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구름마을 풀쌈만찬으로 화합을 꿈꾸는 곳

영동 구름마을 풀쌈만찬으로 화합을 꿈꾸는 곳

영동 구름마을 풀쌈만찬으로 화합을 꿈꾸는 곳

제천 옥순봉 조선명탐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뛰어내리다

각 지역마다 관광자원이 대폭 확대되어 마음만 먹으면 별의별 경험을 다 할 수 있게 된 요즘이다.

그래서 웬만한 레포츠나 신생 축제에는 심드렁한 마음부터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신이 구름마을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따분한 일상에서 색다른 활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달 풀쌈만찬을 통해 이웃과 정을 나누고 화합의 가치를 실천하는, 어느 ‘착한 귀농인들’을 말이다.

영동 매곡면과 대항면을 잇는 괘방령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도로 오른편으로 작은 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은 강진저수지. 우리가 찾아가려는 구름마을의 시작점이다. 길가에 외롭게 선 ‘한국농어촌공사’ 표지판을 만나면 잘 찾아왔다는 증거다.

어귀에 차를 대고 저수지 방향으로 곧장 10여분을 걸으면 이장 댁에 닿는다.

나무너와를 인 황토집엔 ‘구름마을 살가운 집’이라고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 이곳이 구름마을임을 알리는 유일한 표식이다.

잠시 후 가족 단위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풀쌈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풀쌈축제는 구름마을이 매년 5월에 여는 시그니처 이벤트다.

마을 주민들이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자체적으로 즐기던 풀쌈만찬을 연례행사화한 것이다.

이때는 도시민들을 초대해 풀을 뜯고 만찬을 즐기는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규모 면에서 비교적 단출하고 소박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내부 인력과 소수 조력자의 힘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여덟 번째 풀쌈축제는 올해 5월 27일에 열렸다.

이장 댁은 구름마을 마을회관이자 풀쌈축제가 시작되는 행사장이다.

앞마당엔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천막과 채취한 풀을 씻을 수 있는 수도가 설치돼 있고 뒤쪽엔 꽤 널찍한 복숭아밭이 자리한다.

이 복숭아밭은 풀쌈축제의 일환으로 선행되는 복숭아농사체험을 진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후부터 몰려든 가족단위 참가자들은 익숙한 듯 이장과 인사를 나눈 뒤 자연스레 복숭아밭으로 향한다.

이제 막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어린 복숭아가 아무런 지장 없이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일이 어려울 법도 한데 어린 꼬마들도 손쉽게 해낸다.

알고 보니 이들은 서울의 한 복지재단을 통해 캠핑봉사를 해온 전력이 있단다.

구름마을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나.

한 시간에 걸친 복숭아농사체험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풀쌈축제 준비에 돌입한다.

그 첫걸음은 뒷산에서 식용 풀을 직접 채취하는 것. 저마다 봉지나 바구니 따위를 들고 이장의 설명에 따라 먹을 만큼 풀을 채취하기 바쁘다.

언뜻 보면 쉬운 일이나 풀쌈축제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이 이 과정을 빠릿빠릿하게 소화해내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이장이 함께 돌아다니며 먹는 풀의 종류와 효능을 알려주지만 설명을 들으며 먹을 만큼의 풀을 뜯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리기 때문이다.

진도를 잘 따라가려면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다간 헛것을 가져가게 되는 수가 있다.

일단은 이장의 설명을 들으며 해당 풀의 샘플을 채취하고, 이후에 혼자 다니며 양을 추가 확보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장이 소개하는 먹는 풀의 종류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카시아 잎이나 산딸기, 망개잎, 쑥, 산초, 오디 등은 익숙하니 그렇다 쳐도 토끼풀과 단풍잎이 거론될 땐 충격이 크다.

믿기지 않지만 단풍잎은 ‘아이셔’ 맛이다.

아이들도 새콤한 맛에 반했는지 여러 장 따다가 입에 물고 다닌다.

사람들이 잘 모를 뿐, 이곳의 모든 풀들은 나름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잘못해서 독초를 섭취할까 우려했지만 이장은 손을 휘휘 젓는다.

“이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가공을 거치면 대부분 한약재로 쓰이는 것들이에요.

제가 풀을 30년 이상 먹었으니까 말만 잘 따르면 괜찮아요. 2만 명 이상 여길 다녀갔지만 탈이 난 사람은 없었거든요.

화장실에 가게 될 순 있는데, 그건 우유 먹고 배가 아픈 것과 같은 경우에요.

오히려 식사 전 먹는 쌈 한두 개는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좋아요.”

제천 옥순봉 조선명탐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뛰어내리다

제천 옥순봉 조선명탐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뛰어내리다

제천 옥순봉 조선명탐정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뛰어내리다

전주 신 중앙시장 에서 만나는 추억의 포장마차 여행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미디 사극이다.

배우 김명민과 오달수가 콤비를 이루는 영화 속에는 깨알 같은 웃음 코드도 가득하지만, 정조 시대 개혁과 보수, 유교와 천주교

양반과 노비 등 서로 상반되는 다양한 관계가 깊이 녹아 있다. 옥순봉은 이 영화의 촬영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 속에선 살아남기 위해 뛰어든 천 길 낭떠러지였지만, 호수와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개혁에 앞장섰던 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납 비리의 배후를 찾으라는 정조의 밀명과 함께 ‘탐정’이라는 정5품 벼슬을 내리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 속 옥순봉은 거대한 음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던져야 했던 천 길 낭떠러지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유일한 구세주 역할을 한다.

