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옛집의 품격

우리네 옛집의 품격

우리네 옛집의 품격

충주 미륵대원지 옛길에서 만나는 아주 오래된 절터

만석지기, 청송 심부자댁

청송(靑松)이다. 고장의 이름이 푸른 소나무다. 그 의미만으로 울림이 있다.

청송 사람들은 이를 ‘동쪽에 있는 불로장생의 신선 세계’라고도 받아들인다. 청송에 들어서면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주왕산 아래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이다. 파천면 덕천리에 다다를 때 즈음에는 머물러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겨난다. 파천면은 우리나라의 열 번째 슬로시티다.

자연과 역사를 존중하며 느리게 살아가는 마을이다. 여러 씨족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지만 덕천리의 청송 심씨 집안이 가장 잘 알려졌다.

파천이 슬로시티가 된 가장 큰 원동력 역시 청송 심씨 집안의 송소고택과 무관하지 않다. 송소고택은 청송 심씨 집안의 심호택이 지었다.

1880년경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이전하면서다. 그의 호를 따 송소고택이라 부른다.

그는 조선 영조 때 만석지기였던 심처대의 7대손이다. 청송 심씨는 무려 9대에 걸쳐 만석의 부를 누렸던 집안으로 경주 최부자와 함께 영남의 양대 부호였다.

청송에서 대구를 가려면 심부자의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또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를 비롯해 4명의 왕비와 4명의 부마(임금의 사위), 13명의 정승을 배출했다.

13년에 걸쳐 지은 99칸 송소고택이 그 위세를 짐작케 한다.

99칸 대부호의 집

신흥천을 지나 고택에 다다르자 먼저 솟을대문이 맞이한다. 좌우에 정면 7칸, 측면 1칸의 행랑채를 가진 대문간채다.

솟을대문에는 홍살을 설치했고, 위에는 ‘송소세장(松韶世莊)’이란 현판이 걸렸다. 이 또한 송소고택의 부(富)를 부연한다.

그 아래를 지나 고택으로 들어선다. 경내에는 10채의 건물이 자리한다. 대문채, 안채,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 사당, 별채 등이 다.

하지만 제일 먼저 마주하는 건 집이 아니라 ‘ㄱ’자형의 헛담이다.

내외담이라고도 부르는데, 사랑채에 기거하는 남자들과 안채를 오가는 여자들 사이를 가른다.

조선 유교사회의 전통을 엿보게 한다. 헛담 주변으로는 아담한 정원을 꾸몄다. 화초들이 어울려 정감 있다.

마당에 선 향나무 고목도 고택의 풍모를 더한다. 헛담 뒤편에는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가 ‘ㅡ’자로 길게 자리한다.

큰사랑채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머물던 공간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위엄이 느껴진다.

누마루방에서는 바깥 정원의 풍경이 일품이다. 그 옆은 대청마루다. 대문간채 너머로 안산의 풍경이 시원스럽다.

대청 건너에는 책방이 있다. 사랑방은 정면 2칸에 측면이 1칸 반이다. 미닫이 창살문을 들여 반 칸의 작은 방(반침)을 뒀다.

작은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중문을 포함해 사랑 2칸과 대청 1칸 등으로 이뤄졌다.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는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 사이 중문으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ㅁ’자 구조로 전면에 사랑채가 있고 후면에 안채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특히 대청마루의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 횡창을 달아 시선을 끈다. 마당에는 화단과 우물이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동쪽에는 3칸짜리 큰 부엌이 있는데, 그 너머 후원에 따로 방앗간까지 두었을 정도로 부유했다.

서쪽 담장의 솟을삼문을 지나면 별채로 이어진다. 가묘가 아니라 정자를 둔 게 독특하다.

송소고택은 단순히 유서 깊은 고택에 그치지 않는다. 2002년부터 일찌감치 고택 체험 시설로 개방해 일반인의 숙박이 가능하다.

큰사랑과 작은사랑, 안사랑과 행랑채 등 14개의 방을 개방한다. 큰사랑채의 누마루방이나 별채 등이 인기가 좋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하지만 수세식으로 꾸며 깔끔하다. 해마다 열리는 고택음악회도 빼놓을 수 없다.

