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기 좋은 농촌마을 여행 양평 여행

여름나기 좋은 농촌마을 여행 양평 여행

여름나기 좋은 농촌마을 여행 양평 여행

신명 나는 바우덕이 이야기 한마당

맑은 계곡에서 미꾸라지 잡기, 뗏목 타기 등 더위를 쫓고 메밀전병, 메추리구이도 맛보고 용문산 은행나무와 집으로 가는 길에는 두물머리를 둘러본다.

맑은 계곡이 있는 농촌체험마을 모꼬지마을의 여름물놀이 축제에 참가해보자.

미꾸라지 잡기, 뗏목타기 등 더위를 쫓을 수 있는 체험 외에도 민속놀이 체험, 왕달팽이 체험 등이 준비되어 있다.

체험관이나 캠핑장에서 숙박한 뒤 다음 날, 용문오일장에 가보자.

매달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에 열리는 용문오일장은 메밀전병, 메추리구이 등을 판매하는 정겨운 전통시장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용문산 관광지에 가는 것은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용문사 대웅전 앞에 있다.

이 외에도 정지국사 부도 및 비, 문산지구 전적비 등 여러 문화유적과 친환경농업박물관이 있으니 둘러보자.

집으로 가는 길에는 두물머리에 들러보자. 나루터, 수양버들, 400년 된 느티나무 등 경관이 아름다워 사진 촬영하기 좋다.

모꼬지마을

모꼬지 마을은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농촌의 전원풍경을 그대로 호흡하며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용문산의 수려함과 마을아래 4계절 고운 빛깔로 펼쳐지는 논밭의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모꼬지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을 일컫는다.

농촌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사계절 언제나 캠핑하기 좋은 곳이며 경험 속 신나는 체험들이 기다리고 있다.

친환경 딸기체험, 강정 만들기, 가래떡 체험, 은행잎 소원배 등 다채로운 체험들을 경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 무기농 친환경 마을 농산물 사용으로 건강한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190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5일장으로, 매달 3·8·13·18·23·28일에 열린다. 장이 서는 장소는 양평역 근처 기찻길 아래 공터와 도로변이다.

양평장의 거래 품목은 농산물, 의류, 가공식품, 수산물, 먹을거리, 축산물 등이 있다. 도붓장수는 약 200여 명에 이른다.

인근 용문산에서 캔 산나물과 집에서 재배한 채소가 특히 유명하며, 양평 해장국과 족발 등의 음식이 인기가 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용문산 등산객을 비롯해 5일장 구경을 하러 오는 서울 손님들도 많다.

용문산관광지는 용문산 입구에 조성된 휴양타운으로서 양평군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1971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는데 주변에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정지국사 부도 및 비

용문산전투전적비 등 문화유적 등의 볼거리가 많고, 용문산과 중원산에서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사시사철 관광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관광지 입구에는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산나물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산채정식을 판매하는 식당가와 각종 산나물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광지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잔디광장과 분수대, 야외공연장과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양평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양평군 친환경농업박물관이 있다.

신명 나는 바우덕이 이야기 한마당

신명 나는 바우덕이 이야기 한마당

신명 나는 바우덕이 이야기 한마당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까강까강, 덩더꿍~ 얼쑤! 굿거리장단에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꽹과리, 장구, 태평소, 소고 등을 연주하고, 상모를 돌리며 기예를 펼치는 안성남사당놀이패의 신명 나는 장단에 흥이 솟는다.

예부터 우리 민족의 흥을 책임지던 놀이패는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흩어졌지만, 안성남사당놀이패는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왔다.

국가무형문화재 3호이자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만큼 잘 전승된 안성의 남사당놀이를 즐겨보자.

남사당패는 예부터 거칠고 솔직한 해학과 다양한 기예, 흥겨운 장단으로 백성의 흥을 돋운 유랑 집단이다.

여자가 주를 이루는 사당패와 달리 남사당패는 남자만으로 구성된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놀이패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대부분 명맥이 끊겼다.

안성 남사당패 역시 고비가 있었지만, 1980년대 안성남사당보존회를 구성하고 남사당패의 풍물,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덧뵈기(탈놀음)

어름(줄타기),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섯 마당을 복원했다. 2002년 안성시에서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을 창단해 안성남사당놀이 상설 공연을 연다.