영화 속 김씨 부인도 그랬고, 조선 명탐정도 몸을 던져 살아난 후에야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다.

옥순봉은 절세미인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절경을 자랑한다. 비 갠 후 여러 개의 푸른 봉우리가 죽순처럼 솟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정조 때 연풍현감으로 부임한 단원 김홍도는 옥순봉의 빼어난 자태를 화폭에 담았다.

옥순봉의 모습은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와 풍속화를 모은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에 남아 있다.

옥순봉은 재미있게도 두 고장에서 나란히 절경에 포함시킨 아름다운 봉우리다.

제천 땅에 속해 있으면서도 제천 10경뿐 아니라 단양 8경에도 포함된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퇴계 이황 선생과 단양의 기생 두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옥순봉은 예부터 청풍부에 속해 있었다. 단양 관기 두향은 옥순봉의 절경에 감탄하여, 당시 단양군수로 부임한 이황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포함시켜 달라고 청원했다.

이에 이황이 청풍부사에게 건의했지만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절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고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황과 두향의 플라토닉 사랑은 충주호반의 잔잔한 물결처럼 애잔하게 남아 있다.

이황은 단양군수로 부임한 지 9개월 만에 풍기군수가 되어 단양을 떠나야 했다.

이황을 간절히 사모했던 두향은 매화나무 한 그루를 선물하며 가슴 찡한 이별시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황은 훗날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을 정도로 매화를 아끼고 사랑했다.

두향이 선물한 매화는 아마도 떠나가는 사람에게 전하는 애절한 사랑의 징표가 아니었을까?

20여 년 뒤 이황이 숨을 거두자 두향도 이황과 함께 거닐던 강선대 아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장회나루 건너편에는 이황과 두향이 정을 나눴다는 강선대와 두향의 묘가 남아 있다.

옥순봉에 올라서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끊임없이 뻗어가는 산세와 잔잔한 호반이 어우러져 감탄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정도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신선만이 즐길 수 있는 선경이다.

구담봉 역시 옥순봉만큼이나 아름다운 절경을 품고 있다. 옥순봉과 구담봉을 가려면 계란재 정상에 자리 잡은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해야 한다.

계란재에서 옥순봉과 구담봉까지는 6km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계란재에서 약 1.4km 떨어져 있는 삼거리를 기준으로 좌측에 옥순봉

우측에 구담봉이 있어 어느 쪽을 가더라도 삼거리를 두 번 거쳐야 한다.

탐방로가 제법 오르락내리락할 뿐 아니라 암릉과 험한 절벽이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탐방안내소에서 삼거리까지는 30분 정도면 닿는다. 옥순봉으로 가는 길은 바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봉우리 아래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전망이 툭 트인다. 옥순봉 정상에 못 미쳐서 만나는 절벽은 옥순봉 정상보다 훨씬 아름다운 절경을 선사한다.

전주 신 중앙시장 에서 만나는 추억의 포장마차 여행

전주 신 중앙시장 에서 만나는 추억의 포장마차 여행

전주 신 중앙시장 에서 만나는 추억의 포장마차 여행

당진 오일장 충남에서 손꼽는 풍성한날

전주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국내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새로움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여행자에게는 조금 식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런 전주에 새로운 야시장이 생겼는데요. 바로 전주 ‘신중앙시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추억의 포장마차 거리가 있는 전주의 신중앙시장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전주 객사, 한옥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공구거리가 있습니다. 그 거리 주변에 바로 중앙시장이 위치해 있는데요.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먹던 음식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시장에서 먹는 음식’이 바로 신 중앙시장의 콘셉트입니다.

아직은 남부시장에 비해 사람이 적지만 적은 만큼 포장마차의 주인과 음식을 찾는 손님과의 정이 피어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전주 신중앙시장의 야시장인 추억의 포장마차 거리는 남문, 북문 거리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매주 금, 토일에 열리는 야시장은 남문이나 북문 어느 쪽으로 들어가도 만날 수 있죠.

하지만 동문이나 서문을 이용할 시에는 시장 중앙부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일반 상점들이 문을 닫아 약간은 어두우니 야시장을 바로 만날 수 있는 남문과 북문으로 들어가면 편합니다.

신 중앙시장 야시장은 원래 중앙시장으로 불렸지만 청춘 요리사들이 운영하는 ‘청춘 밀당’과

‘추억의 포장마차’야시장이 들어서면서 ‘신 중앙시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청춘 요리사들 덕분에 야시장에는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음식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만들기 때문에 군침을 흘리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기도 하죠.

이제는 어느 야시장에 가더라도 빠지지 않는 메뉴가 바로 스테이크 일 텐데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냄새를 맡는다면 발길을 멈추게 될 것 같습니다.

전주 신중앙시장 야시장에도 스테이크를 하는 포장마차가 있는데요.

무려 소고기 철판 스테이크와 밥이 없으면 안되는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한 소고기 초밥까지 있습니다.