한옥 처마 아래 울리는 소리가 은은하다.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있지만, 실은 별도의 체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충주 미륵대원지 옛길에서 만나는 아주 오래된 절터

충주 미륵대원지 옛길에서 만나는 아주 오래된 절터

충주 미륵대원지 옛길에서 만나는 아주 오래된 절터

낭만 가득 재미 가득 한옥에서의 하룻밤 경북 청송 송소고택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옛길이다. 하늘재가 열리면서 수많은 사람과 문물이 넘나들었고, 길 위에는 사찰 터와 원터 등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숱하게 남았다.

하늘재 입구의 충주 미륵대원지라 불리는 사찰 터도 그 중 하나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드라마 <무신>의 첫 회에 등장한 배경지다.

<무신>은 고려시대 무신정권을 종식시키는 김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급변하는 고려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드라마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노비 신분에서 고려의 최고권력자에 오른 김준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시작점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신라의 모든 것을 넘겨주었다.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몸서리치며 반대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체념하고 금강산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을 달래며 넘었던 길이 하늘재이고, 신라를 등지고 북녘 땅을 바라보는 미륵불을 세운 곳이 바로 충주 미륵대원지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고, 대몽항쟁기 때 충주산성 등 충주 인근에서 몽고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점으로 미루어 이때 불탄 것으로 여겨진다.

우연이었을까? 드라마 <무신>의 배경은 고려시대 무인정권시대부터 대몽항쟁이 펼쳐지는 시기와 일치한다.

더구나 드라마 <무신>의 첫 회 촬영지가 바로 충주 미륵대원지다.

<무신>의 주인공 김준은 노비 출신으로서 최충헌-최우-최항-최의에 이르는 60년간의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최고의 지위인 문하시중에 올랐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고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고려시대 거란군과의 전쟁에 무리하게 동원된 승려들이 난을 일으키자, 무신정권은 승려들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화답했다.

갓난아이 때 축령사에 맡겨진 김준은 무상이라는 법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축령사로 설정된 충주 미륵대원지는 승려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무신정권의 친위군이 승려들과 백성들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가운데 김준도 결국 붙잡혀 개경으로 압송된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단 한 번 촬영이지만 스님들이 봉술과 수박 등 무술을 연마하는 장면, 김준과 월아의 애틋한 감정이 살아나는 장면 등이 촬영되었고

우뚝 솟은 석조여래입상 등 절터의 독특한 전경이 뚜렷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무신>은 고려의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30년에 걸친 대몽항쟁뿐 아니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고 하니 격변하는 고려의 역사를 살짝 음미해볼 만하다.

충주 미륵대원지에 이르면 가장 먼저 쓰러져 있는 당간지주와 거대한 귀부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우뚝 솟은 석가여래입상과 함께 팔각석등, 오층석탑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다.

오층석탑 옆에는 사각의 독특한 석등이 하나 남아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오래전 고개를 넘나들던 민초들이 간절한 염원을 빌던 곳이었고, 고개를 넘기 전 지친 발길을 쉬어가던 휴식처였지만

전란으로 폐허가 되고 문경새재 길이 열리면서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혀갔다. 그리고 80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현 미륵세계사가 들어서고 1977년 발굴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발굴 조사를 통해 <미륵당>, <미륵당초>가 새겨진 기와편이 출토되었는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미륵대원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사적 제317호로 지정되었다.

낭만 가득 재미 가득 한옥에서의 하룻밤 경북 청송 송소고택

낭만 가득 재미 가득 한옥에서의 하룻밤 경북 청송 송소고택

낭만 가득 재미 가득 한옥에서의 하룻밤 경북 청송 송소고택

사람이 하나가 되다 충주의 산과 호수 하늘과 땅

이 겨울, 하루 이틀 정도 한옥체험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달빛이 비치는 환한 창호지 너머로는 먼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문에는 배롱나무 그림자가 희미하게 어린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두툼한 이불을 나눠 덮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겨울밤이 훈훈해진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에 자리한 송소고택에 가면 이런 낭만적인 겨울밤을 보낼 수 있다.

심심산골 덕천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지기였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 13년에 걸쳐 지은 99칸짜리 집이다.

아들을 넷 두었던 선생은 인근에 또다시 30칸짜리 집 3채를 7년에 걸쳐 지었지만, 한국전쟁 때 2채가 불타버리고 지금은 송소고택과 둘째 아들의 집이었던 송정고택만이 남아 있다.

청송 심씨는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를 비롯해 왕비 4명, 부마 4명, 정승 13명을 탄생시킨 명문대가다.

송소고택은 김좌진 장군과 함께 활약했던 이범석 장군,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독립운동가 조병옥 박사 등 역사 속의 많은 인물들이 하룻밤 묵어간 곳이기도 하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관광의 최고상인 ‘2011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됐고, 연간 4~5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송소고택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부잣집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문을 밀면 12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린다.