지금의 상설 공연은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과 바우덕이의 이야기를 결합한 것이다.

바우덕이는 조선 후기 안성 남사당패를 이끈 여자 꼭두쇠다.

김암덕 혹은 박우덕이라 불리는 그녀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었다.

당시 바우덕이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노역에 참가한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안성 남사당패를 불러들였다.

백성의 사기가 크게 오르자 흥선대원군은 바우덕이를 불러 그 공을 치하하고, 정삼품 당상관 이상이 사용하는 옥관자를 하사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최고 인기를 누렸다. 지금으로 따지면 최고 인기 연예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바우덕이는 거친 유랑 생활에 폐병을 얻어 스물세 살에 세상을 떠났고, 서운산 청룡사 주변에 그녀의 묘와 사당이 있다.

안성남사당놀이 상설 공연은 안성맞춤랜드 내 안성남사당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아트센터 마노 주변에 위치한 안성남사당공연장은 커다란 은빛 공을 닮았다.

공연장 입구는 남사당 칠무 동상과 풍물상을 세워 남사당 공연의 분위기를 이끈다.

내부로 들어서면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에 대한 그림과 설명을 새긴 안내판이 있으니, 공연 전에 읽어보자.

안성남사당공연장은 객석 700석과 지름 20m 원형 무대, 높이 13m 승강식 무대를 갖춘 2층 원형극장이다.

객석과 무대가 연결되어 주인공과 관객의 끈을 이어놓았다. 야외에는 1000석 규모 공연장도 있다.

안성남사당놀이 상설 공연은 청룡사를 배경으로 줄타기하는 바우덕이의 애잔한 모습에서 시작한다.

이후 대형 화면으로 안성 장터, 경복궁 등으로 배경이 바뀌고 여섯 마당이 이어진다.

특히 경복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의 기예가 무척 화려하다. 여섯 마당 가운데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놀이가 없다.

그중 살판과 버나는 큰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 살판은 ‘잘하면 살 판,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으로 일종의 텀블링이다.

살판쇠와 매호씨(어릿광대)가 재담을 주고받으며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자반뒤지기 등 묘기를 펼치기도 하고

객석에서 초대한 관객과 어울리며 무대를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든다. 버나는 남사당놀이 중 둘째 놀이로,

사발이나 대접 따위를 두 뼘 정도 되는 막대기 혹은 담뱃대로 돌리는 묘기다.

버나재비와 매호씨가 재담과 연기를 펼치며 대접을 돌리거나 서로 던지고 받는다. 매호씨의 우스꽝스러운 연기와 환상적인 버나 기예에 웃음과 환호성이 터진다.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남양주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햇살 좋은 어느 날, 문득 자연에서 하루를 즐기고 싶을 때 생각나는 화담숲.

친구와 울창한 숲길을 걷고, 다른 수목원에서 보기 어려운 모노레일을 타며 숲이 주는 행복을 즐기기 좋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도 걱정 없다. 모든 이에게 열린 화담숲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보자.

화담숲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부터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 노약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수도권 스키장으로 유명한 곤지암리조트에 위치해 주로 리조트 주차장을 이용하고, 화담숲 전용 주차장은 성수기에 운영한다.

장애인 차량은 언제든 화담숲 전용 주차장 사용이 가능하다. 리조트 주차장에서 화담숲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

산책 길을 따라 걷거나 무료 순환버스 혹은 리프트를 이용한다. 화담숲까지 가는 산책 길은 약간 오르막이고 10분 정도 걸린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걷기 불편하면 순환버스나 리프트를 이용한다. 순환버스는 저상형 차량이라 휠체어와 유모차 탑승이 용이하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 노약자가 리프트를 이용할 때 안전 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화담숲은 자연 식생을 최대한 보존한 친환경 생태 수목원으로, 135만 5372㎡(41만 평) 부지에 20여 개 테마원이 있다.

숲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완만한 산책로다. 숲 전체를 돌아보는 데크 산책로는 폭이 넓고 경사가 완만해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기에 무리가 없다.

화담숲 산책 코스는 일방통행이다. 입구에서 천년단풍을 지나 곤충생태관,

민물고기생태관을 거치면 숲 속 산책 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걸어서 올라가거나 모노레일(유료)을 타는 것. 모노레일 총 구간은 1213m이며 순환형으로 운행한다.

