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쉼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쉼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쉼터

한곳에서 누리는 똑똑한 체험 여행 하내테마파크

경기도 화성은 넓은 면적만큼이나 여러 얼굴을 가졌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남짓이면 닿는 근교지만 눈부신 서해낙조를 만끽할 수 있는 섬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아기자기한 꽃 이름에 매료되는 우리꽃 식물원 산책은 물론이고 한가로이 소에게 건초를 나눠주는 목장체험까지.

요즘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사하는 숨은 보석 같은 가족여행지다.

신록의 계절 6월, 바닷길과 숲길 그 한가운데에서 화성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 나서보는 건 어떨까.

편안한 정원, 화성시 우리꽃 식물원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 한옥 형태의 유리 온실을 선보인 화성시 우리꽃 식물원은 신록이 우거지는 6월 화성 가족여행지로 손꼽을 만하다.

생태연못, 석림원 등 잘 가꿔진 초록(草綠)을 만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매표소에

휠체어가 구비되어 있는가하면, 곳곳에 유모차 진입로와 산책로도 이동이 편하게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자연을 배경으로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우리꽃 전시관을 지나 2층 출입구로 나가면 사계절관인 유리온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부에는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의 5대 명산바위를 배경으로 수목류 180여종과 초화류 4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야생화인 주걱비비추, 벌개미취, 섬초롱꽃 등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온실 한 켠에서 만나게 되는 독수리의 날갯짓은 비상하는 화성시를 표현한 것.

우리꽃 식물원은 반나절 이상 충분히 즐길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온실 왼편출구로 나와 숲속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 숲속체험관과 산책로 우리꽃길로 향한다.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과 함께하면 식물원 관람이 더욱 알차다.

1일 4회(10:30, 11:30, 13:30, 15:00) 운영되며, 홈페이지 혹은 전화예약이 가능하다.

전망대로 향하는 우리꽃길은 희귀식물 등산로다.

구불구불한 흙길과 나무계단길이 있는데, 흙길은 경사가 만만치 않아 유모차로 정상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계단 또한 가팔라서 아이들에게 “이제 거의 다 왔다!”, “조금만 힘내자”라는 격려의 말을 계속 해주어야 오를 수 있다.

하늘 아래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쉼터, 하내테마파크

하내테마파크는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어 줄 만한 공간이다.

하늘 아래 내일을 준비하는 쉼터라는 뜻만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10만 6,000㎡에 이르는 부지에 각종 체험과 박물관, 야외 정원과 식물원, 숲 산책로와 승마장 등 아이와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단, 체험을 위해서는 꼭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한다.

점토를 주물럭거리며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체험’이 아이들에게는 인기다.

하내테마파크 초입에 자리한 도예원에서 체험이 가능한데 꽃병, 컵, 화분, 연필꽂이 등을 취향에 맞게 만들고

나면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약 한 달 후 집에서 받아 볼 수 있다.

한곳에서 누리는 똑똑한 체험 여행 하내테마파크

한곳에서 누리는 똑똑한 체험 여행 하내테마파크

한곳에서 누리는 똑똑한 체험 여행 하내테마파크

가벼운 걸음으로 즐기는 광명시 종주산행

‘하늘 아래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쉼터’라는 뜻을 가진 하내테마파크는 잘 가꿔진 식물원과 야외 정원, 운치 있는 산책로와 전시관, 박물관 등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다양한 체험 공간이 함께 있어 가족과 추억을 만들며 알찬 하루를 보내기에 그만이다.

정원과 숲을 걸으며 즐기는 자연체험

하내테마파크는 수도권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는 경기도 화성 궁평항과 제부도로 가는 길목에 있다.

작은 주차장이 있는 입구가 요란스럽지 않아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들이라면 무심히 스쳐가기 십상인 곳이다.

하지만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만나는 하내테마파크는 10만 6,000㎡에 이르는 부지 구석구석을 알차게 꾸며놓은 매력 만점의 공간이다.