스테이크 옆에는 철판에서 함께 구운 야채와 약간은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잡아주는 할라피뇨, 거기에 배를 더욱 든든하게 채워주는 감자 튀김이 있는데요.

이 조합은 정말 환상적일 수밖에 없죠. 소고기 초밥에는 달큼한 소스와 양파를 얹어 맛의 풍미를 더했지요.

길거리 음식 치고는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스테이크 한 점을 입안에 넣는 순간 그 생각은 잊히게 됩니다.

스테이크, 초밥 이외에도 생 자몽을 반 잘라 통째로 올린 꿀 생자몽 맥주와 크리미한 생맥주 그리고 다양한 맥주 및 음료들이 있어 음식과 함께 즐기기 좋은데요.

훌륭한 맥주와 안주 덕분에 이곳이 야시장인지 맥줏집 인지 헷갈릴 정도랍니다.

중앙포차의 대표 메뉴인 고등어 갈비 ‘고갈비’는 부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이지만 전라도에서는 약간 생소한 메뉴랍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흔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죠. 주문 후 바로 조리를 하기 때문에 비릿하지 않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닭날개를 품은 만두랍니다. 닭날개 만두는 겉은 닭 날개 튀김처럼 보이지만 안은 만두 속으로 꽉 차있죠.

만두를 품고 있는 닭으로 중앙로 포차 메뉴 중에서도 꽤 특이한 음식이랍니다.

바삭한 치킨 속 만두는 치킨과 만두 두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이죠.

만두 소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요 김치, 야채, 치즈로 구성되어있답니다.

당진 오일장 충남에서 손꼽는 풍성한날

당진 오일장 충남에서 손꼽는 풍성한날

당진 오일장 충남에서 손꼽는 풍성한날

검마산 자연휴양림 청정한 자연 속 오지 캠핑

오일장은 풍성하다. 사람도 넘쳐나고, 온갖 물산도 차고 넘친다.

많은 전통시장이 사라져가는 요즘, 오일장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지만 당진 오일장은 예외다. 충남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오일장이다.

당진 구시가지에 자리한 당진상설시장에서 매 5, 10일에 열린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한산하던 상설시장이 북적이기 시작한다.

사람 구경, 물건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두 손이 묵직하다. 사람과 물산이 어우러진 당진 오일장의 풍경을 만나본다.

길이 7km가 넘는 서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당진시다. 당진IC에서 10km 채 못 미쳐 당진 읍내로 들어선다.

번듯한 아파트 단지와 당진터미널을 지나면 옛 당진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읍내동이다.

당진군이 당진시로 거듭난 것은 지난 2012년. 10여 년 사이 당진은 제법 큰 도시로 성장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읍내동은 군청 등 각종 관광서와 버스터미널이 자리했던 당진군의 중심지였다.

관공서와 터미널 등이 차례로 이전해가면서 읍내동은 말 그대로 원도심이 되었다.

읍내동에는 용장천을 끼고 1974년에 개설된 당진상설시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월 5, 10일로 끝나는 날에 오일장이 열린다.

한갓진 상설시장의 오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일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전 7~8시쯤이면 당진의 읍면은 물론, 서해대교 건너 경기도와 충남 각지에서 물건을 지고 온 사람들과 물산이 모여든다.

당진 오일장은 당진상설시장 내 당진시장오거리에서 시작해 시장교 입구에 이르는 500m 구간에 펼쳐진다.

단순히 거리만 따지면 커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규모가 제법 커서 발품을 팔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우습게 흐른다.

오일장은 교통이 편리한 접점이나 각 지역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곳에 들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진 오일장 역시 충청남도와 경기도가 맞닿아 있고 바다를 낀 고장이라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어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당진상설시장에는 공영주차장이 두 곳 있다. 당진시장오거리 인근에 한 곳, 새로 들어설 당진어시장 앞에 한 곳이다.

1시간에 600원으로 주차요금도 저렴하다. 당진어시장 앞 공영주차장에서 나오면 당진상설시장의 커다란 아케이드가 시작된다.

아케이드 내는 수산물이 대부분이다. 당진 장고항을 중심으로 제철 맞은 실치를 비롯해 주꾸미와 각종 생선이 좌판을 가득 채운다.

어시장이 아직 개장되지 않아 수산물 노점이 상설시장 내 노상으로 많이 나섰다.

상설시장 아케이드를 지나 다음 사거리에 이르면 본격적인 오일장의 주무대가 펼쳐진다.

바다와 가까운 오일장이라 그런지 귀하디귀한 어란을 여기서 만난다. 어란은 예부터 왕에게 진상했던 귀한 음식이다.

봄에 잡히는 숭어의 알에 꽤 오랜 시간과 사람의 정성스런 손길이 거쳐가야 비로소 탄생하는 전통음식이다.

갓 잡은 숭어 뱃속에 든 알을 연한 소금물에 담가 핏기를 제거한 뒤 간장에 물을 섞어 알을 담가놓았다가 건조시킨다.

어란을 말릴 때는 참기름을 발라가며 뒤집어주는데, 이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해야 제대로 된 어란이 완성된다.

좌판에 널린 어란을 보니 군침이 돌지만, 250g에 25만 원 정도 한다는 말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제철을 맞은 실치와 꽃게도 좌판의 주인공이다. 실치는 4월부터 5월 초에나 맛볼 수 있는 당진의 별미다.