모노레일 출입구는 높낮이 차가 없어 휠체어나 유모차도 탑승하기 쉽다.

모노레일 하부 승강장에서 상부 승강장까지 모노레일을 타면 약 5분, 걸어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모노레일을 타면 편안하게 이동하고, 해설자의 안내를 들으며 상공에서 숲을 조망할 수 있다.

걸어가면 화담숲 인기 포토 존 ‘약속의 다리’를 건너고 나무와 꽃을 하나하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라면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상부 승강장에 내려 위쪽의 소나무정원을 감상하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나머지 테마원을 돌아본다.

화담숲 전 구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다면 굳이 모노레일을 타지 않아도 된다.

모노레일 상부 승강장까지 산책로가 완만해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도 부담 없이 올라갈 수 있다.

군데군데 ‘완만한 산책 길’과 ‘빠른 계단 길’로 나뉘기도 한다. 관람객의 몸 상태와 동반자에 따라 선택하도록 배려했다. 곳곳에 쉼터도 있다.

화담숲의 또 다른 자랑은 훌륭한 자연환경이다. 계절에 따라 진달래와 벚꽃, 수국, 수련이 피고 지며, 천연기념물 327호인 원앙과 천연기념물 453호 남생이가 서식한다.

남양주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남양주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남양주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경기도 남양주시는 물의 고장이자 조선후기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남양주 물의 정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의 시작을 알리고 다산의 생가와 무덤이 나란히 자리한 다산유적지를 지나 서울로 향한다.

남양주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흐르는 강물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한강 제1경(두물경)을 이루고, 다산유적지를 통해 면면히 전해지는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은 생각하는 인문여행지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다산의 뜻을 새기는 여행. 바로 ‘다(산)정(약용) 마을 한강제일경 인문여행’이다.

200년 전 조선 최고의 학자가 거닐었던 발자취를 따라 그가 꿈꾸던 나라를 생각하며 걸어보자.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걸어서 10분.

물의정원은 이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물길 따라 자라난 풀나무와 그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가 한가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금강산에서 출발한 북한강이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두물머리에서 만나기 전 잠시 쉬어가는 곳.

해마다 6월이면 붉은 양귀비꽃이 가득 피어난다는 물향기길에는 꽃철 지난 가을에도 하트 모양 산책로를 따라 다정히 걷는 연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물의정원에 잠시 머물던 강물은 쉬엄쉬엄 다시 흘러 다산생태공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공원 이름이 다산인 것은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죽은 동네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 공원 곳곳에는 다산의 저서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있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기록한 《목민심서》, 조선 후기 제도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우리 역사 최초의 형법 연구서인 《흠흠신서》까지 평생 백성의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추구했던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저서들이다.

긴 유배 생활 동안 집필한 책들을 완성한 곳이 이 근처 생가였으니, 다산도 강물이 빚어내는 한 폭 수채화 같은 풍광을 자주 찾지 않았을까.

글을 쓰느라 어지러워진 머리도 식히고, 뜻을 펼치지 못해 답답한 마음도 다스렸을 터.

지금은 팔당호의 풍부한 물과 여름이면 만발하는 연꽃단지가 더해져 그때보다 더욱 수려해졌을 것이다.

다산의 생가와 사당, 무덤 등이 자리 잡은 다산유적지도 그 시절 그 모습은 아니다.

1925년 ‘을축대홍수’가 이 지역을 덮친 후에 대부분 다시 지어졌다니까.

그래도 ‘여유당(與猶堂)’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생가는 옛날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후손들이 덧붙인 다산기념관과 다산문화관에선 위대한 학자이자 관료였던 다산의 삶과 사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다산유적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실학박물관에서는 성호 이익에서 시작되어 다산 정약용에 이르는 실학의 다양한 흐름이 한눈에,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다산생태공원을 휘감아 돈 강물은 팔당댐을 지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회귀의 길목에서 팔당역 조금 못 미처 남양주역사박물관과 만난다.

잠시 이곳에 들러 조선의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남양주의 역사를 살펴봐도 좋을 듯 하다.

아담한 사이즈에 아기자기한 유물을 갖춘 남양주역사박물관은 물의정원에서 출발해 다산유적지를 두루 살펴본 생태 인문여행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다.