야외 정원과 식물원, 숲 산책로와 승마장, 서바이벌 게임장을 비롯해 박물관 3곳과 체험공방이 자리하고

연수원 시설을 갖춘 숙박동과 레스토랑, 야외 수영장도 갖췄다. 꼼꼼하게 즐긴다면 하루가 꽉 차는 나들이 공간이다.

하내테마파크의 중심은 맷돌과 석장승 등 크고 작은 석물들로 꾸며진 야외 정원과 식물원이다.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원예종과 관엽들, 분재들로 가득 찬 식물원 3동, 인공 계곡을 따라 조성된 야생화 정원이 환하게 반겨주는 곳이다.

제라늄, 임파첸스 등 온도만 맞으면 사계절 꽃을 보여주는 화초들과 시원하게 뻗은 이파리가 싱그러움을 뽐내는 관엽식물들이 걸음을 붙든다.

다양한 크기의 소사나무 분재와 야생화 분재 들이 단아한 미모를 자랑하는 야생화원도 볼 만하다.

하나로 이어진 3동의 식물원을 빠져나오면 익살맞은 표정의 사람 얼굴 도자기 인형들이 언덕 위에 도열해 있는 야외 정원이다.

풍경이 있는 야생화와 조형정원’이라 이름 붙은 이곳은 수레바퀴와 석물들 사이에 사람 얼굴 모양의 도자기 인형 수십 개가 반긴다.

하내테마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쉬어 가기도 좋다.

마치 한 그루 나무인 양 정원을 지키고 있는 맷돌과 석물들, 언덕에 몸을 누인 커다란 수레바퀴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한참을 머무르게 되는 공간이다.

야외 정원은 호젓한 산책로로 이어진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난 길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1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며 숲의 기운을 느낀 뒤 식물원 앞 소금족탕으로 가자.

따뜻한 소금물에 발을 담그면 몸에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피로도 말끔히 가신다.

하내테마파크는 다양한 공예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일에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단체 체험이 주로 이루어지지만

주말과 공휴일에는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자유롭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나무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는 서각체험, 아로마 향초와 비누 만들기 체험, 비즈공예체험, 도예체험 등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체험이다.

전문가 선생님들로부터 기초적인 교육을 받고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로 만족도가 높다.

각 프로그램마다 별도의 체험공간이 있고 만들 수 있는 샘플들이 전시되어 있어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벼운 걸음으로 즐기는 광명시 종주산행

가벼운 걸음으로 즐기는 광명시 종주산행

가벼운 걸음으로 즐기는 광명시 종주산행

광명시장 맛기행 시장은 맛있다

광명시에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길쭉한 산길이 있다.

도덕산을 시작으로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까지 이어지는 광명시 종주길이다. 모두가 고도 200m를 웃도는 낮은 산이다.

약간의 오르막이 아주 가끔 나오는 산책로 같기도 하지만,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숲의 면모는 또 그대로 등산로이다.

산길을 걷고 싶은데 높은 산은 부담스러운 날, 광명시에 걸쳐 있는 낮은 산들을 따라가는 종주길로 향해본다.

도덕산 정상에 있는 도덕정은 광명8경 중 첫 번째로 그 이름을 올렸다.

해발고도 183.1m로 무척 낮은 동네 뒷산이지만, 예부터 과거를 보러 도성으로 향하던 선비들이 머물며 도와 덕을 이야기하던 곳이라 전해진다.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지만, 어느 쪽에서 오르더라도 30여 분이면 정상에 도달한다.

그 부근에 자리한 도덕산공원은 주민들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준다.

인공폭포와 분수, 야외무대와 잔디광장, 야생화단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때마다 시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정상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예쁘게 잘 지어진 도덕정이 나온다.

낮다고는 해도 도덕정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이 멋스럽기만 하다. 멀리 관악산 정상까지 바라보인다.

도덕산에서 내려와 구름산으로 향하는 길에 구름산터널이 있다.

