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국립공원을 걷다 동학사에서 보낸 가을 편지

계룡산국립공원을 걷다 동학사에서 보낸 가을 편지

계룡산국립공원을 걷다 동학사에서 보낸 가을 편지

당진 관광 방조제 제방 질주가 당진9경

바야흐로 가을이다. 해마다 오는 계절이건만, 서늘한 바람이 불 때면 들떴던 마음도 문득 차분히 가라앉는다.

누구라도 무시로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누구는 가을을 탄다고 하고, 누구는 추남추녀(秋男秋女)가 되어 가을을 만끽한다고도 한다.

천천히 계절을 걸으며 나를 돌아보는 여행, 오늘은 계룡산으로 간다.

오르기도, 쉬기도 좋은 계룡산국립공원

‘계룡산 도사’라는 말이 친근하게 들릴 정도로 계룡산은 그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때때로 이곳 계룡산에 발길을 두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산세만 봐도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질 만큼 좋은 기운이 가득 서려 있는 산이다.

국립공원이기도 한 계룡산은 동학사뿐 아니라 갑사와 신원사 등의 절을 품고 있지만, 이번에는 동학사 쪽으로 걸음을 뗀다.

자동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좋다.

계룡산을 거슬러 트레킹을 하자면 차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차가 주차된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계룡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지만 돌산인 데다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갔다가 출발점으로 다시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주나 대전에서 버스를 타면 동학사 입구에 쉽게 닿는데, 공주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오후 4시 45분에 일찍

끊기지만 대전에서 동학사로 가는 시내버스는 저녁까지 꽤 많은 편이다. 국립대전현충원 쪽에서 가깝다.

오후에 출발해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하고 싶다면 동학사 아랫자락의 계룡산 온천과 24시찜질방을

이용해 피로를 풀고 가볍게 하루 묵어 갈 수도 있다. 다양한 숙박 시설도 몰려 있다. 매표소와 멀지 않은 곳에 약 20동의

텐트가 들어가는 아늑한 계룡산오토캠핑장도 있어 가을날의 캠핑과 산행을 두루 즐기기에도 좋다.

그렇게 슬렁슬렁 걷다 보면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등 몇 개의 작은 절을 지나 어느새 동학사다.

동학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동학사에는 승가대학인 동학 강원이 있는데, 이곳은 운문사 강원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힌다.

724년(신라 성덕왕 23년)에 지어진 동학사는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동학사(東鶴寺)라 지었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을 정립한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셔 동학사(東學寺)라 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조선 세조 3년부터는 단종을 비롯해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김종서, 사육신 등을 모셔 제를 지낸 절로도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런 의미 있는 고찰이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대 이후 중건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은 출가하는 행자가 많지 않다지만, 이곳에 오니 여리고 풋풋한 어린 비구니들이 얼핏얼핏 눈에 띈다.

이렇게 어린 여승들이 한곳에 모여 인생 공부를 하고 불교 공부를 하고 도를 논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애틋하고 기특한 게 아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학사 대웅전에서 삼배(三拜)를 해본다.

삼배는 원래 몸과 입과 생각을 다 바친다는 뜻에서 세 번 절하는 것이라지만, 오늘은 세 번 절을 하며 산과 신과

나 자신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몸과 마음도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불상에 하는 절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절이다.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뜻에서 멀지 않다.

당진 관광 방조제 제방 질주가 당진9경

당진 관광 방조제 제방 질주가 당진9경

당진 관광 방조제 제방 질주가 당진9경

언 마음까지 녹이는 착한 음식 산성마을 두부 청국장

당진 관광, 참 독특하다. 방조제 제방 질주가 ‘당진9경’ 중 하나다.

방조제 따라 드라이브 길이 그만큼 내세울 만하다는 얘기다.

당진의 북쪽 바다는 대호방조제, 석문방조제, 삽교호방조제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당진의 3대 제방을 잇는 드라이브 루트는 총 47km에 달한다. 방조제길에는 당진의 포구 등 살가운 명소들이 알토란처럼 매달려 있다.

당진 제방 질주는 정중동의 성격이 강하다.

번잡한 해상공원도 지나고 한적한 포구에서 심호흡도 가능하다.

제방 곳곳에 난전이 펼쳐져 여행자의 입맛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곳에서는 드라이브라고 굳이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언뜻 드러나는 샛길로 접어들거나 이정표 앞에 멈춰 서면 추억의 관광지들로 연결된다.

제방 드라이브의 중간지대는 석문방조제다.

석문방조제에서 서산 쪽으로 향하면 대호방조제로 연결되고, 아산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삽교호방조제로 이어진다.

한적한 포구와 일출, 일몰의 포구를 만나는 곳은 석문과 대호방조제를 잇는 길이다.

최근에 공장들이 밀려들었지만 그래도 이 일대는 제법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예전에는 성구미포구가 집어항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공장이 들어선 뒤로는 장고항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석문방조제를 넘어서 첫 번째로 만나는 포구인 장고항은 늦겨울부터 봄까지 간재미회, 실치회 등 별미가 명함을 내민다.

무엇보다 인근 포구들이 비대해지고 개량화한 반면 이곳 장고항은 옛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포구에 딸린 식당에서 전해지는 구수한 인심도 예전 그대로다. 장고항에서는 창 너머로 펼쳐지는 한적한 바다를 보며 회 한 점 맛볼 수 있다.

장고항을 지나 해변을 따라 달리면 일몰, 일출 관광지로 명성 높은 왜목마을이다.

