가 발견하기는 어려운 위치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서로 편안하게 안부를 물을 정도로 단골이 많다. 단골집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영양 선바위와 남이포 역적이 된 남이장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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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선바위와 남이포 역적이 된 남이장군이야기

쉼표가 있는 농촌 숲 속 여행 지리산의 너그러움에 물드는 하동 여행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 중의 오지, 바로 영양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굽이굽이 국도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영양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법한 아름답고 청정한 고장이다.

일월산자락의 성스러운 분위기와 밤이 되면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별빛이 오염되지 않은 영양의 모습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산촌마을의 외롭고 맑은 분위기는 하루 밤 묵어가고 싶은 간절함을 꿈꾸게 만들어준다.

이 아름다운 영양에 조선시대 풍운의 꿈을 안고 스러져간 남이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남이장군의 설화가 얽힌 영양을 여행하며 교과서여행지로서 영양의 매력을 만끽해 보도록 하자.

조선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이 발발되었다.

이시애는 원래 함길도 길주의 지방토착 세력으로 세조 치하에 토호들의 세력이 약화되자 강한 반발심을 품게 되어 난을 일으킨 인물이다.

이시애는 난을 일으키기 전 함길도 전역에 흉흉한 소문을 퍼트려 민심을 어지럽혔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을 죽이며 난을 일으켰다.

초반에 이시애의 난은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수많은 고을 수령들이 피살되었고 왕을 신뢰하지 않았던 백성들은 이시애의 휘하에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조는 이 난을 잠재우기 위해 의외의 인물을 중용했는데, 그 인물이 스물여섯의 조카 구성군과 남이장군이었다.

구성군과 남이장군은 이시애의 난을 멋지게 해결해 조정의 중요 인물로 전면에 설수 있게 되었고, 세조는 이들의 공을 치하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인사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큰 공을 세운 스물여섯의 구성군을 영의정에, 역시 젊은 남이장군을 병조판서에 임명한 것이다.

조정대신들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세조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당시 한명회나 신숙주와 같은 구공신들은 이미 너무나 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공을 세운 젊은 신진들의 힘을 함께 키워주기 위한 세조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였던 것이다.

세조가 이와 같은 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악화된 세조의 건강 때문이었다.

세조의 뒤를 이을 예종이 권력의 균형을 갖춘 세력을 이끌기를 원했던 것이다.

세조는 이와 같은 개혁을 단행하고 얼마 있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세조가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던 구성군과 남이장군 중 구성군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으로 조정신료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남이장군은 나서기를 좋아하고 겸손하지 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구공신들을 무시하고 뻣뻣하게 구는 남이장군을 조정신료들이 곱게 봐주기 만무했다.

남이장군을 총애하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남이장군에 대한 신료들의 상소가 빗발쳐,

예종은 즉위한 당일 바로 남이장군을 좌천시켰다.

이에 남이는 자신을 좌천시킨 조정 신료들에게 불만을 품게 되고 역시 자신처럼 세조 시절 총애를 받았던 유자광을 찾아가 그의 심정에 대해 토로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자광은 남이를 만나고 난 뒤 바로 대궐로 들어가 남이 장군이 역심을 품었다고 고변을 했다.

유자광은 남이의 역심을 고변하는 자리에서 남이가 쓴 시를 바꿔치기 하여 ‘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라는 시구절로 예종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남이 장군은 결국 역적의 혐의를 받아 처형당했다.

실록에 기록된 대로 그가 정말로 역심을 품어 반란을 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백성들은 젊은 나이에 큰 칼을 휘두르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민심을 잠재웠던 훌륭한 장수 남이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은 무당이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아, 남이장군을 몸주로 모시는 무당들이 남이장군의 죽음 이후에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백성들 사이에도 남이장군의 용맹함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영양의 선바위와 남이포에도 억울하게 죽은 남이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다.

쉼표가 있는 농촌 숲 속 여행 지리산의 너그러움에 물드는 하동 여행

쉼표가 있는 농촌 숲 속 여행 지리산의 너그러움에 물드는 하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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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교도소의 흔적을 만나다 전북 익산 교도소세트장

하동 화개면의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 계곡을 따라 4.2km 가량 이어지는 서산대사길은 실제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물며 걸었던 길일뿐만 아니라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사색을 했던 길이라고 전해진다.