그 옆은 음식문화특화거리가 조성된 밤일마을이다.

이곳에는 양식, 한식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들이 자리한다.

몇 곳은 이미 맛집으로 인정받아 소문 듣고 찾아오는 이가 여럿이다.

서독산 자락까지의 일정을 생각했다면 도덕산을 내려와 밤일마을에서 식사를 즐기면 좋다.

밤일마을 옆 동네인 안터마을에는 자생초화원과 생태적 수질정화미디어, 생태숲 등이 들어선 안터생태공원이 있다.

구름산은 광명시 중앙부에 위치하며, 높이 237m로 광명시에 있는 산들 가운데 가장 높다.

옛 지명인 아방리에 있는 산이라 하여 아방봉이라 불렸지만, 조선 후기부터 구름까지 솟은 산이라 구름산 또는 운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구름산도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정비되어 있다. 코스에 따라 길게는 8km, 짧게는 1km로 다양한 구간을 걸을 수 있다.

밤일마을을 지나 구름산 정상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은 2km 정도다.

이름처럼 구름에 닿을 만큼 높은 산은 아니지만 구름산의 숲은 매우 아늑하다.

2013년 삼림욕장 환경숲으로 조성된 이후 더욱 울창해졌다.

정상으로 향할수록 도로 위 차량들의 소음이 점차 줄어들고, 우거진 숲이 어느 고지대의 풍경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길이 험하지 않아 조용하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구름산의 매력이다.

편한 길 중간 중간 산은 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구간도 나온다.

아주 가파르거나 무척 위험한 길은 아니지만, 소복이 쌓인 낙엽과 입자가 고운 흙 위를 밟는 것은 늘 주의가 필요하다.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때마다 나무의자가 놓인 쉼터가 나온다.

낮은 산이라 쉬이 보고 시작한 길이라도 숨이 차오를 땐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다.

산 곳곳에는 약수터도 여럿 있다. 구름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7개나 되니 길에 따라 다른 약수터를 지나치지만, 모두가 수질검사를 통해 식수로 인증 받은 곳들이다.

안전하고 물맛이 한결같아서 아침이면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광명시장 맛기행 시장은 맛있다

광명시장 맛기행 시장은 맛있다

광명시장 맛기행 시장은 맛있다

손으로 만지고 들으며 느끼는 오감여행

역시 시장 골목은 왁자지껄 난장판이라야 제격이다. 이리저리 밀리고 부딪쳐도 짜증나지 않는다.

그렇게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음식들이 시장 골목에 즐비하다. 음식이 있어 시장은 살아 있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시장은 1970년 무렵 닷새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으로 출발했다.

초창기에는 현재의 모범약국 부근에서 크로앙스백화점 뒷골목을 지나 광명초등학교 후문 부근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주요 시장 골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통팔달로 뻗은 시장 골목이 서로 교차하는 가운데 점포 350여 개가 문을 열고 있으며, 노점까지 더하면 400여 개 점포가 성업 중인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광명시는 물론 서울 구로와 개봉동 등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광명시장을 찾고 있으니 시장의 규모도 규모지만 언제나 사람들이 모이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가족과 함께 맛보는 나들이 음식

광명시장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싸고 맛 좋은 음식들을 정감 넘치는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7호선 광명사거리역 10번 출구로 나와 좌회전한 뒤 조금만 걸어가면 왼쪽에 시장 입구가 보인다.

시장 골목 초입부터 먹을 것들이 사람을 반긴다. 매콤달콤한 닭강정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입맛도 유혹한다.

주말이면 등산객이나 나들이객들을 위해 아침부터 문을 연다.

골목 안으로 들어갈수록 먹을 것들이 더 많아진다. 찐빵, 만두, 도넛, 꽈배기 등을 파는 가게도 인기다.