솟을대문을 여닫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은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홍살을 올린 솟을대문은 당시의 부를 말해주는데,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심 부자의 재력은 9대 2만 석에 이르렀다고 한다.

개화기에 전답을 정리해 화폐로 바꾸니 고을 돈이란 돈은 전부 모였고, 이것을 청송으로 옮기는 행렬의 길이만 10리나 뻗쳤다고 전해진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건 ㄱ자형 헛담이다.

헛담은 안채에 드나드는 여자들이 사랑채에 기거하는 남자들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지은 간이 담장으로 일명 내외담이라고도 한다.

헛담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온다. 집안 어른이 기거하던 큰 사랑채와 후계자인 큰아들이 기거했던 작은 사랑채로 나뉘어 있다.

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는데 못을 쓰지 않고 만들었다고 한다.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는 사랑채 뒤편에 살포시 ‘숨어’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ㅁ’자형을 이룬다.

문간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방과 부엌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두지, 고방 등이 연결되어 있다. 안채의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정교한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송소고택에서 가장 특징적인 구조물은 사랑채와 안채 사이 담장에 뚫린 구멍이다.

사랑채에서 보면 6개이지만 안채에서 보면 3개뿐이다. 사랑채 손님이 몇 명이나 왔는지 안채에서 엿보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안채에서는 사랑채가 보이지만 사랑채에서는 안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안채 구멍 1개에 사랑채 구멍 2개가 45도 각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엄격함을 엿볼 수 있다.

송소고택은 아이들도 좋아한다. 부드러운 흙이 깔린 널찍한 마당과 정원은 잡기놀이와 비석치기 등 놀이를 즐기기에 좋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좋다.

꽃담과 굴뚝, 아궁이, 문고리 등 집 안 구석구석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소소하고 신기한 볼거리들로 가득 차 있다.

제기차기, 새총 쏘기, 투호 등 우리 전통놀이도 체험해볼 수 있다.

송소고택에 하루쯤 묵어보는 것은 각별한 체험이다. 120여 년 전의 대청마루와 기둥, 문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들어 새로 만들어진 한옥체험관과는 느낌이 다르다. 송소고택은 모든 재료가 옛날 자연 그대로다.

기단은 돌을 사용했고, 기둥과 서까래, 대청 바닥 등은 나무로 만들었다. 벽은 볏짚과 흙을 섞은 흙벽이다. 모든 창에는 한지를 발랐다.

밤이면 은은한 문살 사이로 달빛이 새어든다. 소쩍새 소리와 송소고택 앞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아침도 좋다.

송소고택에서는 되도록 일찍 일어날 것을 권한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별채 기와의 선이 예쁘다.

송소고택 뒤편에는 후원이 있다. 조그만 대숲과 흙담을 따라가는 산책도 즐겁다. 후원에서는 송소고택의 전경이 보인다.

사람이 하나가 되다 충주의 산과 호수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가 되다 충주의 산과 호수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가 되다 충주의 산과 호수 하늘과 땅

합천 해인사 여행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충북 충주는 내륙의 분지다. 사방을 준수한 산들이 둘러치고 있다. 그 중 외지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이른바 ‘천·지·인 삼등산’이다.

각각 천등산(807m)과 지등산(535m) 인등산(667m)의 머리글자를 따 부르는 이름이다.

한데 북에서 남으로 이어가는 산줄기의 순서는 천-지-인이 아니라 천-인-지다.

충주 북쪽에서부터 순서대로 보면 천등산이 가장 위에 있고, 인등산, 지등산이 이어져 있다.

풍수설을 믿는 이들은 이를 하늘 아래 사람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세 산은 높이에 견줘 산세가 험한 편이다. 골짜기도 깊다. 그 탓에 예부터 나라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피난처로 곧잘 이용됐다.

‘삼등산을 모두 넘으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은 이런 이유에서 생겼을 것이다.

세 산은 간격이 넓다. 따라서 종주산행을 하는 이들은 드물고, 각각의 산을 따로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엔 산이 많다. 하지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산은 그리 많지 않다. 강원도 태백산, 인천 강화의 마니산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천등산도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산이었다. 다만 태백산이나 마니산 등에 견줘 덜 알려졌을 뿐이다.

천등산 입구에서 느릅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천제단이 나온다. 원래 있던 위치에서 옮겨 보다 크고 웅장하게 조성했다.