서산대사길을 걸으며 옛 위인의 자취와 함께 사색에 잠겨보자. 서산대사길 끝자락에 다다르면 해방 이후 빨치산

사건으로 생긴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리산역사관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지리산역사관에서 가슴 아픈 현대사와 지리산에서 터전을 가꾸고 살아가던 화전민들의

생활상을 둘러본 후에는 인근에 위치한 농촌체험마을 <의신마을>로 가보자.

반달가슴곰을 통해 자연을 배우는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탐방해설 프로그램, 반달가슴곰의 배설물로 발효퇴비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양분으로 자라는 야생화 화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체험이 끝난 후에는 의신마을 선학관에서 신선한 식재료로 차린 산나물밥상을 맛보고, 하룻밤 묵어가자.

다음 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대표 시장, 화개장터를 둘러보고, 그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박경리문학관, 최참판댁, 토지 촬영지를 둘러본 후 여행을 마무리하자.

서산대사길

지리산 옛길로 불리는 서산대사길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거쳐 의신계곡을 지나 지리산 주 능선의

벽소령을 넘어 하동군 화개면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옛길 구간 4.2km를 말한다.

옛 보부상들이 하동 광양 등 남해안의 소금과 해산물을 벽소령을 넘어 함양 등 내륙지방으로 물건을 팔러 다니던

길이자 의신 마을 주민들이 산에서 구워낸 참숯을 하동 화개장터로 넘나들던 옛길 그대로이다.

지리산에 머무는 동안 오가며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지리산 화개천을 따라 지리산 모퉁이를 돌고 돌아 꼬불꼬불 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하동군 화개면에 위치한 지리산 역사관은 지리산에 얽힌 고단한 삶들을 기리는 곳으로, 총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은 지리산 깊은 숲 속에 불을 내어 밭뙈기를 일구며 살았던 화전민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제2전시실에는 6.25 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에서 벌어졌던 전쟁에 관한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는 다양한 총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 시대를 힘겹게 살아갔던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동안 현재의 무탈함에 안도하게 된다.

지리산을 이고 있는 듯한 역사관 주변의 모습이 아름답다.

의신마을은 화개동 골짜기 상류에 자리잡은 아늑한 마을로,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청정한 환경을 머금은 산나물과 산약초, 송이버섯, 고로쇠 수액 등 품질 좋은 특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과 야생화 학습장을 조성하여 야생화 화분 만들기 등 다양한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부녀회 어머니들이 정성껏 준비하는 산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체험관인 선학관도 있다.

숙박 시설도 잘 갖추고 있어 지리산 품속에서 쉼을 맛보기 좋다.

영화 속 교도소의 흔적을 만나다 전북 익산 교도소세트장

영화 속 교도소의 흔적을 만나다 전북 익산 교도소세트장

영화 속 교도소의 흔적을 만나다 전북 익산 교도소세트장

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 싱싱하고 맛있다

누구도 넘지 못할 높은 담, 차가운 철문과 쇠창살,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시간과 공간

교도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잔상이다. 교도소는 죄를 짓지 않는 이상 들어가려야 갈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전북 익산에는 교도소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만든 교도소세트장이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교도소 내부를 둘러보는 느낌은 어떨까? 을씨년스럽고 독특한 풍경을 선사하는 교도소세트장을 찾아가보자.

전북 익산에 자리 잡은 교도소세트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영화 촬영용 교도소다.

영화 <홀리데이> 는 교도소세트장에서 탄생한 첫 번째 영화이자 교도소세트장의 탄생 배경이 되는 영화다.

교도소세트장은 지난 2005년 영화 <홀리데이> 를 촬영하기 위해 익산시와 영화제작사가 손을 잡고 세웠다.

<홀리데이> 를 시작으로 영화 <거룩한 계보> , <타짜> , <식객> , <해바라기> 를 촬영했고, 드라마 <아이리스> ,

<태양을 삼켜라> , <수상한 삼형제> 와 가장 최근에는 <노란 복수초> , <더킹투하츠> 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원래 이곳은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가 있던 곳이다.

남성분교가 폐교된 후 학교 부지 위에 교도소 건물을 올린 것이다.

아직도 본관 건물과 널찍한 운동장이 옛날 학교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교도소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늘 편견이 묻어난다.