이름 그대로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물이 합류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강원도나 충청도에서 출발한 배들이 서울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나루터로 크게 번성했다.

새벽 일출과 이른 아침 자연이 선사하는 선물 물안개가 아스라이 퍼진 풍경.

두물머리 물래길을 따라 황포돛배가 유유히 흐르는 모습은 마음이 찡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강 제1경 두물경과 영화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배우 이영애가 기나긴 침묵을 깨고 지난 1월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 이후 13년 만이다. 그녀의 반가운 귀환을 알린 작품은 <사임당 빛의 일기>.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사실과 픽션이 교차하는 퓨전사극이다.

극중 이영애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과 조선시대 사임당 1인 2역을 연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현모양처로만 알고 있는 사임당을 재해석하여 예술혼에 불타는 ‘천재화가’이자 이겸(송승헌 분)과 첫사랑에 빠지는 ‘여자’ 사임당을 동시에 그려내는 중이다.

또 하나의 대작이 탄생한 곳, 강릉 오죽헌(이하 오죽헌)과 강릉 선교장(이하 선교장)을 찾았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한국미술사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수진방일기(드라마 상 허구로 설정된 책)>를 입수하면서 시작한다.

<수진방일기>는 신사임당의 일기로 추정된다. 서지윤은 이를 해독하던 중 사임당과 이겸(드라마 상 허구의 인물)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오죽헌으로 향한다.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이자 사임당의 외가이다. 흔히 경내에 자리한 별당, 안채와 바깥채,

문성사, 어제각을 합하여 오죽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율곡이 태어난 별당을 말한다.

오죽헌은 뜰에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유독 많다 하여 이름 붙었다.

율곡이 태어난 방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질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용꿈을 꾸었기 때문에 몽룡실이라 불린다. 현재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졌다.

오죽헌은 현존하는 주거용 주택 중 비교적 오래된 축에 속한다.

간결한 형식으로 지어져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어떻게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의 존재 덕분이다. 율곡은 여덟 살 때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팔세부시(八歲賦時)’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다.

열세 살 때 치른 진사시 초시를 시작으로 스물아홉 살 때 치른 문과에 이르기까지 아홉 번의 과거시험에서

모두 다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능히 조선 최고의 천재라 불릴 만하다.

오죽헌 왼편 건물은 문성사다. 율곡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인조가 율곡에게 내린 시호(학덕 높은 선비가 죽은 뒤 임금으로부터 받은 이름)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건립했다.

오죽헌 왼쪽 통로를 통해 안채와 바깥채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택의 고즈넉함을 느껴 볼 수 있다.

바깥채는 오죽헌 정화사업 당시 오죽헌과 더불어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은 고마운 존재이다.

툇마루 기둥에 걸린 주련(기둥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라 하니 그 가치가 각별하다.

어제각에는 율곡이 어릴 때 사용했던 벼루와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격몽요결을 전시하고 있다.

뒤뜰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길이 있는데, 이겸(송승헌 분)이 고뇌에 잠긴 채 걷는 장면을 촬영한 길이다.

이겸은 사임당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인물이다. 도포를 멋지게 차려입은 이겸이 감정을 잡고 터벅터벅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솔내음 짙게 배어 있는 소나무길은 상쾌한 산책로로 제격이지만 아쉽게도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사주문 밖 율곡기념관에서는 사임당의 수묵화와 글씨, 율곡의 저서, 사임당의 그림을 살아 움직이듯이 표현한 디지털갤러리 등을 감상할 수 있으니 빼놓지 말자.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짧은 주말, 아이들에게 역사적으로 유익한 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수원과 화성을 1박 2일로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수원과 화성에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정조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조선후기의 걸출한 군주 정조가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자.

특히 수원화성은 그 아름다움과 규모 그리고 과학성으로 인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성곽건축기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곽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수원화성은 둘레가 약 5.7킬로미터에 성벽의 높이는 평균 5미터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다.

화성을 건축하는데 들어간 벽돌 수만 하더라도 거의 70만장에 육박한다.

한국전쟁당시 화성 성곽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자세한 건축과정이 기록되어 있어서 복구가 가능했다.

수원화성을 건축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정조시대의 대 학자 정약용 이다.

정약용 선생은 중국의 [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참고로 하여 거중기를 발명하였으며,

도르레를 이용한 거중기를 통해 성곽을 건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었다.