꽈배기 3개에 1,000원. 찹쌀로 만든 꽈배기는 2개에 1,000원이다. 만두는 2개에 1,000원, 1인분(6개)에 2,500원이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꽈배기 하나 입에 물고 식구들 몫으로 한 봉지 담아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클로렐라 가루를 밀가루와 함께 반죽해서 빵을 만들고 야채와 패티를 넣어 만든 ‘클로렐라햄버거’도 특색 있다.

일반 햄버거 빵보다 쫄깃하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야채는 광명시장 안 채소가게에서 파는 것을 사다 쓴다.

날이 더우면 레몬에이드도 인기다. 얼음이 담긴 휴대용 컵이나 밀봉 지퍼백에 레몬을 직접 짜서 즙을 내고 레몬으로 만든 효소와 탄산음료를 넣어준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기는 이른바 ‘시장통닭’이 한 마리에 6,000원, 두 마리에 1만 1,000원 하는 집도 있다.

시장 골목 간판에 인천의 지명을 딴 수산물가게가 곳곳에 보인다. 매운탕거리를 담아놓은 쟁반에 게와 각종 생선이 그득 쌓였다.

당일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시장을 찾은 이날 가격은 한 쟁반에 1만 원이었다.

기름에 잰 김을 직접 구워 파는 가게도 몇 집 있다. 30년 된 방앗간에서는 아직도 기름을 짠다.

튀김, 어묵 등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먹거리들도 당연히 맛볼 수 있다.

영월에 유배된 단종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는 떡갈비가 ‘장릉떡갈비’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장릉’은 단종의 능 이름이다. 장릉떡갈비는 돼지고기에 과일과 야채 등을 넣고 반죽해 철판에서 굽는다.

원래는 짚불에 구워야 하는데 시장 안에서 짚불을 피울 수 없어 철판을 사용한다. 떡갈비 1장에 1,000원이다.

닭집 앞에서는 할머니 손님과 주인아주머니의 대화가 짧게 오간다. 흔히 있는 가격 흥정도 없다. 아마도 단골인가 보다.

“닭 한 마리 줘유.” “뭐 하실 꺼?” “닭도리탕.” “5,000원짜리 드릴까?” “그려.”

5,000원짜리 닭 한 마리가 맛있는 닭볶음탕으로 저녁 밥상에 올라 온 가족이 즐거운 저녁시간을 만들어줄 것이다.

사는 사람, 파는 사람이 모이는 시장 골목에서 먹을 게 빠지면 심심하다.

손으로 만지고 들으며 느끼는 오감여행

손으로 만지고 들으며 느끼는 오감여행

손으로 만지고 들으며 느끼는 오감여행

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조선시대 관요의 고장인 경기도 광주는 신록에 물들고, 봄빛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곳이다.

꽃과 나무, 물과 흙의 노래가 들리는 곳이다. 수도권 시민들의 상수원이 있는 탓에 오랜 시간 개발이 제한된 덕분이다.

최근에는 곤지암 화담숲이란 걸출한 수목원까지 가세해 풍경이 더 푸르러졌다.

훌쩍 떠나 편안하게 둘러보기 좋은 곳, 광주로 떠난다.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곤지암도자공원

광주는 조선시대 관요가 있던 곳이다.

이런 관요의 맥을 잇기 위해 조성한 곳이 곤지암도자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경기도자박물관과 함께 도자교육체험시설 등이 녹지와 잘 어우러져 있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 지척에 있어 접근이 용이한 것도 장점.

장애인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고, 공원 곳곳에 5곳의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녹지로는 오르막 구간이 많고 곳곳에 턱이 있어 접근이 어렵지만, 공원 내 건물 대부분엔 경사로가 설치돼 이용에 불편이 적다.

다만 분수대 주위 ‘모자이크 공원’은 바닥 표면이 단차 없이 굴국으로 경사져 있다.

먼저 둘러볼 곳은 경기도자박물관이다.

1층에 있는 도자문화실에서는 도자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고, 2층 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도자와 현대 도자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건물 앞 도로변에 있는 장애인 비상벨도 눈에 띄는 편의시설이다.