세상과 격리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죄를 짓고 들어온 사람들의 날카로운 표정과 눈빛이 넘나드는 곳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교도소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지만, 영화 <빠삐용> 이나 <쇼생크 탈출> 에서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는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영화 <홀리데이> 의 지강헌, <거룩한 계보> 의 동치성, 드라마 <노란 복수초> 의 설연화도 그랬다.

암울한 회색빛 담장과 높은 망루 사이로 두툼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교도소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출입문 우측 담장 아래에는 그동안 촬영했던 영화와 드라마 포스터가 길게 도열해 있다.

비록 촬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철문을 들어서는 순간 낯선 세상으로 들어서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수 m에 이르는 높은 담장이 망루들을 휘감아 하늘은 담장이 감싸고 있는 그만큼만 보인다.

교도소세트장 내부는 철문과 쇠창살의 연속이다. 차디찬 쇳덩어리와 회색 벽이 음울한 공간을 연출한다.

높은 천장과 작은 창문으로 새어드는 빛이 교도소 공간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교도소 내부는 면회장, 취조실, 수감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감시설은 2층으로 좌우 양쪽에 나란히 이어져 있다.

대부분은 들어갈 수 없지만, 1층 독방과 2층의 일부 수감시설은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다.

1층 독방은 최근 종영된 드라마 <더킹투하츠> 에서 중국 공안에게 잡힌 김항아(하지원 분)가 수용되었던 독방이다.

당시 벽에 썼던 붉은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다. 교도소세트장 곳곳에서 일부러 남겨둔 당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내부를 둘러보다 보면 교도소 이름도 ‘익산교도소’ ‘안양교도소’등 다양하다.

곳곳에 붙은 표어나 일본어로 표기된 부착물들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난날 금강은 충청도와 전라도 내륙까지 물자를 실어 나르던 중요한 뱃길이었다.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뱃길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포구가 생기고 마을도 들어섰다.

웅포 역시 뱃길 따라 생긴 포구다. 웅포의 옛 지명은 곰개나루. 마치 곰이 강물을 마시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웅포는 관광지로 조성되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웅포관광지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금강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캠핑을 즐기는 사람, 일몰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 등 저마다 즐길거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웅포관광지에는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웅포는 서해안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덕양정과 금강정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으뜸이다.

먼저 덕양정 뒤편 언덕에 자리 잡은 금강정을 올라가보자. 금강정은 웅포관광지에서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

웅포관광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뿐 아니라 금강 저편 신성리 갈대밭과 멀리 금강을 가로지르는 웅포대교까지 바라다 보인다.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덕양정은 원래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내던 용왕사 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운명을 달리한 군사들의 넋을 기리던 곳으로 전한다.

일몰이 시작되면 유유히 흐르던 금강 물줄기도 붉은 기운을 머금는다. 덕양정 앞 커다란 느티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일몰의 장관이 펼쳐진다.

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 싱싱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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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 싱싱하고 맛있다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에는 맛있는 음식도 참 많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충무김밥부터 해산물이 한 상 가득 올라오는 회정식까지 손으로 다 꼽기조차 어렵다.

통영의 새로운 맛으로 뜨는 메뉴가 있다. 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다.

나폴리의 아름다운 해안을 걷다가 먹는 큼직한 왕새우요리가 제격이듯, 통영왕새우양식장에서 싱싱하고 담백한 맛의 왕새우요리를 만나보자.

바다의 귀족으로 대접받는 고급 왕새우는 수염이 길게 늘어졌다고 해서 바다의 어른이라고도 불린다.

바다에서도 인정받는 왕새우는 꽤 비싼 값을 치러야 먹을 수 있는 고급 해산물인데,

그 어느 곳보다 저렴하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약 3만 3천㎡ 규모의 새우양식장을 운영하는 통영왕새우양식장이 그곳이다.

주인장 전양택 씨는 한국새우양식협회 경남지회장을 맡고 있는데, 새우박사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새우를 돌본다고 한다.

마치 새우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봄에 새우 종묘를 생산하고 가을걷이, 겨울 수확까지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새우양식은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성질이 급하고 까다로운 새우는 바이러스에 약한 데다 토양의 미네랄을 먹고 살기 때문에 양식장 환경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식당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친환경 왕새우양식장은 두루미가 모여들 만큼 청정지역에 자리했다.

친환경 새우 유기 양식이라는 방식을 통해 청정지역 양식장에서 새우를 키우고 지하 200m에서

끌어올린 해수를 이용해 새우를 순치시키는 방법은 주인장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이다.