실치는 베도라치 치어로 회나 무침, 아니면 시금치나 아욱을 넣고 끓인 실치국 등으로 맛볼 수 있다.

굵은 실치를 말린 실치포, 봄철까지 나는 녹색 감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은빛으로 빛나는 멸치, 밴댕이의 치어인 디포리 등 육수와 밑반찬용으로 쓰이는 건어물도 상자에 가득 담겼다.

입이 뾰족한 건어물이 있어 물어보니 학꽁치 말린 거란다.

방파제에서 낚시로 잡은 건 많이 봤는데 치어를 말려 건어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말린 학꽁치는 주로 조림으로 많이 해먹는다고 한다.

검마산 자연휴양림 청정한 자연 속 오지 캠핑

검마산 자연휴양림 청정한 자연 속 오지 캠핑

검마산 자연휴양림 청정한 자연 속 오지 캠핑

월영교 일대 하회별신굿탈놀이 유교문화길 달빛여행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영양까지 가는 길은 정말 먼 길이 아닐 수 없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곧 목적지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구불구불한 국도 길을 하염없이 운전하여 가야 한다.

캠핑은 자연을 찾아 떠나는 먼 여정이니만큼, 진정 캠핑을 사랑하는 캠퍼들에게는 청정한 자연 그 자체가 그 여정의 보답이 되어 줄 것이다.

먼 길이 힘겨워 잠시 쉬었다 가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집 한 채 보이지 않아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가야하고

등이 구부정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뙤약볕에 나물을 말리고 있는 시골 풍경이 지속되는 길을 가야한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의 끝, 드디어 검마산 자연휴양림 수비면의 읍내풍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60년대 영화에 나올법한 아주 오래된 버스정류장과 그 옆에 작은 기사식당이

마치 어느 영화의 세트장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도 간단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가게들은 넉넉하게 있으니 휴양림에 들르기 전 꼭 장을 봐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수비면에서 차로 10여분 정도를 더 달리면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검마산 자연휴양림에 도착이다.

검마산은 태백산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길에 위치한 산으로 산세가 험준하며 마치 검을 빼어 든 모양새와 비슷하다 하여 검마산이라 부르고

대체로 영양의 산들은 그 모양새가 날카롭고 험준하며 신비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검마산은 날카롭기로 유명한 산세만큼이나 소나무숲 또한 아름다운 산림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 산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에는 숲체험 프로그램과 등산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4시간정도의 등산길은 조금 험준하지만 제대로 된 땀을 흘려볼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 되어준다.

등산로를 걷기에는 조금 버겁고 힘들다면 보다 짤막하고 편안하게 조성된 산책로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자연휴양림의 매력은 바로 명품으로 조성되어있는 숲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숲 속의 집과 같은 통나무집 시설도 꽤 훌륭하지만 숲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캠핑이 아닐까 싶다.

얇은 천 하나에 의지하여 하룻밤을 보내다 보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한 기운이 몸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분이 들어서 행복해 진다.

캠핑 초보일 때는 온갖 식재료는 다 가지고 와서 푸짐하게 차려놓고 호기 있게 먹기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다 먹지 못하고 그대로 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지금은 캠핑할 때 탄소배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먹을 만큼만 준비해서 간단하게 조리해먹는 요령이 생겨 아이들과 즐겁게 캠핑요리를 즐기고 있다.

아이들과 캠핑할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몸에 좋은 우리 야채를 많이 먹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데, 이럴 때 가장 많이 해먹는 요리가 바로 야채전이다.

그 지역 재래시장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를 조금씩 종류별로 구입하여 싱싱한 호박

맛있고 달큼한 고추, 쪽파, 깻잎 등과 함께 넣으면 좋은 재료가 된다.

야채를 깨끗이 씻어 간단히 천일염만으로 밑간을 하고 우리밀가루에 잘 섞어 고루 반죽한 다음 코펠에 올리브유를 살짝 발라 부쳐내면 야채전이 완성된다.

거창한 캠핑조리도구가 없이도 금방 완성되는 야채전은 아이들과 같이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요리를 만들고 남은 야채는 비닐팩에 잘 싸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코펠에 모두 담아 된장 한 숟가락 풀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캠핑이 끝나는 날까지 거의 식재료가 남지 않고 깔끔하게 먹거리를 즐기고 돌아갈 수 있다.

유교문화권인 경상북도 북부지방과는 달리 영양은 조금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곳과는 상대적으로 불교문화재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고, 신내림을 상징하는 일월산자락의 영험한 기운과 산간지역의 생활문화에서 많이 나타나는

무속신앙의 뿌리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양에는 절이 사라진 후 남은 여러 개의 탑들이 남아있는데 탑 주변 풍광의 느낌은 답사여행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봉감모전 오층석탑이 주는 느낌은 한 순간 마음을 빼앗는 압도적인 끌림이 있는 탑으로 다른 절터와는 전혀 색다른 풍광이 이색적이기까지 하다.