수원화성의 성문은 모두 네 개(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인데 그 중 정문에 해당하는 문은 장안문이다.

장안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그 크기와 아름다움이 국보 제 1호인 숭례문과 비교되기도 한다.

장안문은 철통 방어시설인 옹성을 갖추고 있는데, 성문을 항아리 모양으로 한 겹 더 에워 싼

성벽을 의미하는 옹성은 화공 등의 공격에 대비하기위한 매우 훌륭한 방어시설이다.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 구실을 했던 이유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살피러 행차를 할 때 한양에서 수원화성으로 들어서는 가장 첫 번째 입구이기 때문이었다.

장안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화홍문을 만날 수 있다.

총 일곱 개의 수문 위에 세운 누각인데 수문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꽃비를 뿌린 듯이 아름답다.

사시사철 너무나 아름다운 화홍문 주변은 늘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조선 제일 명당인 융릉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융릉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이었다.

정조는 그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 성을 쌓고 집을 지을 돈과 이사비용까지 챙겨 사람들을 살게 하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의 수원화성이다.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에는 훗날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도 함께 묻혀있다.

융릉은 다른 능과는 좀 다르게 정자각과 능침이 이루는 축이 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비껴서 조성되어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효심 깊은 정조가 아버지의 능을 조성할 때 뒤주에 갇혀 돌아가실 때도 답답하셨을 것인데 정자각

바로 뒤에 능침을 조성한다면 얼마나 더 답답하시겠느냐 라는 말에 따른 것이라 한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산나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이다. 겨울철 잃었던 원기를 회복하고 다가올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산나물만한 것이 없다.

경기도 양평군은 친환경농업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용문산 일원은 산나물의 명산지로 소문이 자자하다.

용문사 입구 전통장터에서는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여행객들을 상대로 산나물이며 잡곡을 팔고 있다.

용문사로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친환경농업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용문사는 사찰 답사를 목적으로 한 여행객들이나 용문산 등산객들로 주중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절집 초입에는 무료로 운영되는 친환경농업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다.

박물관 앞뜰은 분수가 시원하게 솟아오르고 바람 시원한 산책로가 잘 갖춰진 공원이다.

박물관의 규모는 비록 작지만 용문사 답사나 용문산 등산에 앞서 미리 둘러보면 왜 양평군이 ‘친환경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1층은 갤러리 ‘미지’로 활용되고 2층에 양평역사실, 친환경농업실, 자연음식연구소, 무료다도체험장으로 쓰이는 누각인 용화대 등이 오밀조밀 들어찼다.

현재 갤러리에서는 ‘사찰의 후원 : 양평의 산나물축제와 함께하는 사찰음식의 향연’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6월 9일까지 이어진다. 전시회장 곳곳에 ‘사찰음식의 정의’, ‘발우공양의 정신’, ‘사찰음식의 특징’, ‘현재 한국 사찰에서 먹는 음식’

‘사찰의 천연조미료’, ‘계절별 대표 음식’ 등에 대해 설명해놓은 대형 패널이 걸려 있어 찬찬히 읽어두면 좋다.

‘사찰의 후원’ 전시회를 둘러보는 발걸음이 차분해진다. 도심 속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럴싸한 작품들은 없지만 벽면에 전시된 안내 패널, 기둥 옆에 놓인 발우

각종 다구가 놓인 선반 등을 하나하나 살펴볼 때마다 탑돌이를 하듯 발걸음이 느려진다.

특히 ‘발우공양의 정신’을 설명한 안내문 앞에서 한동안 발길이 머문다.

발우공양의 첫번째 정신은 평등사상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대중이 차별 없이 나눠 먹는다는 뜻이 담겼다.

둘째는 청결사상으로 자신이 먹을 만큼만 개인의 발우에 덜어 먹는다. 셋째는 절약사상.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고 그릇 씻은 청수까지 마시기에 음식물쓰레기를 전혀 남기지 않는다.

넷째는 음식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먹는 공동체사상. 마지막 다섯째는 복덕사상이다.

우주 만물의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자는 복덕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사찰 답사 시 가능하면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고 발우공양도 직접 경험하길 권해본다.

양평역사실로 들어서면 선사시대의 생활상부터 관람하게 된다.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에서 발굴된 유적을 토대로 선사시대의 주거생활, 수렵생활, 농경생활 등을 모형으로 재미나게 재현됐다.