왜목마을 일대는 해가 바뀔 때면 사람들이 하얗게 몰려든다. 최근에는 해변 따라 나무데크길이 조성돼 청춘들의 산책을 돕고 있다.

이 일대에서 호젓한 펜션이 가장 많이 들어선 곳도 왜목마을이다.

글로 보고 말로만 듣던 서해의 일출 장면을 몸소 체험하면 그 감동이 남다르다.

포구는 번잡해졌지만 겨울이면 마을 북쪽 해변에서 국화도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이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왜목마을에서 38번 국도와 대호방조제를 경유하면 도비도 관광지로 연결된다.

섬에서 육지로 변신한 도비도는 서해에서 다도해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도비도 관광지 앞 바다는 난지도, 소조도, 우무도 등의 섬들로 채워진다.

도비도 관광지에는 제법 큰 회센터가 들어섰고 피로를 풀기 좋은 해수탕도 있다.

도비도는 바다와 육지, 민물 습지 등 다양한 자연생태자원이 어우러져 농어촌체험 등 가족 체험 나들이에도 안성맞춤이다.

왜목마을에서 핸들을 돌려 삽교호방조제로 향한다. 가는 길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바다가 아닌 뭍에 드러난 정경들이 친구가 된다.

방조제 건립 이후 호수로 변한 잔잔한 수면 위로 철새들이 날아다닌다.

송악IC 방면으로 이동하다 보면 소설가 심훈의 고택 필경사가 자리했다. 그가 대표 저서인 《상록수》를 집필한 장소다.

필경사에는 심훈기념관, 생가터, 상록수를 상징하는 조형물 등이 들어서 있다. 마당에서 바라다보이는 뭍과 서해의 경계선 위로 육중한 서해대교가 가로지른다.

제방 질주는 38번 국도를 따라 삽교호 관광지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삽교호방조제는 당진 방조제들의 형님 격이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삽교호 관광지는 제법 북적거린다.

함상공원과 해양테마과학관이 들어서 있고, 활어들이 요동치는 수산시장도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단출한 놀이공원도 인근에 자리했다.

단연 돋보이는 명물은 퇴역한 전함 두 척으로 구성된 함상공원이다.

실전에 투입됐던 함정에 들어가 해군과 해병대의 내무반 생활을 엿보거나 기관포, 레이더 등 무기와 장비들을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당진 제방은 수도권에서도 멀지 않아서 좋다.

인근에 공장들이 꾸준히 들어서면서 해가 다르게 해변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다.

추억의 포구에서 옛 정취와 조우하려면 마음이 동한 바로 지금 출발하는 게 좋다.

언 마음까지 녹이는 착한 음식 산성마을 두부 청국장

언 마음까지 녹이는 착한 음식 산성마을 두부 청국장

언 마음까지 녹이는 착한 음식 산성마을 두부 청국장

청풍명월 을 따라 자연을 느끼는 괴산 화양동

충북 청주시 성내로 일대

부드럽고 따뜻하며, 정감 있고 소박하다.

음식에 성품이 있다면 두부가 딱 그렇다.

찌개에 넣으면 뜨거운 국물에서 건져 후후 불어가며 먹는 맛이고, 잘 익은 김치를 올리면 입안에서 몽글몽글 부드럽게 녹는 맛이다.

따뜻한 순두부 한 그릇은 두꺼운 겨울 코트도 막지 못하는 마음의 추위를 녹여주는 착한 음식이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는 두부 요리를 만나러 충북 청주의 상당산성으로 간다.

상당산성 안에 자리한 산성마을은 닭백숙을 비롯해 청국장, 두부 요리 등 토속 음식을 내는 식당이 모여 있는 한옥 마을이다.

대부분 식당으로 개조되어 전통 한옥의 멋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상당산성 동문 아래 언덕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겨울 풍경이 정겹다.

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온 여행자들이 두부김치와 막걸리 한 사발로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고,

구수한 청국장찌개와 비지찌개로 기운을 얻는 식당도 곳곳에 있다.

마을 입구의 ‘상당집’은 직접 만든 두부와 청국장, 비지장을 내는 식당으로 점심시간이면 대기하는 줄이 길다.

닭백숙 집을 하던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두 아들이 1997년부터 두부와 청국장, 비지장을 만들고 있다.

상당집의 하루는 해 뜨기 전에 불린 콩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잘 불린 콩을 기계로 간 다음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일은 동생이 맡는다.

눌어붙지 않도록 긴 나무 주걱으로 젓는 일에 공이 많이 들어간다.

그사이 형은 청국장을 만든다. 적당히 삶은 뒤 비밀 저장고에서 발효한 청국장을 절굿공이로 찧어 주방으로 옮긴다. 그날 쓸 양이다.

비밀 저장고에서는 비지장도 발효된다. 콩 비린내 없이 구수한 맛이 나는 비지찌개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손님들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입구의 아이스박스에 담아놓은 비지는 이렇게 수고로운 과정을 한 번 더 거친 것이다.

집에서 김치만 넣고 끓여도 구수한 비지찌개가 된다.

커다란 판에 천을 깔고 끓인 콩을 부은 뒤 비지를 걸러내는 작업을 거치면 부드러운 순두부가 완성된다.

일부는 따로 담아 손님들이 자유롭게 떠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먹는 순두부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다.

출근길에 들러 순두부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래고 가는 단골손님도 있고, 종점까지 달려온 버스 기사님도 참새 방앗간처럼 찾는다.

식당 손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들어와 먹을 수 있는 천사 같은 음식이다.

뚝배기가 넘칠 정도로 팔팔 끓여 내는 청국장찌개와 비지찌개는 독특한 풍미로 칭찬받는 메뉴다.