신선이 노닐다 갔을 법한 도교적인 색체가 어우러진 태극모양으로 휘어진 동산천 줄기를 따라 수려한 풍광 속에 우뚝 솟은 탑의 형세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우며 절터가 세워져 있던 곳이라 상상하기 힘든 장소에 호젓이 남아있는 모양새 또한 뜻밖의 감동을 선물해 준다.

월영교 일대 하회별신굿탈놀이 유교문화길 달빛여행

월영교 일대 하회별신굿탈놀이 유교문화길 달빛여행

월영교 일대 하회별신굿탈놀이 유교문화길 달빛여행

봄길 따라 찾아가는 고즈넉한 산사 청도 운문사

안동은 볼거리와 체험거리, 먹을거리를 고루 갖춘 고장이다.

특히 여름밤의 풍경은 월영교가 으뜸이다. 당신의 생각보다 아름다운,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일들이 펼쳐진다.

안동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린다. 우리나라의 유교 전통이 가장 짙게 묻어나는 까닭이다.

곳곳에 즐비한 종택과 고택이 그 상징처럼 자리한다. 다른 지역이라면 희귀한 흔적이겠지만 안동에서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유교문화라고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여길 이유도 없다. 그 또한 오랜 삶의 자취다.

월영교는 안동의 동쪽 낙동강을 가로지른다. 안동댐에서 멀지 않다.

주변으로는 안동민속박물관, 선성현객사, 전통문화체험장, 안동물문화관 등 볼거리가 많다.

헛제사밥과 간고등어를 맛볼 수 있는 맛집도 지척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 같은 전통 공연과 각종 체험도 이뤄진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동네다.

이 모든 공간을 걸어서 오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안동문화관광단지를 출발점 삼길 권한다.

단지 내 유교랜드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해질 무렵에 월영교 쪽으로 내려오는 여정이다.

월영교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안동문화관광단지다. 약 2.5km 거리다. 도보로 이동해도 30분이면 된다.

호텔 등 숙박시설과 공원을 갖춘 이곳의 중심은 유교문화를 스토리텔링화한 테마파크 유교랜드다.

타임터널을 지나 16세기 안동 대동마을로 거슬러 올라간 후, 여섯 곳의 선비체험관을 돌아보는 순으로 관람한다.

단순히 보는 전시에 머무는 게 아니라 놀이 형식의 체험을 통해 느끼고 배운다.

단지 내에는 전망대도 있다. 유교랜드는 물론, 안동댐과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다.

유교랜드에서는 도로를 따라 민속박물관 쪽으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권태호기념음악관을 지나 오른쪽 샛길도 추천할 만하다.

KBS 드라마 촬영장과 계남고택, 칠곡고택 등 1975년 안동댐 건설 당시 이전한 7채의 한옥으로 이뤄진 전통 리조트 ‘구름에’도 지난다.

그 아래쪽은 전통문화체험장을 지나 월영교로 이어진다.

초반부 오르막을 지나서는 줄곧 한옥들이 들고나는 산중이다.

전통문화체험장에 다다를 때 즈음이 해질녘이어도 좋다. 체험장의 초가와 기와집은 경사로에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그 너머로 낙동강이 흐르고, 맞은편 영남산 너머로 해지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사위를 붉게 물들이는 화려한 노을은 아니지만, 고택이 어우러진 언덕에서 하루를 갈무리하는 느낌이 색다르다.

전통문화체험장을 내려와서는 곧장 안동민속박물관 방면 개목나루터로 향한다. 저녁 7시에 시작되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보기 위함이다.

익히 알고 있는 하회탈의 주인공들이 안동 지역의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내는 신명과 환희의 한마당이다.

풍자와 해학에 속이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싹 가신다. 어슴푸레한 초저녁 강변의 남색 하늘이 배경처럼 어우러져 한층 운치 있다.

일정에 따라서는 유교랜드 대신 월영교 일대를 돌아본 후 화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기다려봄 직하다.

공연장 옆 개목나루에서는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황포돛배가 안동 보조댐까지 운행한다. 떡메치기 등 전통 체험도 이뤄진다.

봄길 따라 찾아가는 고즈넉한 산사 청도 운문사

봄길 따라 찾아가는 고즈넉한 산사 청도 운문사

봄길 따라 찾아가는 고즈넉한 산사 청도 운문사

아주 특별한 시간 한개마을

운문사는 5학년 2학기 2단원에 소개된 ‘고려문화의 발전’과 ‘불교문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매우 융성한 시기였으므로 그 시대의 건축 양식과 신라 말~고려 초에 걸친 운문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3월이 시작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엔가 4월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곧 봄기운을 잔뜩 머금은 봄꽃들이 저마다의 예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섬진강변의 매화마을에는 벌써 새하얀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꽃을 봐야만 꼭 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가에 삐죽 얼굴을 내민 풀 한 포기라든가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리고 호젓한 산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솔향. 그 기분 좋은 향내를 맡으며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라면 단연 운문사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구슬처럼 맑은 운문천의 물소리와 울창한 노송 숲이 매우 인상적인 사찰이다.

운문사가 위치한 경북 청도는 복숭아와 감, 소싸움,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최근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 경기가 가능하도록 국내 최초 자동 개폐식 돔형 경기장인 청도소싸움경기장을 개장해 매주 주말마다 흥겨운 축제마당을 펼치고 있다.