먼저 천등산에 대한 오해부터 풀고 가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등산과 박달재가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옛 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때문이다. 반야월이 가사를 쓴 노래는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된다.

가사대로라면 누구나 박달재가 있는 곳이 천등산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데 박달재는 충북 제천, 천등산은 충주에 속해 있다.

거리도 9㎞ 정도나 떨어져 있다.

그러니 노래 가사에 생략된 단어들을 포함시켜 보다 정확히 가사를 쓰자면 ‘천등산 지나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라고 해야 옳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691m)이다.

모실 시(侍)에 사내 랑(郞)을 쓴다. 말 그대로 낭군을 모신다는 뜻이니 박달 도령과 금봉 처녀의 사랑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천등산은 높이 807m의 제법 험한 산이다.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행 기점은 다릿재다. 충주 삼척면과 제천 백운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개다.

다릿재 높이가 해발 374m이니 433m 정도 고도를 높이면 천등산 정상에 닿는 셈이다.

다릿재 가는 길은 충주와 제천을 잇는 4차선 도로가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두 도시를 잇던 간선도로였다.

그러다 10여 년 전에 새 도로가 뚫렸고, 이 때 다릿재 터널이 생기면서 지금은 잊혀진 도로가 되고 말았다.

다릿재 가는 길은 더없이 호젓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살짝 비켜선 덕이다.

충주구치소에서 구불구불 산자락을 휘감아 돌며 5㎞ 정도 이어진다.

다릿재에서 시작되는 천등산 등산로의 전체 길이는 1.8㎞ 정도다.

들머리에서 소봉까지 0.9㎞, 소봉에서 천등산 정상까지 0.9㎞의 단순한 구조다. 바삐 걸으면 2시간 30분, 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합천 해인사 여행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합천 해인사 여행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합천 해인사 여행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안동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 숲과 인간의 미래를 담다

우리의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삼라만상의 번뇌들이 멈추고, 비로소 우주의 참모습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것을 ‘해인’이라고 부른다.

해인사는 번뇌 속에 가려진 우주의 참 진리, 맑고 청아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인간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다.

우리에게는 팔만대장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해인사를 창건한 사람은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 이정 두 분의 스님이다.

이 두 스님이 신라 제 40대 왕이신 애장왕의 도움으로 해인사를 창건하였으니 그 역사가 천년을 넘는다.

고색창연한 사찰인 만큼 유명한 문화재와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몽골군의 침략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제작한 팔만대장경이 바로 해인사에 있는 장경판전에 보관되어있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전은 현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있으며, 국보 52호로 지정되어 그 보전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국보 52호 장경판전과 국보 32호 팔만대장경이 살아 숨 쉬는 경남 합천 해인사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해인사 창건설화

중국 양무제 때의 일이다.

유명한 스님이었던 지공화상께서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동국답산기]라는 책을 건내 주며

스님이 돌아가신 후 신라의 스님 두 분이 오셔서 이 책을 찾을 것이니 그 때 드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과연 얼마 후 신라에서 순응과 이정이라는 두 스님이 찾아왔고

제자들은 지공화상의 유언을 말씀드린 후에 [동국답산기]를 전했다.

순응과 이정스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지공화상스님의 탑묘를 찾아가 일주일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순응과 이정스님 앞으로 지공화상스님이 나타나 신라 가야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사찰을 세우라는 명을 내리고 탑묘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순응과 이정스님은 감사의 뜻으로 다시 한 번 불공을 드리고 신라로 돌아왔다.중국 양무제 때의 일이다.

유명한 스님이었던 지공화상께서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동국답산기]라는 책을 건내 주며

스님이 돌아가신 후 신라의 스님 두 분이 오셔서 이 책을 찾을 것이니 그 때 드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과연 얼마 후 신라에서 순응과 이정이라는 두 스님이 찾아왔고, 제자들은 지공화상의 유언을 말씀드린 후에 [동국답산기]를 전했다.

순응과 이정스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지공화상스님의 탑묘를 찾아가 일주일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순응과 이정스님 앞으로

지공화상스님이 나타나 신라 가야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사찰을 세우라는 명을 내리고 탑묘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순응과 이정스님은 감사의 뜻으로 다시 한 번 불공을 드리고 신라로 돌아왔다.