청국장찌개는 걸쭉하면서도 특유의 냄새가 적고 고소하다.

다른 재료 없이 양념과 비지만 들어간 비지찌개는 수저를 뜰 때마다 감탄이 터진다.

노릇노릇하게 지져 김치와 함께 먹는 두부부침과 간장 양념에 찍어 먹는 생두부도 맛있다.

마을 위쪽에 자리한 ‘손맛집’ 역시 할머니가 직접 두부를 만든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도 좋겠다.

산성마을에 자리한 식당은 닭백숙과 함께 두부, 청국장을 내는 곳이 많다.

푸짐하고 든든한 식사를 원한다면 닭백숙을 먹으며 반찬 삼아 청국장에 두부 한 접시를 맛볼 수 있다.

산성마을 앞 저수지 왼편에는 상당산성으로 오르는 성벽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상당산성의 남문으로 연결된다.

총 둘레 4.4km에 이르는 상당산성은 백제의 상당현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어 조선 시대에 대대적인 성벽 공사로 완성된 석축 산성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울창한 숲의 기운을 느끼고 청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청풍명월 을 따라 자연을 느끼는 괴산 화양동

청풍명월 을 따라 자연을 느끼는 괴산 화양동

청풍명월 을 따라 자연을 느끼는 괴산 화양동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닮은 지리산 바래봉

병자호란 후에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봉림대군(후에 효종으로 즉위)의 스승이었던 우암 송시열이 직접 명명한 화양구곡을 소개한다.

청나라를 치겠다는 큰 뜻을 가졌던 우암은 그 실패의 한을 품고 화양구곡에 터를 잡았다.

그의 한이 서린 이 곳과 관련된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사회 교과서 5학년 2학기 3단원에서 공부할 수 있다.

물과 산, 바위의 조화가 아름다운 화양계곡 운영담

충청북도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이라면, 그 한복판에 위치한 괴산(槐山)은 “산고수청(山高水淸)의 고을” 이다.

즉 백두대간의 허리를 떠받치는 준봉들이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며 웅장하게 솟아있고,

그 산자락과 골짜기를 굽이쳐 흐르는 계류는 거울처럼 맑은데 특히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동 계곡은 산고수 청한 괴산을 대표할 만한 절경이다.

넓고 깨끗한 너럭바위와 맑은 계류, 우뚝하게 솟은 기암절벽과 울창 한 숲이 한 폭의 진경산수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우암 송시열, 그가 감탄한 화양구곡

일찍이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 서는 으뜸가는 산수” 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의 대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은거한 뒤부터였다.

화양동 계곡에서도 특히 경치가 빼어난 아홉 군데를 통틀어 화양구곡(華陽九曲)이라고 하는데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곶이 그 곳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은 이는 우암의 제자였던 권상하(1641~1721)다.

그 중 2곡인 운영담은 맑은 물에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으로 주자(朱子)의 “천광운영(天光雲影)”이라는 시구에서 따왔고

3곡 읍궁암은 효종의 제삿날에 우암이 엎드려 통곡했던 바위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우암 선생이 자연 속에서 정진했던 암서재

우암이 책을 읽고 정진했던 금사담

물 속에 금빛 모래가 깔려 있는 4곡 금사담은 화양구곡의 여러 절경 중에서도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

더욱이 물가의 우뚝한 바위 위에는 우암이 책을 읽고 정진하는 독서재(讀書齋)였던 암서재(巖棲齋)가 옛 모습대로 올라앉아 있어

우암의 자취를 더듬는 이들에겐 더없이 반갑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이 아담한 기와집은 효종 6년(1655)에 처음 세워진 이래로 수차례 중수를 거듭했다고 한다.

건물 뒤쪽에는 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훤히 열려 있어 화양동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가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누마루에 앉아서 화양동의 수려한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300여년 전 우암의 포부와 풍류가 오롯이 느껴지는 듯하다.

역사 속, 우여곡절을 겪은 화양서원

우암이 죽은 뒤 이곳 화양동에는 그를 배향한 화양서원이 세워졌는데 한동안 조선에서 가장 위세가 당당했다.

당시 노론계의 우두머리였던 우암 송시열의 은거지에 세워진 서원인데다 인근에 명나라 신종(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임금)과

의종(명나라의 마지막 임금)의 위패가 봉안된 만동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만동묘라는 묘명은 화양동의 5곡인 첨성대의 암벽에 새겨 진 선조의 친필 “만절필동(萬折必東)- 황하는 아무리

곡절이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 에서 따왔다. 이 말은 주로 충신의 절개는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상징할 때 쓰는 말로,

곧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신하 된 도리” 는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병자호란을 겪은 지가 얼마 안된 당시에는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이 크게 고조되어 있던 터라,

만동묘를 등에 업은 화양서원의 처사는 무조건 옳다며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

‘화양묵패’라는 그늘진 역사가 담겨있는 화양서원

그러자 나날이 방자해진 화양서원의 유생들은 이른바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행해 관리와 백성을 불문하고 갖은 수탈과 횡포를 일삼았다.

서원의 요구를 거역할 경우에는 가혹한 형벌이 뒤따랐다.