그곳 어귀쯤에서 분수대 아래 풍경을 조망하는 맛도 괜찮다.

좀 더 흥미로운 즐길 거리를 찾는다면 박물관 앞에 있는 Clay Play 교육체험교실이나 전통공예원을 찾자.

Clay Play에서는 완성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고, 전통공예원 내 자빈도예공방에서는 물레체험을 즐길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박물관 뒤편에 있는 한국정원(경사로 설치)에도 들러볼 일.

연못과 정자와 신록이 어우러진 풍경에 마음이 한 박자 쉬어 간다.

꽃과 나무와 새와 물을 수월하게 만나는, 곤지암 화담숲

곤지암 화담숲은 도자공원에서 10여분쯤 거리에 있다.

계절의 황홀을 어디보다 찬란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5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이맘때가 특히 아름답다.

숲의 규모도 135만5,000㎡(41만 평)로 큰 편이고, 큰 공간을 풍성하게 만드는 테마원도 20여 개에 달해 눈이 호강한다.

곳곳에 물이 흐르는 계곡과 연못이 있고, 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약속의 다리’와 전망대 같은 조망대도 있어

푸른 바람을 쐬며 일상의 먼지를 털기에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무장애 시설이 무난한 것이 눈에 띄는 장점이다.

하지만 주차시설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모아미술관 옆으로 3곳의 장애인 주차장이 있는데, 지대가 높고 경사진데다 바닥이 울퉁불퉁해 이용이 불편하다.

매표소 앞 임시 주차장에서 하차하거나, 비교적 상황이 나은 2주차장을 이용하길 추천한다.

숲의 속살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곤지암 화담숲 내에 20여 개의 테마원을 두루 탐방할 수 있는 ‘숲속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5km가량 되는 길로,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가 걸린다.

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세계유산인 성곽에서 야경에 취하다 남한산성

집집마다 김치를 담가 먹듯 술을 빚어 먹던 때가 있었다.

손맛도, 물맛도 제각각이었을 테니 고개 하나 넘으면 술맛이 달라졌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가양주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술을 빚으려면 면허를 내고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34년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가 아예 없어져 집에서 빚은 모든 술이 밀주(密酒)가 되었고

1965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되자 쌀이 주원료인 전통주는 거의 맥이 끊긴다.

1990년 민속주 제조 허가와 함께 가까스로 몇 종류가 기사회생했는데, 이때 살아난 술이 잘 알려진 안동소주, 이강주, 문배주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주가 어디 이뿐이랴.

삼국시대 이래 역사상 전략적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는 조선 선조 때부터 빚어 먹었다는 ‘남한산성소주’가 400년째 이어져 내려온다.

그 맛과 향을 재현해 세상에 내보낸 사람은 경기도 광주의 강석필 옹이다.

남한산성에서 대대로 술을 빚어온 이종숙이라는 이가 술도가를 그만두면서 강석필 옹의 부친(1971년 작고)에게 비법을 전수했고

강석필 옹이 아버지에게 배운 제조법을 재현해 19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남한산성소주 제조기능)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 40도의 증류주다.

요즘 우리가 마시는 소주가 농축된 증류액에 물과 감미료, 향신료를 섞은 희석식 소주인 데 반해 전통 소주는 순수하게 곡물로 만들었다.

화학 성분이 섞이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높아도 숙취가 없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남한산성소주에는 쌀과 누룩, 물 이외에 독특한 재료가 한 가지 더 들어간다. 재래식으로 고은 조청이다.

조청이 독특한 맛과 그윽한 향을 더하고, 저장성도 높인다.

누룩을 빚을 때 한 번, 백미를 쪄서 식힌 지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밑술을 만들 때 또 한 번, 덧술을 빚을 때 한 번 더 들어간다.

이렇게 두 번 빚어 발효시킨 술은 맑게 떠내면 약주, 탁하게 걸러내면 탁주가 된다.