이어서 ‘함왕혈’이 양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큰 나무와 큰 돌멩이들에 둘러싸인 땅바닥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파여 있다. 이것이 함왕혈이다.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

한과는 우리의 전통 과자다. 손님을 대접하는 다과상이나 주안상은 물론, 생일과 혼례, 제사 등 의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은 음식이다.

찹쌀가루에 콩물과 술을 넣은 반죽을 삶아서 얇게 밀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다음 쌀 고물을 묻힌 유과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어 만드는 약과,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혹은 열매에 꿀을 넣고 조린 정과

녹말이나 송홧가루 등을 꿀로 반죽해 다식판에 찍어낸 다식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해방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고 양과자가 보편화되면서 한과는 명절이나 제사 때 필요한 음식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한과 만들기를 숙명으로 여기고, 한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인생의 과제로 여기는 이가 있다.

국가 지정 전통 한과 제조 기능 명인이자, 대한민국 한과명장 1호(약과 분야) 김규흔 씨다. 김규흔 명장에게 한과는 아련한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6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영덕의 바닷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과자는 언감생심이었다.

한과도 제사 때나 명절에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바삭하게 씹히는데다 달콤한 조청 맛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은 때 먹은 한과는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성인이 되어 제약 회사, 섬유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한과와 인연을 맺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 들어 살던 집 아주머니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처가가 한과 공장을 했다.

그 공장에서 일한 것이 한과에 인생을 거는 계기가 되었다.

2년 남짓 한과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물일곱 살 때 월계동 시장 골목에 조그만 한과 공장을 차렸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한과는 주로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경동시장 등에서 도매로 거래되었다.

거래처가 없는 상황에서 동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성실과 실력을 무기로 거래처를 뚫으려 해도 제작원가부터 경쟁이 되지 않았다.

다른 공장은 밀가루 100포와 엿 100통을 도매가로 구입할 때, 김규흔 명장은 밀가루 5포와 엿 1~2통을 소매가로 사서 한과를 만들었다.

장사도 안 되고 재료비도 비싸서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유년 시절 먹은 한과의 달콤함을 기억하기에 ‘세 살 입맛이 평생 간다’고 믿었다.

맛있는 한과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컸다. 포기하지 않고 거래처를 찾아다니는 한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한과 개발에 힘썼다.

한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난감했다.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발로 뛰며 배웠다.

맛있다는 한과를 먹어보고, 잘 만든다는 공장에서 비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당시 약과의 모양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옛날 방식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한과를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연꽃 모양과 마름모꼴 약과를 만들었다.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다른 업체가 모방하면 다시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경기도 남양주시는 물의 고장이자 조선후기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남양주 물의 정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의 시작을 알리고 다산의 생가와 무덤이 나란히 자리한 다산유적지를 지나 서울로 향한다.

남양주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흐르는 강물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한강 제1경(두물경)을 이루고

다산유적지를 통해 면면히 전해지는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은 생각하는 인문여행지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다산의 뜻을 새기는 여행. 바로 ‘다(산)정(약용) 마을 한강제일경 인문여행’이다.

200년 전 조선 최고의 학자가 거닐었던 발자취를 따라 그가 꿈꾸던 나라를 생각하며 걸어보자.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걸어서 10분. 물의정원은 이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물길 따라 자라난 풀나무와 그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가 한가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금강산에서 출발한 북한강이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두물머리에서 만나기 전 잠시 쉬어가는 곳.

해마다 6월이면 붉은 양귀비꽃이 가득 피어난다는 물향기길에는 꽃철 지난 가을에도 하트 모양 산책로를 따라 다정히 걷는 연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물의정원에 잠시 머물던 강물은 쉬엄쉬엄 다시 흘러 다산생태공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공원 이름이 다산인 것은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죽은 동네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

공원 곳곳에는 다산의 저서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있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기록한 《목민심서》, 조선 후기 제도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우리 역사 최초의 형법 연구서인 《흠흠신서》까지 평생 백성의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추구했던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저서들이다.

긴 유배 생활 동안 집필한 책들을 완성한 곳이 이 근처 생가였으니, 다산도 강물이 빚어내는 한 폭 수채화 같은 풍광을 자주 찾지 않았을까.