결국 이러한 횡포는 훗날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는 빌미가 되었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기 전 이곳을 지나다가 크게 봉변을 당하게 되었고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도둑놈 소굴”

이라면서 철폐해 버린 것. 뒤이어 다른 서원들까지도 문을 닫게 하였고 오늘날 잡초만 무성한 만동묘와

화양서원의 옛터에는 주춧돌과 계단석, 그리고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영화롭고도 오만했던 옛 시절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한 역사를 뒤로 하고 화양동계곡의 상류에는 화양동 못지않게 자연풍광이 빼어난 선유동 계곡이

이어지는데 물이 맑아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즐기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한나절쯤 쉬어가기에 아주 제격이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닮은 지리산 바래봉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닮은 지리산 바래봉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닮은 지리산 바래봉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매화, 산수유, 벚꽃 등 흐드러지게 피어 봄을 알리던 꽃 잔치도 끝나고, 연둣빛 신록과 더불어 계절의 여왕 5월이 찾아왔다.

해마다 5월이면 남원의 지리산 자락에는 아름다운 꽃길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정상을 향해 불길처럼 번진다.

진분홍빛으로 물드는 바래봉 일원의 철쭉 군락이다.

바래봉은 바리때(승려의 공양 그릇)를 엎어놓은 모양을 닮아 ‘바리봉’이라 부르다가 음이 변한 이름이다.

바래봉 아래 운봉 사람들은 산이 삿갓처럼 생겼다고 ‘삿갓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래봉의 철쭉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60년대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뒤 면양 사육이 시작되면서부터다.

1972년 남원의 운봉에 면양시범농장이 들어섰고, 바래봉 일대에 면양을 방목했다.

면양 수천 마리가 바래봉 일대를 휘저으며 나뭇잎과 풀을 모조리 뜯어 먹었다.

하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지 않아 그대로 남았고, 면양의 이동 통로를 따라 차츰 영역이 확대되어 지금처럼 군락을 이뤘다.

1990년대 이후 경제성이 떨어지는 면양 방목이 중단되자, 철쭉 군락이 명성을 얻었다.

바래봉은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허브밸리에서 시작해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을 에둘러 올라야 한다.

지리산허브밸리에서 운지사 삼거리까지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길 옆 소나무 숲을 따라 300m 정도 데크가 이어져 밋밋한 등산길을 대신한다.

운지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을 지나 본격적인 탐방로가 시작된다.

해발 1165m 바래봉 정상까지 3km가 채 안 된다. 가파른 길을 따라 꼬박 한 시간쯤 힘겹게 오르면 비로소 능선에 닿아 편한 길이 이어진다.

바래봉에 오르는 산길은 박석을 깔거나 시멘트 길을 내지 않았지만, 두 시간이 채 안 되어 바래봉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점은 매력적이다.

바래봉 철쭉은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을 지나 만나는 산 하단부와 바래봉으로 오르는 구릉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정상부 등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가축유전자원시험장 인근의 철쭉 군락은 바래봉 철쭉의 개화 지표로 가장 먼저 핀다.

4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한 철쭉은 5월 초순에 700~900m 8부 능선, 5월 중·하순이면 정상 부근 능선에 만개한다.

특히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 정상을 거쳐 팔랑치로 이어지는 2km 구간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철쭉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래봉 철쭉은 사람 가슴 높이 정도로 빽빽하게 군락을 이뤄 잘 가꾼 정원 같다. 40여 년 전 면양과 산철쭉이 만든 작품이다.

진분홍 꽃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지면 천혜의 비경이 따로 없다.

바래봉의 철쭉은 빛깔이 진한 산철쭉이다.

철쭉은 연분홍빛을 띠고 꽃잎과 잎이 둥그스름한데, 산철쭉은 빛깔이 훨씬 진하고 꽃잎과 잎이 뾰족하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 꽃과 잎이 같이 나는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하기 때문에 개꽃이라 부르는 점도 기억해두면 좋다.

이왕 나선 김에 바래봉 정상에 올라보자.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까지는 0.5km, 절반쯤 숲길을 따라가나 싶더니 어느새 공양 그릇을 엎어놓은 듯 둥그스름한 바래봉이 보인다.

바래봉에서는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래봉삼거리에서 정령치를 거쳐 성삼재로 이르는 능선 가운데 세걸산과 만복대가 보이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연하봉, 천왕봉 등 지리산의 고봉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진분홍 철쭉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철쭉 군락이 이어지는 팔랑치를 거쳐 세걸산에 다녀오기를 권한다.

지리산허브밸리에서 바래봉 정상까지는 왕복 7.4km로 여유 있게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원의 5월은 바래봉 철쭉뿐만 아니라 춘향과 몽룡의 사랑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국내 최대 민물고기 수족관 단양 아쿠아리움에 가다

단양은 오래 사랑받아온 관광지와 새롭게 선보이는 여행지가 공존한다.

역사, 자연, 문화, 레포츠, 환경, 미식 등 여행 테마도 다양하다.

냉장고 속에 들어앉은 듯 시원하게 신비로운 세상을 체험하는 고수동굴, 짜릿한 패러글라이딩 체험과 멋진 사진을 찍기 좋은 ‘카페 산’,

구석기시대 유물을 모아놓은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사용하지 않는 터널이 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수양개빛터널,

단양을 굽어보는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짚라인, 물과 바위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선암계곡 등 매력적인 볼거리가 가득하다.

단양 고수동굴(천연기념물 256호)은 그 이름을 동굴이 있는 단양읍 고수리에서 따왔다.

1976년에 문을 연 동굴은, 지난 2015년 인공 구조물을 철거하고 조명을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2016년 8월 재개장했다.

방문객센터 1층 매표소를 지나면 석회동굴의 생성 과정, 동굴 생성물, 동굴 속 생물 등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종유석이 왜 일정한 크기로 자라는지 스포이트로 액체를 떨어뜨려 실험하거나 종유석 단면을 돋보기로 관찰하고,

고수동굴 홍보 영화 보기, 캐릭터에 색칠해 스크린에 띄우기 등 체험 코너도 인상적이다.