소주는 발효주인 약주나 탁주와 달리 증류 과정을 거친다.

전통적인 방법은 소줏고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액을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지피면 증발해 위로 올라가는데, 소줏고리 맨 위의 냉각수 그릇에 닿아 식으면서 이슬처럼 맺힌 원액을 받은 것이 소주다.

요즘은 소줏고리 대신 현대화된 기계를 쓰는데, 온도를 균일하게 맞추고 완벽한 진공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세계유산인 성곽에서 야경에 취하다 남한산성

세계유산인 성곽에서 야경에 취하다 남한산성

세계유산인 성곽에서 야경에 취하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왕은 백성을 버려도 요새는 남아 이 땅을 지킨다

세계유산인 남한산성은 야경 또한 탐스럽다.

산성 주변에 흩어진 유적 사이를 걸으며 숲과 성곽 둘레길이 선사하는 한낮의 여유를 만끽했다면,

해 질 무렵에는 산성에서 바라보는 야경에 취해본다.

남한산성 서문 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을 아우른 야경은 시대를 넘어서는 아득한 추억을 만들어낸다.

남한산성의 야경 감상은 선선한 바람과 고독이 함께한다.

한낮에 성곽을 채우던 산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산성 안은 오붓함이 동행하는 시간이다.

북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탐방 코스 역시 주말 낮이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해가 내려앉을 때쯤이면 가로등만 듬성듬성 켜진 한적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야경을 감상하는 최고의 포인트는 서문 성곽 위다.

행락객이 하산길에 나설 무렵, 북문을 거슬러 서문으로 오른다.

서문에서 조우하는 야경의 묘미는 옛 도읍이던 서울의 건물과 한강 변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옅은 어둠에서 벗어난 도시가 은은한 조명으로 뒤덮이는 시간을 알현하는 것이다.

청량산을 거슬러 오른 선선한 바람은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역사의 흔적이 담긴 남한산성에서 만나는 서울 야경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남한산성은 백제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 역할을 한 요충지였다.

조선 인조 때는 청나라가 침략하자, 왕이 이곳으로 피신해 47일 동안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성곽 위에 서면 마치 성루를 지키는 옛 병사가 된 듯 애틋한 마음이 든다.

남한산성은 광주, 하남, 성남시와 접한 공간에 있다.

서문에서는 서울 송파구를 중심으로 강남 일대와 멀리 하남시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서문 성곽 아래 전망대가 마련되었는데, 야경 감상은 성곽 위쪽이 한결 운치 있다.

다른 산에서 조망하는 야경과 달리 서문까지 큰길이 닦여 가족이 함께 산책하며 오붓하게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남한산성(사적 제 57호)은 국내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와 역사의 현장이다.

야간에는 일부 유적에만 조명이 들어오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려면 야경 감상 전 산성을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10여 년 복원 과정을 거쳐 문을 연 행궁(사적 제 480호)은 남한산성의 새로운 상징이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 밖으로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도 숙종과 영조, 정조 등이 능행 길에 머물렀다.

남한산성 행궁은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으로, 유사시에는 남한산성이 임시 수도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행궁 안에는 정문이자 ‘한강 남쪽 제일의 누각’이라는 의미가 있는 한남루 외에 내행전, 외행전, 이위정 등이 복원되었다.

행전에서는 무료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주말이면 아이들을 위한 책 만들기와 부채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행전을 둘러봤으면 본격적인 남한산성 낮 투어에 나설 차례다.

남한산성은 해발 500m 험준한 자연 지형을 따라 둘레 11.76km 성곽에 200여 개 문화재가 자연경관과 함께 흩어져 있다.

산성 탐방 코스 중 가장 수월하고 가족 여행객이 접근하기 쉬운 코스는 북문~서문~수어장대~남문을 둘러보는 코스다.

이곳에서는 성곽 안팎을 넘나들며 성곽 둘레길을 걸어보면 좋다.