또 이곳은 물과 산, 인심이 맑아 예로부터 ‘삼청의 고장’으로 불리기기도 했다.

도불습유라고 해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이 아무리 욕심나는 것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절대 주워가지 않는 아름다운 풍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청도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인 운문사는 청도읍에서 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운문산(해발 1,188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명 호거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운문산은 재약산, 가지산, 신불산, 취서산 등과 함께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고봉 가운데 하나.

먼 옛날 원광국사가 화랑도의 신조인 세속오계를 지은 명산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서 깊은 운문산의 북쪽 기슭 햇볕 잘 드는 곳에 운문사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0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보양국사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살았던 승려이므로 이 같은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보양국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운문사 자리에다 사찰을 지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래 진흥왕 때 누군가에 의해 초창된 사찰이 폐허가 되었고, 그 자리에다 보양국사가 다시 중창을 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중창 당시의 사찰 이름은 작압사였다. 그 후 937년에 고려태조 왕건으로부터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작압사는 운문사로 불리게 되었다.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인 만큼 경내 전체가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정갈하고 깨끗하다.

나무 한 그 루, 풀 한포기,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까지 여승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2016년 현재 운문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인 스님은 대략 150여 명.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순하고 쾌활한 여승들이 엄격한 계율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사찰의 참 모습을 보려면 해가 진 후 또는 해가 뜨기 전에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스님들의 바루공양에 참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선방에 머물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대해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방문길을 서둘러서 새벽 예불에 참여해 볼 일이다.

특히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은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그 청아함과 경건함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벽 예불은 일반적으로 4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 30분경에 끝난다.

6시부터는 아침 공양(식사)이 시작되는데, 일반 신도들에게도 공양간(식당)을 개방하고 있다.

이밖에도 운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수령이 500년에 이르는 처진 소나무다.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노거수는 줄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처져 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재미있는 것은 해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 나무 주위에다 막걸리 12말을 희석해 뿌리는 일이다.

물도 아닌 막걸리를 뿌리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그 유래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인 만큼 운문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라 때 만들어진 구리 항아리인 동호를 비롯해서 비로전,

금당 앞 석등, 3층석탑,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사천왕석주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래 사찰이름에서 유래된 작은 전 각인 작압전과 대웅보전, 오백나한전, 만세루등과 같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다.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을 개설한 운문사는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경전연구기관으로써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시간 한개마을

아주 특별한 시간 한개마을

아주 특별한 시간 한개마을

닭 울음소리 들리는 약수로 끓여낸 청송 달기약수닭백숙

성주 한개마을은 600여 년의 역사와 함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처럼 요란스럽거나 북적이지 않아 좋다.

그 중 진사댁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고택 체험이 가능한 곳이고, 웰빙 시골밥상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진사댁은 한개마을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한개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감이 넘치는 곳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진사댁이다.

너른 앞마당과 철따라 고운 꽃이 피고 지는 화단, 우물과 장독대, 어느 하나 정감가지 않는 곳이 없다.

개인적으로 고택의 아름다움을 가늠하는 요소는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느냐’이다. 자연은 사람의 손이 닿거나 인위적인 요소가 더해지면

서서히 망가지지만, 집은 사람의 손길과 온기가 닿아야 제 모습을 당당히 유지하기 때문이다.

진사댁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사댁에는 팔순의 노부부와 함께 딸 이경민 씨가 머물고 있다.

진사댁의 역사는 조선 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채의 상량문으로 보아 정조 혹은 철종 때 건립한 가옥으로 추정하며, 건립 당시 안주인이 안동 예안 출신의 진성 이씨여서 예안댁으로 불렸다.

진사댁으로 불린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이국희가 집을 매입해 들어와 살면서 1894년 조선 왕조의 마지막 소과에 합격해 진사가 되자 진사댁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진사댁은 안채와 사랑채, 새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기와집이며, 사랑채와 새사랑채는 초가집이다.

안채 왼편으로는 ‘ㄱ’자 형의 새사랑채가 서 있고, 앞으로는 3칸의 사랑채가 넓은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

안채 앞에는 다양한 크기의 옹기들이 오붓하게 모여 있는 장독대와 우물, 넓은 화단이 남아 있다.

고택 가운데 눈여겨볼 것은 새사랑채다. 새사랑채는 진사댁 건물 가운데 가장 늦게 지어졌다.

여성의 공간인 안채와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사이에 새사랑채를 배치한 것도 특이하지만 마루와 방, 창고가 각각 1칸씩 총 3칸으로 ㄱ자 형태로 지어진 점

계자난간을 단 누마루 같은 마루를 낸 점이 이색적이다.

특히 방으로 들어가는 문 양쪽의 불발기창에 ‘卍’ 모양을 멋지게 내었는데, 다른 민가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문양이다.

진사댁은 한개마을의 수많은 고택 가운데 유일하게 고택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고택 체험은 사랑채와 새사랑채에서 가능하다.

새사랑채는 2명이 오붓하게 쓸 수 있는 1칸짜리 작은 방이지만, 마루가 있어서 별도의 공간을 공짜로 얻는 듯하다.

사랑채는 방 2개와 대청으로 이루어졌고, 너른 앞마당이 있어 가족 단위로 머무르기 좋다.

숙박료는 새사랑채가 하루 5만 원이며, 사랑채는 8만 원이다.