방문객센터 밖으로 나오면 동굴 입구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드디어 동굴 탐험을 시작하는 순간, 시원한 공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동굴 속은 평균기온 15~17℃로 처음에는 서늘한 듯한데, 탐험하느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활동하기에 딱 맞다.

총 길이 1395m 중 940m 구간을 개방해, 왕복 1.9km 탐방에 40분쯤 걸린다.

계단 구간이 여러 번 있지만, 예닐곱 살 이상이면 걸을 만하다.

고수동굴은 약 2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단양은 석회암 지대가 발달해 시멘트 공장이 여럿 있다. 석회암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퇴적암으로,

이산화탄소를 함유한 지하수가 석회암 지대에 흘러들면 탄산칼슘을 녹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석회굴이 만들어진다.

단양에는 고수동굴, 천동동굴, 온달동굴, 노동동굴 등 석회굴이 네 개나 된다.

동굴 천장에서 탄산칼슘이 용해된 지하수가 떨어지는 지점에 종유석이, 바닥에 석순이 생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종유석은 점점 아래로, 석순은 위로 자라 연결된 기둥이 석주다. 고수동굴에서는 종유석과 석순, 석주를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종유석이나 석순 등은 수천수만 년을 거쳐 생기고, 지금도 아주 느린 속도로 자란다.

고수동굴 내부에는 모양이 독특한 것마다 마리아상, 만물상, 천당못, 천지창조, 사랑바위, 사자바위, 인어바위 등 이름을 붙여놓았다.

사자바위와 인어바위를 주인공 삼아 동굴 이야기도 만들었는데, 탐방 구간 반환점에 있는 사랑바위를 사자바위와

인어바위의 사랑이 맺어지는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사랑바위는 종유석과 석순이 손가락 한 뼘 간격으로 만나기 직전인 모습이다.

굳이 이름을 찾아보지 않아도 쏟아지는 폭포, 흔들리는 커튼, 밤하늘의 오로라를 보는 듯 황홀하고 웅장한 모양이 가득하다.

시간이 빚어낸 환상적인 동굴과 자연이 만든 천연 냉장고를 뒤로하고 밖에 나오니 30℃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다린다.

단양 도담삼봉(명승 44호)은 남한강 상류에 있는 바위산 세 개로, 단양팔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도담삼봉에는 재미난 얘기가 전해온다.

강원도 정선의 삼봉산이 홍수에 떠내려와 도담삼봉이 되었는데, 정선현은 삼봉에 대한 세금을 단양현에 요구했다.

이에 소년 정도전이 “원치도 않은 삼봉이 떠내려오는 바람에 물길을 막아 단양에 피해가 막심하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도전은 호를 삼봉이라 붙일 정도로 도담삼봉을 아꼈고, 퇴계 이황은 도담삼봉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읊었다.

요즘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 단양 여행의 키워드는 패러글라이딩과 카페 산이다.

주말이면 하늘이 울긋불긋 물들 만큼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가 많다.

두산과 양방산에 활공장이 있으며, 두산 쪽은 정상 부근 지대가 넓어 활공장이 세 개나 된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문을 연 카페 산은 패러글라이더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알려졌는데,

요즘은 경치를 즐기고 사진을 찍으려고 찾는 이들이 더 많다. 해발 600m에 위치해 가슴이 뻥 뚫리는 전망이 일품이다.

직접 패러글라이딩을 해도 좋고, 남들이 하는 걸 구경하면서 대리 만족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국내 최대 민물고기 생태관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외 민물고기 187종, 2만 2000여 마리가 있는 곳이다.

단양팔경을 테마로 수조 배경을 꾸며 볼거리가 있고, 아쿠아리움 밖 쏘가리 조형물은 단양 여행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곳으로 인기다.

국내 최대 민물고기 수족관 단양 아쿠아리움에 가다

국내 최대 민물고기 수족관 단양 아쿠아리움에 가다

국내 최대 민물고기 수족관 단양 아쿠아리움에 가다

지금도 제 기능 다하는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충북 단양군에 단양팔경의 인기를 앞지르는 명소가 있다.

단양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등극한 단양 아쿠아리움이 그 주인공.

220종, 2만 2,000마리의 물고기가 시원한 수조와 해저 터널을 마음껏 헤엄치며 관람객들에게 수중 세상의 신비를 선사한다.

남한강에는 어떤 민물고기들이 살아갈까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 최대 민물고기 생태관이다.

173개의 수조에서는 국내 어류 약 83종, 해외 어류 약 137종이 살아간다.

수조에 채울 수 있는 물의 양만 해도 854톤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아닌 민물고기만으로 이만한 규모의 아쿠아리움이 만들어졌다는 데 대해서 생태 전문가들이나 학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현재 국내에는 울진, 양평, 평창, 화천, 구례 등지에 민물고기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단양의 다누리아쿠아리움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단양읍 주변 남한강에서 살아가는 민물고기들의 생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갖가지 민물고기 이야기에 흠뻑 취하기 위해 다누리아쿠아리움으로 향한다.

먼저 남한강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에서 발원해 충청도 북부와 경기도 남부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총 375km의 물길이다.

단양을 흐르는 남한강은 영춘면 오사리부터 단성면 장회리까지 51.3km 구간이다.

소백산과 월악산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를 따라 단양 8경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이 지역의 계곡과 강여울, 담수에는 60여 종의 어류가 서식한다.