성문 밖으로 잠시 나서면 솔숲이 상쾌한 휴식을 선물한다.

남한산성 왕은 백성을 버려도 요새는 남아 이 땅을 지킨다

남한산성 왕은 백성을 버려도 요새는 남아 이 땅을 지킨다

남한산성 왕은 백성을 버려도 요새는 남아 이 땅을 지킨다

휴일 오후 서울 근교 우리는 맛집으로 소풍 간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떠날 때는 늘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갔다.

평생 살아 온 이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면서.

서울의 역사가 궁금해진 날, 동남쪽 방향으로 떠나보자.

그 곳에는 삼국시대부터 한강이 흐르는 이 땅을 지켜주었던 4대 요새 중 하나인 남한산성이 있다.

굳건한 돌담처럼 늘 백성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이 성에는 임금이 백성을 버린 치욕스러운 역사가 남아있다.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남한산성에 올라 성벽길을 천천히 따라 걸으며 이 땅의 긴 역사,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되새겨보자.

남한산성은 인조 대에 완성되긴 했지만 이미 삼국시대부터 요충지로 여겨진 곳이다.

안쪽은 평평하고 얕은 반면 바깥쪽은 높고 험해서 외부에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고, 야간습격도 어려운 지형덕분이었다.

그러니 한양 근처에서는 가장 안전한 피신처라 할 수 있었다.

왕이 임시로 지낼 수 있는 행궁까지 있어 마치 작은 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선 인조 14년(1637)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10만 대군에 밀린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조선 왕실은 남한산성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치열하게 청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냥 산성 안에서 버티다가 40여일 만에 항복한다.(삼전도의 굴욕,1650)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과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고, 화친의 조건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포함한

주전파 군신들을 비롯해 50만 명의 부녀자가 볼모로 잡혀가 훗날 그 일부만이 되돌아왔다.

9km에 이르는 성채의 정상에는 왕실수호의 의지를 담은 수어장대(守御將臺)를 세우고

성안에는 행궁과 관청은 물론 연무관(演武館)과 각종 무기고를 설치하고, 비상시 용수로 사용할 3개의 연못까지 파놓았다.

그 밖에 성안에는 1천 여호에 달하는 도읍을 형성해 산성의 일상적인 관리를 하며 서울 동부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면모는 일제가 성안의 기구를 광주와 하남으로 분리해 이주시키기까지 3백년 가깝게 이어져 왔다.

따라서 남한산성은 북쪽의 개성(開城)과 서쪽의 강화성(江華城), 남쪽의 수원성(水原城)과 더불어

서울 동쪽을 담당한 요새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산성 중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25 전란 등으로 다소 훼손되기도 했지만, 제5공화국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차례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일찍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거의 완벽한 모습을 되찾고 있다.

성벽에 올라서면 가파른 산 아래로 치욕적인 화친을 맺은 송파구 삼전동 일대와 유유히 흐르는 탄천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이고

멀리 굽이쳐 흐르는 한강을 따라 남산과 63빌딩 사이로 한강하구가 아득하게 이어지며 서울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역에서 성안까지 마을버스가 이어져 접근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성책을 따라 걷는 길이 부담 없이 완만해 한나절 나들이 길로 더할 나위 없다.

해발 400m에 이르는 산성마을은 사방이 성책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산 아래와 비교해 기온차가 3~4도까지 내려가기도 해, 선들선들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상쾌하다.

복정역 사거리에서 남한산성역 삼거리를 거쳐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성안을 관통해 광주~ 하남 간 산업도로와 이어져 승용차로는 멋진 나들이코스를 엮어내고

마을버스로 올라 수어장대를 거쳐 송파구 오금동과 강동구 천호동으로 내려서는 산행길은 1시간대로 크게 무리가 없다.