두 스님은 가야산 자락 아래 맑은 물이 흐르고 산세가 빼어난 곳에 자리를 깔고 선정에 들었는데 이마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와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고 한다.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애장왕은 왕후가 몹시 아파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가야산 자락 아래에서 두 스님을 만나게 되고 두 스님의 처방에 따랐더니 왕후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애장왕은 크게 기뻐하며 친히 두 스님이 계신 곳에 큰 사찰을 창건하니, 그곳이 바로 지금의 합천 해인사라고 전해지고 있다.

해인사를 지나면 해인사 창건 당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신라 40대 애장왕이 식수하였다고 전해지는 나무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1945년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한 고사목이지만, 고사목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해인사가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찰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안동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 숲과 인간의 미래를 담다

안동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 숲과 인간의 미래를 담다

안동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 숲과 인간의 미래를 담다

단풍이 아름다운 춘천

나무가 없는 대한민국의 산하를 상상할 수 있을까?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은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산림자원의 이모저모를 알아보고 숲을 가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뒤편으로 이어져 있는 소득식물생태숲의 호젓한 숲길과 전망대, 습지산책로도 꼭 둘러보자.

미리 정보를 찾아서 가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을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안동시에서 도산서원으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산림과학박물관이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과는 달리 산림자원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담고 있는 테마 박물관이다. 경상북도산림자원개발원이 운영하는

산림과학박물관과 영지산 자락을 따라 아름다운 산책로가 조성된 소득식물생태숲이 여행자를 맞고 있다.

먼저 자연과 나무 그리고 인간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숲의 생태를 보여주는 영상물, 옛 제재소 풍경을 재현한 전시물로 이루어진

로비를 둘러본 후 본격적인 박물관 여행에 나선다. 4개 전시실과 다양한 테마 공간으로 이루어져 마치 숲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돌아볼 수 있다.

제1전시실은 생물의 진화 과정과 숲의 변화, 산림자원 활용의 대표적인 예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공룡과 원시인 조형물, 다양한 입체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산림의 공익적 기능과 자원 활용의 역사를 살펴보며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제2전시실로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숲이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백두대간의 중심을 이루는 경상북도의 산림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다.

산림 훼손으로 헐벗은 산의 모습과 복구 노력 등이 연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사진을 통해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어 변화 과정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디오라마와 《산림경제》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산림 관련 문헌들도 눈길을 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나무블럭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전시실 끝에 있어 잠시 쉬어 가기 좋다.

제3전시실로 오르는 길에 ‘나무이야기’라는 이름의 원시 숲이 꾸며져 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곳으로 2층 경사로를 오르며 원시 숲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아이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원숭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가족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놓았다.

제3전시실에 들어서면 경북의 지리적 특성과 경북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들

산촌마을의 풍경을 보여주는 디오라마, 그리고 귀틀집이 이어진다.

제4전시실은 산림의 파괴와 그로 인한 환경 재앙, 복구를 위한 노력, 미래 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숲의 미래가 곧 지구의 미래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수 공정을 도입해 색감이 살아 있는 야생화 압화실, 표본갤러리, 고가구를 비롯한 목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는 기획전시실 등

다양한 테마 공간과 4D상영관도 인기다. 4D상영관에서는 ‘나라와 준의 초록별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파괴된 지구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펼치는 모험을 매 시각 실감나는 4D 영상으로 보여준다.

숲의 사계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테마 공간도 이색적이다.

꽃이 피어나는 봄날

녹음이 우거진 여름, 고운 단풍이 물드는 가을, 눈 쌓인 겨울을 천천히 걸어볼 수 있어 마치 1년을 한순간에 느껴보는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경상북도산림자원개발원은 산림자원을 소득과 연계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조성한 소득식물생태숲에서 각종 산야초와 약용수, 유실수 등을 재배, 관리하고 있으며 주변 숲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아 숲의 생태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숲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산림과학박물관 뒤편의 십이지신상을 감상한 후 산모퉁이를 돌아 이어지는 길을 오른다.

원추리, 비비추, 개미취가 심어진 길을 따라가면 울창한 숲이 발아래 펼쳐진다. 오르막이긴 하지만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걷기 좋을 정도의 경사다.

단풍이 아름다운 춘천

단풍이 아름다운 춘천

단풍이 아름다운 춘천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많은 사람들이 가을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도시는 춘천일 것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뚫린 뒤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닭갈비와 막국수가 먹고 싶은 날에는 별 고민 없이 하루

나들이 코스로 춘천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휘적휘적 거리며 춘천 시내를 도보로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고, 배타고 어렵게 찾아간 중도에서 행복한 캠핑라이프를 즐기는 것도 좋고

낭만적인 남이섬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즐거운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고

코끝을 살랑이는 가을바람과 춘천은 가을엽서와 몽당연필처럼 잘 어울린다.