다누리아쿠아리움은 도담삼봉, 선암계곡, 석문 등 단양의 비경을 수조의 배경으로 꾸몄고, 그 물에 민물고기들을 풀어놓아 단양 여행의 사실감을 살렸다.

아쿠아리움의 다양한 민물고기들을 눈으로 감상하면서 바로 곁에 붙은 해설판도 꼼꼼히 읽어둘 필요가 있다.

물고기들에 얽힌 이야기는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뇌운동도 활발하게 해준다.

단양의 남천계곡과 선암계곡에는 갈겨니, 금강모치, 퉁가리, 버들치 등이 살고 영춘에서 단양으로 흐르는 강여울에는 쏘가리,

어름치, 쉬리, 꺽지, 피라미 등이 서식한다. 어름치, 버들치, 금강모치는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이고 은어,

쉬리, 쏘가리, 꺽지, 모래무지 등은 2급수에서도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양의 대표 물고기인 쏘가리는 남한강, 금강, 섬진강 등 우리나라 하천 어디에서나

서식하는 물고기로 꺽지과에 속한다. 표범 무늬를 한 쏘가리는 물살이 빠른 바위나 돌 틈에 숨어산다.

낮에는 은신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일몰이나 일출 직전 먹이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쏘가리는 ‘야행성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쏘가리와 친숙해 도자기나 책에 쏘가리 그림을 많이 그려 넣었다.

오뉴월에는 부모님에게 보양식으로 끓여 올리기도 해 쏘가리탕은 ‘효자탕’이라 불리기도 한다.

쏘가리 중에서 신비로운 황색을 띠는 황쏘가리는 천연기념물 제190호이다.

영화 제목에도 등장한 쉬리는 몸에 난 무늬가 아름다워 여울각시라 불리기도 한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미끈한 몸매를 자랑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의 여울부 자갈 바닥에 서식한다.

지방에 따라 쉐리, 쇄리, 쇠피리, 쌔피리 등으로 불린다. 돌고기는 암반 위에 알을 낳고 무심하게 떠나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아다니는 새로 치자면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나 몰라라 떠나버리는 뻐꾸기를 닮아 ‘물속의 뻐꾸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밖에도 가시를 지니고 있는 퉁가리, 금강모치, 네 쌍의 수염을 지닌 눈동자개,

민물조개 속에 숨어들어가 알을 낳는 줄납자루 등 많은 물고기를 살펴본 후 지하 2층 수족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세계 거대한 수조에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계곡 풍경이 펼쳐진다.

숲이 우거진 계곡의 맑은 물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어름치, 쉬리, 금강모치, 버들치, 연주모치 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으면

관람객들도 스쿠버다이버가 돼서 함께 헤엄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폭포로 인해 소에서 솟아나는 물방울들이 뽀글거리며 산소 거품을 뿜어내면 물고기들은 사방으로 줄달음치며 쇼를 펼친다.

물살에 밀린 수초들도 조연답게 이리저리 흥겹게 흔들린다.

하얀 너럭바위가 옹기종기 모인 선암계곡은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삼선구곡’이라 이름 붙였을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선암계곡의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배경으로 한 선암계곡 수조에는 민물가재,

은어, 모래무지, 눈동자개, 무지개송어, 줄새우, 물방개, 무당개구리, 참개구리 등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다음은 단양 8경의 절정을 이루는 옥순봉과 사인암이 펼쳐지는 코너이다.

이 지역에 서식하는 잉어, 가물치, 쏘가리 등 단양의 대표 어종을 다시 만나본다.

단양 8경의 비경을 즐기듯 수조 속 물고기들이 꼬리와 지느러미를 활기차게 흔들며 지나간다.

간간이 물고기들에게 먹이로 모기 유충을 주는 관리사의 모습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터치 풀은 물고기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도 제 기능 다하는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지금도 제 기능 다하는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지금도 제 기능 다하는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군산의 숨겨진 근대문화유산 군산 어청도등대

어렸을 적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라고 말이다.

이 3대 저수지 가운데 지금도 물을 가두고 들판에 물을 대주는 곳으로는 제천 의림지가 유일하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제 기능을 다하는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됐다.

오늘날에도 절경을 자랑하는 의림지는 제천 시민들의 사계절 휴식 공간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름철에는 보트놀이를 즐기고 겨울철에는 빙어잡이로 진풍경을 이룬다.

제천은 한자로 방죽 ‘제(堤)’ 자에 내 ‘천(川)’ 자를 사용한다.

의림지 때문에 제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했거나 굳어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도 많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이미 지명에 물을 내포하고 있는 제천시에는 유명한 물 관련 여행지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의림지이고 다른 하나는 청풍호이다.

의림지는 2006년 12월에 명승 제20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천10경 가운데 제1경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의림지는 머나먼 삼한시대,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 물을 막아 둑을 쌓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700여 년 세월이 흘러 고려시대 현감 박의림이 개축했고,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는 정인지가 개축했다.

그토록 튼튼함을 자랑하던 의림지였지만 1972년 대홍수로 둑이 터져 이때 다시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로 표기되어 있다.

제천시 북쪽에 높이 솟은 용두산(871m) 줄기에서 발원한 물이 의림지로 흘러든다.

이 산은 시내와 가깝기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다.

솔밭공원을 출발해서 용담사를 거치면 1시간 반만에 용두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뒤에는 “제천 진산 용두산 네가 있어 왔노라 내가 있어 사노라 우리 함께 살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북서쪽으로는 석기암산(906m)과 감악산(920m)이 이어진다.