진사댁에서는 직접 담근 장과 손수 기른 채소를 재료로 한 웰빙 시골밥상을 맛볼 수 있다.

진사댁 종부 모녀가 차려주는 정성스러운 밥상을 지나친다면 아쉬움이 클 듯하다

진사댁에서는 해마다 겨울이면 메주를 만드느라 매우 분주하다.

올 겨울에도 직접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었는데, 경북 청도에서 들여온 콩 13가마니가 사용되었다.

메주 만드는 풍경을 보기 시작한 것은 콩이 거의 삶아질 무렵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아궁이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지고, 가마솥에서 5~6시간 동안 푹 삶은 콩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맛보라며 삶아낸 콩을 한 움큼 집어주는데, 그 고소함이 황홀할 정도다.

전통적인 조리법에는 규격화한 레시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저 오랜 경험에서 나온 자연스러움이 그 집만의 전통을 이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진사댁의 메주 만들기도 그렇다. 메주를 만드는 데는 콩의 품질, 콩을 삶는 시간과 불의 세기 등 여러 변수가 있다.

콩의 재배지가 어딘지에 따라 맛이 다르고, 콩을 삶는 시간과 불의 세기에 따라 메주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

집집마다 메주를 만드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닭 울음소리 들리는 약수로 끓여낸 청송 달기약수닭백숙

닭 울음소리 들리는 약수로 끓여낸 청송 달기약수닭백숙

닭 울음소리 들리는 약수로 끓여낸 청송 달기약수닭백숙

울릉도 걷기 여행 빼놓으면 섭섭해요

우리가 흔히 닭요리로 알고 있는 백숙(白熟)은 고기나 생선을 별도의 양념 없이 물에 끓여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닭을 넣으면 닭백숙, 생선을 넣으면 생선백숙이라 한다. 끓는 물에 삶아내는 돼지고기나 소고기 수육 역시 큰 의미에선 백숙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백숙에는 별도의 양념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물이 상당히 중요하다.

아니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송 달기약수닭백숙 맛의 비밀을 물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는 달기약수로 유명한 곳이다.

약수가 솟는 약수탕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부곡계곡 곳곳에 자리해 있다.

곳곳이라? 그렇다. 달기약수가 솟는 약수탕이 한두 곳이 아니다.

마을 입구 하탕에서 상류의 상탕에 이르는 700m 구간에 신탕, 중탕, 천탕 등 모두 5곳의 약수탕이 있다.

이것도 구간으로 구분했을 때 얘기지, 상탕에만도 약수 나오는 샘이 3곳이나 되고, 천탕의 경우도 2곳에서 약수가 솟는다. 그래서 약수가 나오는 샘으로 치면 그 숫자는 10곳이 넘는다.

이들 약수탕에서는 매일 일정량의 물이 나온다.

신기한 건 아무리 가물고 추워도 마르거나 얼어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에 감사하는 의미로 매년 단오에 영천제를 지낸다.

달기약수는 탄산과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단맛 빠진 사이다에 녹물을 섞어놓은 것’ 같은 맛을 낸다. 역하다면 역할 수도 있는 그 맛 때문에 설탕이나 꿀을 섞어 마시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곳 약수탕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건 예부터 위장병과 빈혈 그리고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약수를 떠가려는 이들을 위해 약수탕 주변 상가와 식당에서 물통을 판매하기도 한다.

달기약수는 약수가 나오는 위치에 따라 물맛과 성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상탕과 하탕이 탄산이 많은 데 비해 중탕은 철분이 많다고 한다. 수량은 하탕보다는 중탕과 상탕이 많은 편이다.

달기약수는 닭백숙과 만날 때 진가를 발휘한다. 닭과 약수의 만남. 솔직히 그리 특별할 건 없다.

하지만 이 둘의 만남은 다르다. ‘달기’라 불리는 약수 이름 때문이다. 달기약수가 발견된 건 조선시대 말.

금부도사를 지내고 낙향한 권성하라는 사람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수로 공사를 하던 중 발견했다고 전한다.

한데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발견 당시 바위틈에서 나는 ‘꼬르륵 꼬르륵’ 약수 솟는 소리가 마치 암탉이 알을 낳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달계’라 붙였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닭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어차피 둘 다 닭과 관계된 이름이니 말이다.

닭과 연관된 이름의 약수로 끓여낸 닭백숙. 게다가 약수에 포함된 철분 등의 성분이 닭 특유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맛까지 좋게 해준다.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지만 달기약수와 닭처럼 찰떡궁합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럼 달기약수닭백숙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누구는 영천제를 지낸 뒤 마을 주민들끼리 나눠 먹은 닭백숙이 그 시작이라 하고, 누구는 사위들에게 삶아 먹인 닭백숙이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졌다고도 한다.

그 시작이야 어찌되었든, 1970년대에는 닭백숙을 끓여 먹기 위해 계곡을 찾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 여관에 한동안 머물고 간 뒤로는 달기약수닭백숙을 두고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하니 그 유명세가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달기약수닭백숙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약수의 탄산과 철분 성분이 기름기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인삼과 황기 등 다양한 약재가 들어가 약선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노약자나 어린이, 임산부, 회복기 환자에게 더없이 좋은 보양식으로 통하는 이유다.