그동안 사랑하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잘 알려진 춘천. 하지만 가족단위 관광객이 늘면서 아이들을 위한 이색 박물관들이 많아지고 있다.

춘천에는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빠져들만한 신기한 볼거리들, 체험거리들로 가득한 박물관이 많이 있다. 춘천이 자랑하는 이색박물관의 세계로 다 같이 떠나보자.

막국수체험박물관

메밀로 만들어져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일품인 막국수는 메밀의 주산지인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중 하나이다.

메밀은 체중을 조절해주고 혈압을 낮춰주며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등 우리 몸에 아주 좋은 음식이다.

이 메밀을 이용해 만든 막국수에 대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있는 곳이 바로 막국수체험박물관이다.

체험프로그램을 미리 예약하면 2층 체험장에서 체험지도사와 함께 맷돌, 국수틀 등을 사용한 전통방식으로 막국수를 만들어 볼 수 있고 즉석에서 식사까지 할 수도 있다.

평소에는 쌉쌀한 맛 때문에 먹기를 꺼려했던 아이들과 함께 직접 막국수를 만들어 맛있게 먹어보자.

전시장에서는 춘천막국수를 만들어내던 원조 국수틀이 전시되어있어 있다.

지금이야 기계화되어 반죽을 넣어 뜨거운 물아래로 쭉 뽑아내면 맛있는 막국수 면발이 금방 완성되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나무로 된 국수틀에다가 일일이 넣어서 뽑아내어야 했다.

함지는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튼튼하고 예쁜 그릇이다.

커다란 통나무 속을 파내 만든 그릇이었기 때문에 다른 그릇들보다 강도가 튼튼해서 주로 맷돌을 받치는 용도로 사용했다.

맷돌을 함지 위에 얹어두고 곡식을 갈면 함지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중에는 맷돌을 치우고 함지 안에 들어있는 갈아진 곡식을 요리할 때 사용했다.

함지는 또 모양이 예쁘고 면적이 널찍하여 여러 사람들이 먹을 요리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비비고 무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통나무 속을 파내어 그릇을 만들었던 산간지역 사람들의 생활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메밀막국수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는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예로부터 강원도 사람의 주식으로 많이 활용되던 곡식이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 메밀을 수확하여 곡식을 가루로 만든 다음, 여러 가지 음식재료로 활용했는데 막국수를 비롯하여 메밀전병

메밀부침, 메밀묵, 메밀칼국수 등은 산간지역 사람들의 친근하고 든든한 먹거리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도시사람들이 즐겨 찾는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강원도산림박물관은 도립화목원내에 위치해있다. 화목원은 정원이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있어서 가족들과 산책하기에도 좋다.

강원도산림박물관은 여러 전시실 모두 잘 꾸며져 있지만 강원도 특유의 아름다운 숲과 숲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이 실감나게

재현되어있는 숲체험실을 특히 추천할 만하다. 다른 여느 박물관처럼 이곳에서도 체험과 4d 입체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순수 국내산 과실주 와인과 함께 즐기는 영동포도축제

주막거리로 명성을 날린 단양 대강면에 4대째 이어오는 대강양조장이 있다.

옛 풍경과 이야기가 곁들여진 새콤하고 진한 막걸리 한 잔과 산속에서 상 위로 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산야초장아찌 한 상은 무더운 여름날을 보낸 노고를 위로해준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걷는 벽화 골목에서는 100년 역사가 느껴진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잇는 죽령(해발 689m)은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 3대 관문으로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향할 때 넘어야 하는 고갯길이었다.

낮에 죽령을 넘은 이들은 지금의 대강면에서 밤을 보내야 했는데, 이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그때부터 부근에 주막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강양조장이 4대째 우리 술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어렴풋이 옛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대강양조장은 1918년 충주에 있던 외증조부의 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3대 조국환 대표가 1969년 양조장을 계승하고 대강면으로 이전하며 대강양조장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대강면의 역사도 그렇거니와 소백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술맛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단양으로 이전하고 새롭게 개발한 술이 단양 지역 가양주인 신선주를 재현한 것인데, 당시만 해도 신선주는 고서와 구전으로 남았을 뿐이다.