바다의 염도보다 싱겁고 깨끗한 지하 해수에서 하루 이틀 순치시킨 새우는 불순물과 잡냄새가 사라져 깔끔하고 쫀득한 맛이 살아난다.

8년 전부터는 국산 흰다리새우라는 일반 대하를 양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에 적합하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품종으로 육질이 탱탱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9월이 오면 왕새우의 계절이 시작된다. 7월 말부터 작은 새우가 잡히지만 역시 가을부터 겨울까지 잡히는 것이 살이 알차고 맛도 좋다.

1년 내내 즐길 수 있는 왕새우는 제철에 건져 올려 급속 냉동했다가 조리하기 때문에 언제 먹어도 신선한 맛에 변함이 없다.

왕새우요리 중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담백한 왕새우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소금구이다.

간단하면서 왕새우의 참맛을 살려주는 즉석 요리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프라이팬에 굵은 천일염을 1cm 이상 깔고 그 위에 싱싱한 왕새우를 굽는다.

소금을 먼저 달궈 수분을 없앤 뒤 새우를 얹어 몸 전체가 붉게 물들 때까지 뒤적이며 천천히 굽는다.

천일염에 구우면 새우의 비린내와 쓴맛이 빠지면서 소금간이 은근하게 배어 감칠맛이 좋아진다.

따끈하게 구워진 왕새우의 껍질을 벗겨내고 한입 먹어보면 속살 맛이 일품이다.

짭조름하게 간이 배어든 왕새우는 그냥 먹어도 쫀득하고, 매콤한 겨자 소스에 찍어 먹어도 개운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이곳에는 새우로 만드는 맛있는 요리가 다 있다.

누구나 좋아하는 바삭한 새우튀김과 새콤달콤한 새우탕수육, 고소한 새우해물파전, 새우죽, 새우볶음밥에 새우라면까지 새우 마니아들의 환호를 받을 만하다.

어린이 손님을 위해 새우살로 만든 수제 새우돈가스까지 새로운 메뉴로 등장했다니 새우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새우라면은 새우구이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큼 인기 있는 메뉴다.

새우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서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에 라면을 끓이는데, 스프로 맛을 내는 육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통영의 바다 향이 느껴질 만큼 시원하고 개운한 맛에 새우라면 한 냄비가 눈 깜짝할 새 비워진다.

양식장에서 잡는 왕새우를 식당에서 거의 다 소비한다니, 새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맛을 확인하러 가볼 만하다.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겨울이 되면 거제도 어부의 통발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12월~3월 산란기를 맞아 심해에서 연안으로 올라온 ‘꼼치’ 또는 ‘물메기’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물메기는 ‘물텀벙’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생선이 잡히면 도로 바다에 던져져 “텀벙”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인데, 물메기탕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이 속설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조라마을 포구, 바다와 나란히 횟집과 식당이 즐비하다.

제철인 물메기가 수족관에서 짧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축구 선수 종아리처럼 굵은 몸통과 메기처럼 넓은 입에서 대어의 풍모를 풍기지만, 눈은 어찌나 작은지

이 녀석은 배고프면 동족의 알을 먹기도 하는데, 아마 자기네 알인지 분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고 작은 카메라 화면으로 보니 꼭 올챙이 같다.

이 생선이 보여줄 맛이 궁금하다.

수족관에 살아있는 물메기를 넣은 집은 하나같이 ‘물메기탕’이 써진 종이를 입간판 주위에 최소 한 장은 붙여 놨다.

물메기는 4계절 내내 잡히는 어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집에 들어가 물메기탕을 주문했다.

거제도 하면 대구로 축제도 하는 곳이기에 주인장에게 물었다.

“대구탕하고 물메기탕 중에 어느 게 더 맛있어요?” “대구탕도 맛있고 물메기탕도 맛있지 우리 집 대구탕은 더 맛있고” 주인장 입담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결 편안해지면서 혼자 왔는가?, 어디서 왔는가? 연이어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흔쾌히 취재협조를 수락하신다.

수족관 유리에 발판을 붙이고 있던 녀석을 채로 건져내자 두 번 팔딱거리는데, 주인장 팔이 흔들릴 정도로 힘이 세다.