글을 쓰느라 어지러워진 머리도 식히고, 뜻을 펼치지 못해 답답한 마음도 다스렸을 터.

지금은 팔당호의 풍부한 물과 여름이면 만발하는 연꽃단지가 더해져 그때보다 더욱 수려해졌을 것이다.

다산의 생가와 사당, 무덤 등이 자리 잡은 다산유적지도 그 시절 그 모습은 아니다.

1925년 ‘을축대홍수’가 이 지역을 덮친 후에 대부분 다시 지어졌다니까. 그래도 ‘여유당(與猶堂)’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생가는 옛날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후손들이 덧붙인 다산기념관과 다산문화관에선 위대한 학자이자 관료였던 다산의 삶과 사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다산유적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실학박물관에서는 성호 이익에서 시작되어 다산 정약용에 이르는 실학의 다양한 흐름이 한눈에,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다산생태공원을 휘감아 돈 강물은 팔당댐을 지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회귀의 길목에서 팔당역 조금 못 미처 남양주역사박물관과 만난다. 잠시 이곳에 들러 조선의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남양주의 역사를 살펴봐도 좋을 듯 하다.

아담한 사이즈에 아기자기한 유물을 갖춘 남양주역사박물관은 물의정원에서 출발해 다산유적지를 두루 살펴본 생태 인문여행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다.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구름 위에 텐트를 세우다 정선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매월 셋째 주 토요일, 경기도 양평의 작은 동네 문호리가 들썩거린다.

한 달에 한 번, 이 동네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문호리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문호리 리버마켓’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장을 구경하려고 모여든다.

전국의 수많은 플리마켓 중 유독 더 주목받고 있는 문호리 리버마켓을 찾아가봤다.

벼르고 별렀다. 자칭 ‘플리마켓 마니아’로서 지난해 여름부터 문호리 리버마켓 소식을 접하고 방문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셋째 주 토요일, 일요일이라는 시간을 맞추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꼭 그때마다 다른 일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번 놓치면 다음 프리마켓 일정을 기다려야 하는 터라 더욱 간절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호리 리버마켓을 찾았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이미 제대로 입소문을 탔다. 리버마켓이 열리는 강변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그 인기를 증명한다.

차를 타고 갈 경우, 내비게이션에 ‘문호리 리버마켓’이나 ‘현대수상스키’ 또는 ‘서종수상스키’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찾아가면 된다.

찾아오는 이가 많아지면서 경의중앙선 양수역과 문호강변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되고 있다.

문호강변 인근에 다다르자 안내판이 보인다. 주차장 쪽은 이미 만원이다. 어렵사리 차를 세우고 문호리 리버마켓으로 향한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다양한 사람들이 리버마켓을 찾았다. 강변을 따라 하얀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린 시절 종합선물세트를 손에 들고 풀어보기 전 ‘어떤 것들이 들었을까’ 상상하던 그 설렘을 안고 리버마켓으로 들어간다.

소박한 천에 귀여운 병아리 그림과 함께 ‘문호리 리버마켓’이라는 글자가 앙증맞게 앉아 있다.

천에 함께 적힌 ‘만들고, 놀고, 꿈꾸고’라는 글자가 빛난다.

‘만들고, 놀고, 꿈꾸는’ 사람들이 셀러로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만나는 셀러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2014년 4월, 문호강변에서 ‘문호리 프리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다.

문호리에 정착한 지역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됐다. 처음에 60여 셀러가 참여하다가 현재는 170여 셀러가 참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다.

처음보다 몸집이 커지고 판매 품목도 다양해졌지만, 손수 농사짓거나 만든 것들만 판매한다는 취지는 변함이 없다.

셀러 중 상당수가 양평 주민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으로, 기본 조건만 갖추면 누구든 셀러로 동참할 수 있다.

문호리 리버마켓 온라인 카페(www.rivermarket.kr)에 참여를 신청해서 통과되면 리버마켓 속 작은 마켓인 ‘병아리 마켓’에 참여할 수 있다.

리버마켓의 인기에 힘입어 병아리 마켓에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병아리 마켓에는 신예 셀러뿐 아니라, 리버마켓의 다른 셀러들도 참여한다. 리버마켓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여유롭게 리버마켓을 즐기고 싶다면 조금 일찍 찾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