2004년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의 바람에 따라 검은콩 막걸리 특허를 받았고, 쌀과 밀, 옥수수, 보리, 조가 들어간 오곡진상주는 2005~2008년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되었다.

2008년부터 조재구 대표가 4대째 대강양조장을 지키며 복분자 막걸리를 비롯한 우리 술 개발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대강양조장은 우리 술 제조와 판매는 물론, 막걸리 체험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한다.

체험 프로그램은 쌀과 소백산 자연수, 누룩을 사용해 술 빚기, 전통 도구를 이용해 술 짜기, 완성된 술을 간단한 안주와 함께 시음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체험 가능한 인원은 3~30명으로, 프로그램은 2시간 정도 진행된다. 비용은 인원수에 따라 다르지만 1인 2만원 정도다.

전화나 인터넷 홈페이지로 예약한 뒤 참여할 수 있다.

마무리는 양조장 발효실과 박물관 관람이다. 발효실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늘어섰다.

전통 맛을 고수하기 위해 지금도 오래된 항아리에서 효모를 키운다. 항아리를 고친 흔적은 양조장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조장의 역사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에는 1960~1970년대에 사용된 잡기며 도구가 전시된다.

농가 맛집을 자처하는 수리수리봉봉의 주메뉴는 오리와 닭백숙, 산채정식, 닭볶음탕이다.

정식에는 메인 요리와 함께 여러 가지 장아찌, 산나물을 듬뿍 넣은 만두, 산야초스테이크와 산야초전이 포함된다.

모든 요리가 맛깔스럽지만, 한상차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접시는 단연 장아찌다.

어떤 메뉴를 주문하더라도 장아찌가 6~7가지 나오는데, 주재료는 철마다 달라진다.

이곳의 장아찌는 소백산 수리봉과 신성봉 부근에서 직접 채취한 산야초와 지역에서 재배되는 제철 채소로 만든다.

양념은 간장, 설탕, 식초를 3:2:1 비율로 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

직접 담근 간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덜 짜고, 각 재료의 향과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순수 국내산 과실주 와인과 함께 즐기는 영동포도축제

순수 국내산 과실주 와인과 함께 즐기는 영동포도축제

순수 국내산 과실주 와인과 함께 즐기는 영동포도축제

괴산과 올갱이 그리고 옛맛 담긴 뚝배기

여름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은 요즘, 충북 영동에 달콤한 보랏빛 축제의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17 영동포도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달콤한 포도의 맛과 향 그리고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선사한다.

지난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영동포도축제가 펼쳐졌다.

충북 영동은 우리나라 최대의 포도 산지이다. 포도 재배 면적이 2,200ha로 전국 포도생산량의 12.7%에 이른다.

연간 포도생산량은 3만 3,000여 톤. 송이로 따지면 1억 송이 정도라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다.

더구나 와인코리아뿐 아니라 포도 재배 농가가 와이너리를 갖추고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든다.

현재까지 영동의 와이너리 농가 수는 50여개에 이른다.

각 와이너리마다 맛도, 향도, 색도 틀릴 테니 적어도 50가지 이상 와인이 생산되는 셈이다.

그래서 충북 영동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포도와 와인 특구로 지정되었다.

8월이면 포도가 알알이 영근다. 새콤달콤한 보랏빛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면 영동에서는 포도축제와 함께 와인의 계절이 돌아온다.

영동에서 와인산업이 뿌리내린 것은 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포도를 자체적으로 발효, 시음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다.

지금의 와이너리로 육성한 것은 비교적 근래인 2008년의 일이지만 ‘101가지 맛과 향이 있는 와인의 고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50여개 와이너리가 들어섰으니 그 날이 머지않았다. 2013년 대전와인트로피에서 세계 각지 2,635종의 와인 가운데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실버 메달을 따고, 2015년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주관한 한국와인품평회에서 대상 등 5개 부문을 모두 석권한 와인도 영동 와인이다.

포도를 수확하면 와이너리에서 다양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포도 수확과 함께 포도 세척, 줄기를 잘라주는 제경

손으로 포도를 눌러 껍질과 과육을 분리시키는 파쇄 과정을 거친다.

잡균을 제거하고 효모가 발효 작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아황산을 첨가한 뒤 당도를 측정하고 설탕과 효모를 첨가한다.

이후 1차 발효, 여과, 2차 발효 과정을 거쳐 100일 뒤면 와인으로 거듭난다.

컨츄리와인, 도란원, 블루와인농원 등 농가형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해 시음뿐 아니라 구입도

할 수 있으니 와인을 좋아한다면 영동포도축제와 함께 영동의 와이너리를 들러볼 일이다.