의림지는 둘레가 2km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

계절을 가릴 것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거나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 제천의 힐링센터 혹은 건강센터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청풍호 주변에서 레포츠 체험으로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리고 원기를 얻는다면 의림지에서는 솔숲에서 맑은 기운을 얻고 잔잔한 수면에서 물의 정기를 받는다.

여기에 걷기 운동으로 대지의 기운마저 받아들이니 제천시 여행길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다지는 나들이길이다.

저수지 북쪽에는 갖가지 놀이기구가 들어선 놀이동산과 주차장이 자리했다.

의림지파크랜드에는 바이킹, 디스코팡팡, 범퍼카, 회전목마 등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기구가 설치돼 유원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저수지 서쪽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이 펼쳐지는 무대로 활용된다.

이 수변무대에서는 큼직한 행사 말고도 주말마다 색소폰 연주회, 숲속기타여행, 힐링콘서트 등이 열려 제천 시민들과

여행객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나무그늘에 텐트를 치고 느긋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가족들도 눈에 띈다.

수변무대 한쪽에는 인공폭포가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고 수경분수가 하늘 높이 솟구친다.

산책의 묘미를 더해주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오리보트장, 전망대 구실을 하는 정자, 의림지 물을 가두고 있는 송림제방,

매점과 식당 등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의림지 물이 빠져나가는 수문 위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제주도의 어느 골짜기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의림지를 한 바퀴 산책하는 동안 눈여겨볼 것은 시를 적은 액자들, 경호루, 영호정 그리고 제방을 지키는 송림이다.

액자 중에는 서거정이 쓴 <제천객관>이라는 한시도 보인다.

“거수는 하늘 향해 쭉쭉 뻗어 있고 / 차가운 시냇물은 들을 돌아 흐르네 / 이틀을 나그네로 머무나니 / 아련히 시상이 저절로 떠오르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이 제천 유람길에 쓴 모양이다. 노송 사이에 들어앉은 경호루는 1948년에 지어진 2층 누각이다.

바로 옆에 산책을 하다가 쉬어 가기 좋은 매점이 있다.

발걸음을 재촉하면 의림지를 든든하게 막아주고 있는 남쪽 제방 위를 걷게 된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마다 번호표가 달려 있다.

군산의 숨겨진 근대문화유산 군산 어청도등대

군산의 숨겨진 근대문화유산 군산 어청도등대

군산의 숨겨진 근대문화유산 군산 어청도등대

맛 멋 흥 예 전주의 유네스코 보물찾기

군산의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63개의 섬 중 서해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섬이 어청도다.

이 섬에는 100년이 넘도록 바다를 마주보며 항해하는 선박을 위해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쏘아내는 등대가 서 있다.

어청도등대다. 1912년 3월 1일에 첫 점등을 한 근대문화유산이다.

어청도등대를 만나는 여정은 쉽지 않다.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시간 30분, 선착장에서 2km 산길을 걸어 30분을 더 가야 한다.

가는 길이 멀고 힘들지만 어청도등대와 조우하는 순간 힘든 기억은 봄 눈 녹듯 사라진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하얀 등대가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청도등대는 10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원형의 등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들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입구에는 삼각형 지붕을 얹은 문을 달았고, 등탑 윗부분에는 전통 한옥의 서까래를 모티브로 장식했다.

제일 윗부분 등롱은 주홍색 청동으로 마무리 해 조형미가 돋보인다.

등대를 둘러싼 나지막한 돌담과 해송이 더해져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숲속의 집을 보는 것 같다.

등대의 하얀색과 하늘의 파란색, 바다의 짙은 녹색이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이렇게 예쁜 등대는 처음”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해가 지고 나면 등대는 홀로 빛이 난다.

바다 위를 운항하는 선박을 위해 12초에 한번씩 밝은 빛을 바다로 쏘아낸다.

숨 한번 들이쉴 때마다 불빛이 반짝이고, 불빛은 멀리 26마일(약 42km) 해상까지 신호를 보낸다.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어청도등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0년이 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해의 외딴 섬 어청도에 인천 팔미도등대에 이어 두 번째로 등대가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어선의 안전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륙진출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세웠다.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의 조차지인 랴오둥(遼東)반도의 다롄(大連)을 차지한다.

이를 기반으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 오사카와 다롄을 연결하는 정기항로가 개성되는데, 어청도를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게 된다.

군산항과 서해안 남북항로를 통항하는 모든 선박들이 이용하는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이다.

어청도등대 뿐만 아니라 어청도의 바다도 일본과 관계가 깊다.

1885년 경에 일본인 잠수부들이 찾아와 전복, 해삼 등을 채취하기 시작하였고,

1898년 일본인 어부 20가구가 인천에서 어청도로 이주해 터전을 잡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인들의 서해 어업 전진기지가 되었으며, 일본 어민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어청도 심상보통학교도 세워졌다.

어청도등대를 감상하고 난 뒤에는 섬을 한 바퀴 돈다.

산등성이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을 군산의 숨겨진 걸으면 어청도와 주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령시의 외연도·녹도가 걷는 내내 길동무가 되고, 재선충으로 인해 고사목이 된 소나무도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어 알파벳 C자 모양으로 들어선 포구다. 지금은 한적한 포구지만, 1960~1970년대에는 서해안 고래잡이의 전초기지였다.

포구는 고래잡이 포경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해에 사는 고래가 봄에 새끼를 낳기 위해 어청도 근해로 이동해 오면 장생포의 포경선도 고래를 따라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서해안에서 잡힌 작은 고래는 배에서 해체하고 큰고래는 어청도로 운반해 부두에서 해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어청도 주봉인 당산(198m) 정상에 오르면 고려시대부터 있었다는 봉수대가 남아 있다.