거제의 물메기탕은 김치나 고춧가루 없이 맑게 요리하기 때문에 물메기의 신선도가 중요하단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인 도마 위에 물메기를 얹고 손질을 시작한다.

머리와 몸통 사이에 칼집을 내고 순식간에 껍질을 벗기자 반투명하면서 뽀얀 살이 드러난다.

마치 젤리처럼 탱탱한 것이 살아있는 물메기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어서 머리를 자른 후 내장을 빼낸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물메기는 먹음직스런 4~5토막 탕거리로 바뀌어있다.

흐르는 물에 씻긴 후 미리 무를 넣어둔 끓는 육수에 넣는다.

물메기와 술의 관계가 알면 알수록 참 재밌다. 물메기의 살은 연하기 때문에 회로 먹기가 어렵다.

그래서 물메기를 반건조해 먹기도 하는데, 이게 술안주로 제격이란다.

물메기, 술맛 돋궈놓고 나중에 달래주기도 하는 ‘병 주고 약 주는’ 녀석이다.

일례로, 강원도에서는 물메기탕이 맛없다고 하면 “아직 술이 덜 취했구먼”이라고 한마디 듣는다고 한다.

약한 불에 끓고 있는 물메기탕과 경남 거제의 찬이 놓인 한상이 차려졌다.

물메기탕을 국자로 크게 한번 덜어낸 후, 지느러미와 뼈를 발라내니 하얗고 통통한 살이 먹음직스럽다.

젓가락으로 집어보지만 이내 부서지고 만다. 숟가락으로 건더기와 살점을 크게 떠서 한입 물었다.

조금은 생소한 식감과 맛이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딱히 인상적으로 남는 포인트가 없다.

비린 느낌도 전혀 없이 고추 몇 조각이 우려진 미미한 칼칼함이 뒷맛에 남는다.

왜 맑게 끓이는 지, 살아있는 신선한 생선을 고집하는지 알 것도 같다.

물메기 특유의 맛을 살리려면 양념을 최소화해야했던 것이다.

이어서 먹다 보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기 시작해 몸에 기분 좋은 온기가 돈다.

물메기탕이 시원한 맛으로 유명한 이유를 2접시 정도 비워보니 알 수 있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후릅 마시듯 먹는 사이에 냄비는 금방 허전하게 변했다.

먹는 양에 비해 포만감도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허전하게 남은 냄비의 국물은 허전한 것이 아니다.

국물에는 바스러진 물메기살과 특유의 풍미가 가득 고여 있다.

국물을 퍼서 밥과 말아 드시라. 조금 맛이 밋밋하다 싶으면 김치나 고춧가루를 넣으면 밥 두 그릇은 금방이다.

이런 시원한 맛이 매력임에도 물메기라는 생선과 물메기탕이란 음식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음식대열에 끼진 못한 듯하다.

얼마 전 예능 프로에서 ‘꼼치’라는 말을 출연자가 은연중에 내뱉는데,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생선인지 찾아보는 상황이 방송되기도 했다.

물메기 특유의 식감과 흐물거리는 살점이 일부 사람에겐 거부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본 기자도 어렸을 땐 국물은 좋아했지만, 살은 쉽게 먹지 못했다.

그럼 주위 어른이 “아직 어려서 맛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좋아하는 탕 중 하나다.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문학에 여행이, 여행에 문학이 곁들여지는 문학 여행. 문학과 여행은 유용한 삶의 통로라는 점에서 닮았다.

자연 속에서 문학을 이야기하고, 상상을 공유하고, 느낌을 간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다독여진다.

작가가 특정 지역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얻은 영감과 위안 자체가 책만큼 매혹적인 문학 여행을 떠나보자.

한국 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는 ‘토지’의 작가.

하동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 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동 평사리 여행 코스

고소성에서 시작해 최참판댁을 돌아보고 매암차문화박물관, 조씨고가, 문암송을 거쳐 악양들판에서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걷기여행은 좀 특별하기도, 평범하기도 하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처럼 온통 산길이나 들길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적한 길을 걸어 산에도 오르고, 차도 한 잔 마시고, 경치도 한 번 구경할 뿐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줄곧 악양들판이 길동무 한다는 점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만나는 악양들판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최참판댁에서 소설을 보고, 문암송에서 시를 읊고, 차박물관에서 은은한 차 향기를 맡는다. 차와 문학이 어우러진 여행길은 악양들판이 옆에 있어 더욱 빛난다.