2017년 영동포도축제는 8월 24일(목)부터 27일(일)까지 영동체육관 일원과 와인코리아, 농촌체험마을 중심으로 열렸다.

올해 13회를 맞이한 영동포도축제는 ‘달콤한 가족사랑 영동포도와 함께해요’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가족과 함께 포도축제를 즐기라는 뜻일 게다. 영동포도축제는 포도를 맛보고 즐기는 체험이 가장 많다.

포도체험존에서는 영동포도 밟기, 영동포도 낚시, 홀인원 키즈골프 등이 진행된다. 만들기체험존에서는 포도빙수와 포도초콜릿 만들기

포도비누 만들기 등의 체험을, 와인체험존에서는 웰빙 와인족욕 체험, 나만의 와인 만들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포도밟기 체험과 포도낚시 체험은 포도를 이용한 체험이어서 더욱 실감난다. 그중 가장 흥겨운 것은 포도밟기 체험이다.

괴산과 올갱이 그리고 옛맛 담긴 뚝배기

괴산과 올갱이 그리고 옛맛 담긴 뚝배기

괴산과 올갱이 그리고 옛맛 담긴 뚝배기

전기 없이 보내는 산골에서의 하루 보은 선애빌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속이 거북하다’ 이럴 땐 해장국이다.

주재료에 따라 해장국의 종류도 천차만별, 그 중 ‘최고 해장국’은 애주가 사이에 단골 논란거리다.

점심시간, 해장국 논란이 가열차다.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복어국 등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후보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귀가 솔깃한 후보가 등장했다.

“올갱이 해장국도 좋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주가의 추천이다.

그의 해장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데 ‘알아볼 만하겠구나’ 이렇게 올갱이와 연이 닿았다.

올갱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친다.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방언이다.

방언임에도 ‘올갱이’라는 단어는 친숙하다. 충청도의 올갱이 음식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충청도 서식지, 올갱이 음식을 수소문해 보니 충청북도 괴산군이 자주 꼽힌다.

남한강의 주요지류 중 하나인 달천강 부근에 올갱이 마을도 있다고 한다.

주민들에게 괴강이라 불리는 이 하천은 경관이 수려하며 생태적 가치 또한 높다는 평이다. 그곳으로 출발~

괴산군은 소백산맥의 산세가 넓게 퍼진 곳이다.

기복이 작지만 완만한 산과 언덕이 넓게 퍼졌다.

그래서 평지가 드문 대신, 계곡이 많은 편.

산에서 내려온 깨끗한 물이 달천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흐른다.

달천강에 올갱이가 많이 서식한다. 괴산의 물줄기는 물살이 빠르지 않고 강물의 폭이 넓고 수심도 얕다. 올갱이 같은 수서생물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올갱이는 ‘물속의 웅담’이라고 불린다. 영양소가 유달리 풍부해 충청도를 대표하는 건강식품이다.

특히 간에 좋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올갱이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그리고 숙취 해소에 좋고 당뇨예방과 눈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됐다.

본초강목 또한 눈에 좋다고 적혔으며 이외에 열을 내리는 효과와 변비, 당뇨, 이질에 좋다고 한다. 보양식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율원리 둔율마을에 도착. 가까이 군자산이 보인다. 사방이 완만한 산세로 병풍 두른 듯하다.

마을 어귀는 보기 드문 평지에 논과 밭이 놓였다. 그리고 올갱이가 많다는 달천강이 흐른다. 올갱이체험이 가능하며 매년 올갱이 축제도 이뤄지는 곳이다.

올갱이와 농촌이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하나하나 직접 둘러보자. 15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전통놀이를 주제로 한 벽화가 재미있다.

곤충체험 학습장을 찾았다. 야외에 올갱이가 사는 어항, 토종 참개구리, 토끼 등이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곤충, 애벌레 등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그리고 나비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됐다.

수백 마리의 나비다. 나비가 잘 살 수 있는 생태적 조건을 충족시켜 놓았는데, 한쪽에는 나비 번데기와 번데기에서 나오는 중인 나비를 볼 수 있었다.

옆 건물은 올갱이 양식장이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어조에 올갱이가 붙을 수 있는 판들이 겹겹이 붙은 것을 넣어 놨다.

자세히 보니 1㎜크기의 올갱이부터 손가락 한마디만 한 3년생 올갱이까지 다양하게 양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