달기약수닭백숙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따로 없다. 그냥 그 고유의 맛을 즐기면 된다.

때문에 함께 나오는 밑반찬도 볶거나 기름을 두른 것보다는 마늘, 깻잎, 고추 등을 간장에 조린 깔끔한 맛의 장아찌류가 주를 이룬다.

닭백숙의 가격은 3만 원에서 3만 5,000원 선으로, 3~4명이 먹기에 적당하다.

이곳 식당들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있다. 바로 닭불고기다.

닭가슴살을 잘게 다져 매콤한 양념과 함께 버무려 석쇠에 구워내는 닭불고기는 닭백숙과는 또 다른 맛을 자랑한다.

떡갈비를 닮은 닭불고기는 식당에 따라 가슴살에 손질한 닭발을 함께 넣어 내기도 한다.

울릉도 걷기 여행 빼놓으면 섭섭해요

울릉도 걷기 여행 빼놓으면 섭섭해요

울릉도 걷기 여행 빼놓으면 섭섭해요

경북 영주 무섬마을 물 속에 안긴 선비의 섬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깊은 섬 울릉도를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면 ‘걷기’가 필수다.

빠듯한 일정에도 무리없이 울릉도 속살을 구경할 수 있는 걷기 명소를 준비했다.

앞서 성인봉~나리분지와 독도는 살펴봤으니 이들을 제외한 걷기에 나서보자.

울릉도민들이 다니던 내수전~석포옛길과 2012년 연도교로 연결된 관음도, 그리고 도동과 저동을 잇는 해안산책로가 주인공이다.

울릉도 일주도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저동부터 도동~남양~태하~천부~석포~섬목까지 이어지던 해안도로는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아갈 즈음 뚝 끊긴다.

섬목과 석포에서 처음 출발했던 내수전까지 길이 이어지지 않는 것.

직선으로는 2.5km쯤 되는 내수전과 석포를 차량으로 이동하면 2시간이 필요하게 된 이유다.

차량통행이 가능한 포장도로는 없지만 내수전~석포 구간을 잇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실제로 울릉도민들이 걸어 다니던 옛길이고 또 하나는 섬목과 저동을 잇는 물길이다.

하루 4~5회 정도 섬목과 저동을 오가는 페리가 다닌다.

차량선적도 가능해 배시간만 잘 맞추면 제법 유용하지만 겨울철에는 거의 운행을 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내수전~석포 옛길은 내수전전망대 초입에서 시작한다.

일출일몰 명소로 알려진 내수전전망대가 지척에 있다. 석포까지 3.4km. 차량을 가져와 왕복해도 7km정도니 그리 무리는 없다.

야생섬의 속살과 울릉도민들의 애환을 품은 부드러운 흙길이 펼쳐진다.

중간중간 오르막길이 있지만 남녀노소 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북면에 살던 울릉도 꼬마들이 울릉읍의 학교를 오갈 때 걷던 길이란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속 치고는 제법 너른 쉼터가 나온다. ‘정매화’라는 인정 많은 이가 살았던 정매화골이다.

1981년까지 이효영씨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폭설 등으로 조난당한 길손들을 구조했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있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잠시 쉬어가자.

울릉읍의 내수전에서 북면의 석포로 향하는 길, 이 둘의 경계와 닿자 주민들이 오가던 길임이 더욱 실감난다.

야생성이 묻어나는 북면으로 들어서자 관음도가 보인다.

석포마을 안내판을 따라가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의 ‘섬목가는 옛길’로 가야한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안용복 기념관과 닿는다. 안용복 기념관을 등에 두고 죽도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천부로 가는 버스가 선다. 힘들거나 버스 시간을 딱 맞췄다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천부로 가도 괜찮다.

오늘 종착점인 러일전쟁유적지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 한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석포일출일몰전망대, 라고도 부른다.

1905년 러일전쟁을 위해 일본해군이 망루를 설치했던 곳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2012년 울릉도 본섬과 잇는 연도교가 놓인 관음도. 섬의 새끼섬이자, 걸어서 갈 수 있다는 편의성 덕분에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울릉도 개척당시 풍랑에 휩쓸려 관음도에 닿은 이들이 잡아먹은 깍새의 맛을 잊지 못해 이 섬으로 깍새를 잡으러 왔다고 ‘깍새섬’이라고도 불린다.

총면적 약 70,000㎡에 높이 106m, 둘레 약 800m에 달하는 고즈넉한 섬이다.

울릉도 부속섬 중에서는 독도와 죽도의 뒤를 잇는 넘버3를 차지한다. 사람은 살지 않는다.

무인도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주기라도 하듯 관음도는 조용하다. 관음도에 입도하기 위해서는 매표를 해야 한다.

성인 4000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근사한 연도교가 기다리고 있다.

다리 밑으로 펼쳐진 바다색은 그동안 이 땅에서 보던 물빛과는 다르다. 북면의 해안도로를 따라 마주한 삼선암을 내려다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울릉도에 반해 하늘로 돌아갈 시간을 놓친 세 선녀가 벌을 받아 삼선암이 됐다는 전설도 들어보자.

끝까지 늑장을 부린 막내가 변했다는 삼선암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얘기에 웃음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