‘깃발’ ‘일월’ 등으로 유명한 민족시인 청마 유치환. 한국 근대 시문학사에 생명을 소재로 가장 치열한 사상과 열정을 토해낸 시인이다.

통영 예술인 생가 투어

민족시인 유치환님의 기념공간인 청마문학관을 둘러보고 통영예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 다음으로 ‘꽃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춘수생가를 둘러보고 그의 빛나는 예술업적을 감상한다.

그리고 다음코스로는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남망산국제조각 공원은 바다와 육지가 조화된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한 예술품들과 자연경관의 조화를 감상한다.

한창 외로울때 동료 유강렬과 잠시 지냈던 이중섭이 기거하던 곳을 둘러서 우리민족고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 김상옥생가를 둘러보고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스민 곳으로 유명한 청마거리를 감상하시고,김약국의 딸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생가를 지나서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거리를 관람한다.

장편소설 ‘탁류’의 작가. 부조리에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자 군산을 무대로 식민지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수작이다.

군산 문학, 역사코스

군산에는 바다를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다. 군산시 문학.

역사여행코스는 하루만에 군산의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여행 코스이다.

여행의 시작은 군산의 상징 월명공원으며, 군산항의 세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옛군산세관을 거쳐, 바다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지난다.

이후로는 채만식문학관과 금강철새조망대를 거쳐 최호장군 유지를 마지막으로 문화역사여행을 마무리 된다.

우리나라 단편 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해마다 ‘메밀꽃 필무렵’ 효석 문화제로 칭하는 축제가 열린다.

강원도 자연, 문학 코스

첫날 일정은 휴양림에 도착하여 목공예 체험으로 시작하자.

목공예 체험은 손재주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핸드폰 고리와 같은 소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간단하다.

점심 후에는 염색체험을 하고 숲 해설을 들어보자. 이 곳은 여러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군데에서 천천히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코스다.

둘째 날의 일정은 여유롭게 시작한다. 숲체원에서 가볍게 산책한 뒤 봉평읍으로 향한다.

봉평원에는 허브나라 식물원이 있고 오후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한국전쟁 시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캠퍼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리산에 머무는 것을 꿈꾼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으로 흔히 어머니 산이라 불린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에서 뒹굴다 보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智異山). 이 한마디만으로도 지리산에 머물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은 취사와 숙영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지리산의 자연 속에서 내원야영장과 하룻밤을 보내려면 야영장을 이용하면 된다.

3개 도와 5개 시군, 15개 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은 모두 8개의 야영장을 갖추고 있다.

경남에는 산청군 내원야영장, 소막골야영장, 중산리야영장 그리고 함양군 백무동야영장이 있고, 전북에는 남원시 덕동야영장,

달궁야영장, 뱀사골야영장, 뱀사골자동차야영장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야영장 중 하나가 내원야영장이다.

내원야영장은 지리산 내원사 아래 둥지를 틀고 있다.

자동차 야영장 41면, 데크 시설 11면, 일반 야영장 53면 등 모두 105개 사이트를 갖추었다.

화장실, 취사장 등 모든 편의시설이 걸어서 2~3분 이내에 있어 아늑하고 편리하다.

일반 야영장은 주차장에서 리어카로 짐을 옮겨야 하지만, 주차장과 그리 멀지 않고 숲속에 자리해 자동차 사이트 못지않게 인기 있다.

전기 사용이 가능한 자동차 야영장과 데크 야영장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일반 야영장은 선착순이다.

내원야영장의 가장 큰 장점은 야영장 옆으로 흐르는 지리산 계곡이다.

지리산은 뱀사골, 피아골 등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름난 계곡을 포함해 30개의 계곡을 품고 있다.

내원골과 장단골에서 흘러와 내원사 앞으로 흐르는 내원사계곡은 지리산의 숨은 비경 중 하나다.

발이 훤히 내려다보일 만큼 물이 맑고, 한여름 더위도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다.

특히 야영장 바로 옆 계곡은 야트막하고 넓어 아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내원야영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샤워장이 없다는 것.

텐트 치며 흘린 땀은 시원한 계곡 바람이 금방 식혀주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계곡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내원야영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내원사는 신라 말기에 창건되었고,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계곡 물소리가 아름다운 절이다.