봉수대는 서해를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포착하기 위한 통신시설이다.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횃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다.

<조선보물고적자료>에는 “청도리 봉수대는 어청도의 당산인 서방산 상에 있으며, 높이 7척 2간으로 원추상으로 석축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2층의 원추형 모습을 지닌 봉수대는 돌로 만든 7층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1층 회랑에 이를 수 있다.

어청도 봉수대는 17세기 중반인 조선 숙종 3년(1677)에 폐지되었다.

봉수대 앞에는 봉수군의 임시 거처로 추정되는 정방형의 집터가 남아 있다는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마을 중앙에는 치동묘가 있다. 중국 제나라 사람인 전횡을 모시는 사당이다.

전횡은 어청도란 이름을 지은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기원전 202년 중국의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했다.

패한 항우가 자결하자 전횡은 두 명의 형제와 군사 500명을 거느린 채 돛단배를 타고 탈출해 3개월 만에 어청도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전횡은 안개가 낀 바다에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해서 섬을 푸른 섬이라 하여 어청도(於淸島)로 지었다고 한다.

전횡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횡은 백제시대 이래 어청도의 안위와 주민들의 풍어를 비는 제사의 토속신앙 대상이 되었다.

치동묘는 2m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에는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맛 멋 흥 예 전주의 유네스코 보물찾기

맛 멋 흥 예 전주의 유네스코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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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체험 즐기는 팜스테이형 목장 웨스턴 캠프

우리 문화유산에 관해 전주만큼 이야기가 많은 도시도 드물다.

전주는 한민족 의식주의 전통을 고루 대변한다. 한복과 한식, 한옥의 삼박자다.

전주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건 여기에서 뻗어 나온 전통문화의 스펙트럼 때문이다.

생존의 풍요가 아니라 생활의 풍요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대상이다. 유네스코는 이를 집약한다.

전주는 유독 유네스코와 인연이 많다.

판소리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무형유산이고, 전주는 세계소리축제를 개최하는 판소리의 본고장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이 유일하게 보존돼 오늘에 전한다.

전주한지 문화는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뽑혔다.

한정식, 비빔밥, 막걸리 등 전주 먹거리의 잠재력이다.

전주시는 이를 ‘유네스코 전주 여행’으로 엮었다. ‘얼쑤! 신명 나는 소릿길 여행’ ‘멋·흥·예 선비에게 길을 묻다’

‘게미(손맛)가 있는 음식 맛길 여행’ ‘《조선왕조실록》을 따라 걷는 기록 문화 여행길’ 등 네 가지 테마다.

유네스코 유산에 전주의 색을 녹였다. 한복을 입고 사진 찍고 공연을 보며, 전주 별미도 맛본다.

중간중간 판소리를 비롯해 전주가 간직한 전통문화를 배우는 기회도 있다. 여행 상품으로 짜였지만 개인 자유 여행도 가능하다.

유네스코 전주 여행이 반드시 지나가는 명소는 국립무형유산원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삼삼오오 떠날 때 제격이다. 공간은 크게 열린마루(상설전시실), 전승마루(교육 공간), 얼쑤마루(공연장) 등으로 나뉜다.

열린마루 상설전시실 1층은 무형 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파노라마 영상이 압도한다. 짧은 시간에 전통 무형 유산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

2층은 국가무형문화재의 면면과 장인의 솜씨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눈으로 감상한 뒤에는 전승마루로 향한다. 매주 토요일에 무형유산체험교실’토요일 토요일은 모두 전승자’가 열린다.

무형문화재 장인에게 전통 공예를 배우는 시간이다.

매듭장에게 전통 매듭을 배우고, 침선장과 함께 귀주머니를 만든다.

더구나 무료 강습(재료비 별도)이다. 전통 춤사위도 마찬가지다.

은율탈춤이나 태평무, 관노가면극 등을 무형문화재가 직접 선보이며 가르친다.

얼쑤마루는 토요상설공연이 탐스럽다.

4월 30일 개막특별공연 <전통의 美, 미래로의 희망>을 시작으로 매달 기획을 달리해 관객의 흥을 돋운다.

5월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진주검무보존회 등이 <판판판!>을 공연한다. 6월에는 명인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꾸밀 예정이다.

10월에는 국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초청 공연이 기다린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 2014년 개원해서 아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전주를 가장 알차고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명소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전주천을 거너면 전주전통문화관이다. ‘얼쑤! 신명 나는 소릿길 여행’이라 하겠다.

전주전통문화관은 공예나 한식 조리 체험을 진행한다. 근래에는 마당창극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 공연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뷔페식 잔치 음식을 먹고 공연을 관람하는 야간 상설 공연으로, 전주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심청전>에 현대적인 뮤지컬 요소를 도입해 남녀노소 모두 공감한다. 한옥 마당이라는 공연장도 매력이다.

전주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판소리의 도시답게 소리 공연이 많다.

전주소리문화관에서는 비보잉을 결합한 <한옥 스캔들>을 공연한다.

비빔밥을 먹고 공연을 감상하는 기회다. 전라북도예술회관에서는 뮤지컬 <춘향>이 심금을 울린다.

전주전통문화관의 야간 공연까지 시간이 남으면 전주향교와 전주한옥마을을 걷는다.

전주향교는 ‘멋·흥·예 선비에게 길을 묻다’의 첫 번째 코스다.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제례와 교육의 기능을 겸한다.

만화루를 지나 대성전이 있고, 그 너머가 명륜당이다. 전주 선비 정신의 본향이지만 가벼운 산책의 걸음도 알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