남명기념관과 덕천서원은 자동차로 10분 거리, 남사예담촌은 30분 거리, 배달민족의 성전으로 불리는 삼성궁은 40분이면 닿는다.

내원야영장에 머물며 지리산 둘레에 자리한 보고들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지리산 자락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비가 자주 내린다.

캠핑의 낭만인 우중 캠핑을 경험하려면 달궁야영장에서 비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비 오는 날 캠핑장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다.

텐트 지붕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어느 재즈 연주보다 감미롭다.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드럼이 어우러진 빗소리 사이사이로 귀뚜라미의 바이올린 솔로 연주가 어우러지며 잊지 못할 낭만 연주회를 선사한다.

커피 한잔 들고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온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어도 좋고,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즐겨도 좋다.

우중 캠핑이 길어져 지루해진다면 떡볶이나 부침개 등 비 오는 날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보자.

우중 캠핑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조건이 있다. 무엇보다 바닥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질퍽거려 흙이 튀면 낭만 뒤에 고통이 따른다. 달궁야영장은 걱정 없다.

바닥이 아주 고운 파쇄석으로 되어 있어 물 빠짐이 좋고, 흙이 튀지 않아 비가 온 뒤에도 장비 상태가 깨끗하다. 바로 우중 캠핑의 최적지인 셈이다.

한국전쟁 시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한국전쟁 시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한국전쟁 시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부산 하면 해운대와 광안리, 부산국제영화제를 떠올린다면 부산에 안 가봤거나 부산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부산의 속살을 살펴보면 예상외로 매력 있는 여행지가 넘쳐난다.

광복에서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전후 어렵던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장소도 그중 하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고향을 등지고 부산으로 내려온 건 피란민뿐만 아니다.

수도도 옮겨져 부산이 임시 수도(1950~1953년)가 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에 있던 경남도지사 관사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며 집무를 수행하고, 국빈을 맞았다.

지금은 이곳이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꾸며져 전시에 대통령이 사용하던 유품과 각종 사진 자료를 전시한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임시 수도 시기의 대통령 관저와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부산 경무대라 불리는 대통령 관저는 1926년에 경남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된 외관에 네모반듯한 창이 여러 개 있고, 잘 손질된 정원수를 보면 일본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내는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던 때의 구조와 분위기 그대로다.

1층은 대통령이 정부 각료들과 회의하고 외교 업무를 보던 응접실, 대통령 내외가 사용하던 자개장과 반닫이 등 가구가 놓인 내실,

책을 읽고 나라의 미래를 구상하던 서재, 거실, 식당과 부엌 등으로 꾸며졌다.

‘증언의 방’에서는 한국전쟁 때 특공대 요원으로 첩보 수집과 인민군 생포 임무를 수행한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2층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방 부대와 훈련소를 시찰하면서 입은 방한복,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은 코트 등 부부의 유품과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자리한 전시관은 1987년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검찰청사가 이전하면서 2002년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이 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열차 모형,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아버지의 위문편지, 부산에 자리 잡은 피란민이 생활하던 판잣집,

일거리를 찾아 나선 피란민, 피란 학교의 모습 등 당시 피란민의 삶과 한국 경제의 실상을 보여준다.

중구 대청산 자락의 중앙공원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이 모여 산 판자촌이 있던 곳이다.

중앙공원에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뒤 1945년 8월 15일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에 항거한 부산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 수 있는 부산광복기념관이 들어섰다.

규모가 작고 전시물도 많지 않지만

부산의 3·1운동, 동래장터 독립만세운동,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등에 대한 기록물이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애국 계몽 운동, 사회 문화 운동, 학생들의 독립운동 등 광복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사 전반에 대해 이해를 돕는 자료가 있다.

위패 봉안실에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431명(2015년 5월 현재)의 위패를 봉안해 그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린다.

감천문화마을도 한국전쟁과 인연이 깊다.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으로 가득 찼고, 집 한 칸 없는 피란민은 산기슭에 작은 집을 지어 몸을 누였다.

감천문화마을도 이때 생겼다.

1950년 태극도 교주 조철제가 피란한 신도들과 옥녀봉 아래 집단 거주지를 형성한 것이 감천문화마을이다.

산비탈을 개간하면서 슬래브 지붕을 얹은 계단식 주택을 지었고, 앞집이 뒷집의 조망을 가로막지 않으며, 모든 골목이 이어져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흘렀어도 달동네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했고, 지붕은 파란색과 분홍색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 색감이 풍부해졌다.

여기에 마을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지역 예술인과 마을 주민이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동네를 만들었다.

미로 같은 골목은 불편함보다 옛 추억과 재미를 주는 길이 되었고, 낡고 허름한 집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처럼 다가왔다.

구석구석 멋진 미술 작품이 더해져서 감천문화마을은 지붕 없는 거대한 미술관이 되었다.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

“바다는 미래다. 그 깊이는 미답이요, 그 힘은 헤아릴 길 없고, 그 수평선은 끝 간 데 없다. 바다는 역사다. 생명은 여기에서 돋아나고 문명은 여기에서 자랐다.

역사의 열매 이것이 미래다. (중략) 젊은이여, 가자 바다로! 그 무한한 가능성과 자원을 찾아서.

그 장대 섬미한 자연에 마음을 싣고, 인류 행복의 근원을 캐내리.” ― <젊은이여 바다로>, 《해양명시집》(해문출판사, 1998) 중에서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인간이 동경하는 영원성의 상징이다.

그 속에서 역사가 시작되고 문학이 피어난다.

끝없는 바다와 험한 뱃길에는 사람들의 환희, 희망, 좌절, 영광의 노래가 담겨 있다.

더 나아가 바다는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무궁한 가치이자 미래의 삶의 터전이다.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은 우리가 바다를 알고 그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물론, 즐거운 학습과 체험의 기회를 통해 해양 개척의 비전을 제시하는 학습공간이다.

지난 2012년 7월 9일 부산 영도구에 국내 최대의 해양문화공간인 국립해양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나의 바다, 우리의 미래’라는 콘셉트로 바다의 문화, 역사, 생물, 자원, 과학 등 해양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 최초의 종합 해양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도착하면 멋진 외관에 놀란다.

물방울이 떨어져 튀는 모양을 형상화한 세련된 모습이 우주기지를 연상케 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최첨단 해양기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

과학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박물관에 들어서서 먼저 3층으로 향한다. 4층으로 된 전시공간 중 가장 핵심이자 인기 있는 공간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름 11m의 대형 원통 수족관이다.

300여 마리의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가오리가 화려하게 유영하며 관람객을 유혹한다.

터널형이라 바다 속을 걸으며 물고기를 보는 느낌이다.

비싼 입장료를 치러야 들어갈 수 있는 아쿠아리움에서 볼 수 있는 시설이라 수족관 앞은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수족관 뒤로 조개, 성게, 불가사리 등 어린이들이 바다 생물을 만져볼 수 있는 해양생물체험관, 유람선을 직접 조종하거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요트를 운전해보는 해양체험관이 이어진다.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해양생물과 접촉하고 해양 레저를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바다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다.

눈요기로 수족관을 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항해선박, 해양역사인물, 해양문화를 관람할 차례다.

우리 배의 생김새, 우리 배가 누빈 바다, 교류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상적인 것은 입구에 놓인 커다란 목선이다.

조선통신사들이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간 열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오가는 데 사용한 배를 실물 크기의 절반으로 복원한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유선형이나 선수가 뾰족하지 않고 평면이며 밑바닥은 평평한 평저선이다.

바닥이 V자형인 첨저선은 해류 변화에 민감해 좌초 위험이 높아 서·남해안처럼 해류가 거칠고 암초가 많은 우리 바다에서는 해류의 영향을 덜 받는 평저선을 이용했다.

이 외에도 떼배, 통나무배, 널빤지배 등 다양한 선박 모형을 전시해 우리나라 선박의 발달 과정을 소개한다.

조선통신사선 앞에 전시된 지구의와 천구의, 해도첩 등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이들 전시물은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지구의는 1797년, 천구의는 1790년에 항해를 위해 제작되었다.

주목할 점은 동해를 ‘한국해(MARE COREA)’, 대한해협은 ‘한국해협(Fretum Corea)’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도첩은 1646년 영국의 유명 지도제작자 더들리(Dudley)가 해도만을 모아서 만든 세계 최초의 해도첩인 《바다의 비밀》 초판본이다.

근대 지도제작법의 시초가 된 메카토르 방식으로 그린 전 세계 해도 총 220장과 해양 측량 방법과 기술에 대한 설명서 146장이 들어 있다.

여기서도 동해를 ‘한국해(MARE DI CORAI)’로 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