휴일 오후 서울 근교 우리는 맛집으로 소풍 간다

휴일 오후 서울 근교 우리는 맛집으로 소풍 간다

휴일 오후 서울 근교 우리는 맛집으로 소풍 간다

구리 동구릉에서 만나는 조선 왕릉의 역사

어디론가 떠나기엔 이미 늦어버린 휴일 오후. 어디 소풍이라도 나서볼까? 도시락도 필요 없다.

한끼 식사와 소풍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맛집으로 떠나보자.

팔당대교 쪽으로 드라이브 코스를 잡으면 갈 수 있는 식당들이다. 식당으로 떠나는 소풍길에 강과 호수의 풍광이 함께한다.

점심시간. 식당 앞 주차장이 이미 꽉 찼다. 주차관리원이 안내하는 50m 위쪽의 주차장도 운이 좋아야 자리가 난다.

이도 저도 아니면 다시 250여 m 아래까지 거꾸로 내려가 길가에 주차를 해야 한다.

겨우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가면, 이제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합니다.” 식당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대기표를 받고 돌아서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러면서까지 먹어야 돼?” 그러나 식당 건물에 가려져 있던 안쪽의 야외 공간을 만나게 되면 주차하느라 애먹었던 일도, 기다리는 동안의 짜증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팔당호반에 자리한 묵요리 전문점 ‘강마을다람쥐’는 음식 먹기 전 눈이 호사를 누리고 마음이 먼저 불러온다.

식당 안쪽에 널따랗게 자리 잡은 정원 때문이다.

식후경(食後景)이 아닌 식전경(食前景)으로 한 시간의 기다림이 여유롭게 흘러간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을 감상하고 초록의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호수를 바라보면 허기마저 잠시 잊히고 만다.

정원 곳곳에 놓인 벤치와 파고라 아래서 한낮의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로 음식점이 아니라 공원에 온 듯하다.

정원 한가운데에 둥그렇게 만들어진 모닥불 가에도 손님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놓았다.

야외 공간뿐 아니라 하얀 대기실 건물도 카페처럼 운치 있게 꾸며놓았다.

밤이라면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원의 밤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2001년에 영업을 시작한 강마을다람쥐는 도토리를 주재료로 묵밥, 묵전병, 묵샐러드 등 묵요리를 낸다.

저칼로리 음식으로 가볍게 먹고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정원으로 나가 호반 가득 하늘을 담고 있는 팔당호의 풍경을 즐겨보자.

식당의 주메뉴는 묵요리가 아니라 꽃과 나무와 호수가 있는 정원이다.

1982년, 작은 초가집 한 채가 팔당호에 자리를 잡았다. 초가집에 어울리지 않지만 서울 대학로에서 쓰던 ‘봉쥬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한 칸짜리 초가집 옆에 오두막 한 채가 들어서고, 그 옆에 2층 통나무집이, 뒤편으로 번듯한 기와집이 세워졌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금씩 품을 넓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같은 느낌이다.

새벽 5시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심야 드라이브를 즐기는 데이트족 사이에 꽤 이름을 알린 식당이다.

도로변에 작은 간판 하나만 서 있을 뿐, 정작 식당은 좁은 길을 따라 호반 쪽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주말이면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지만, 일단 주차를 하고 나면 식당에 앉아 팔당호를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다.

고추장숯불구이부터 산채비빔밥, 항아리수제비 등 식사 메뉴도 있고 도토리묵, 파전 등 동동주와 곁들일 수 있는 안주 메뉴도 있다.

메뉴를 무엇으로 하건 통나무집 낮은 천장 아래서 먹는 운치와 호수의 바람을 맞으며 야외 테이블에서 즐기는 낭만이 함께한다.

작은 카페도 있어서 나무의자에 앉아 식사 대신 커피 한잔을 나누어도 좋다.

잘 꾸며놓은 식당의 야외 공간이 좋아 특별한 날을 맞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식당 앞을 지나가던 중앙선 철길이 사라지고 자전거 도로가 나면서 자연스럽게 산책로도 생겼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이 산책로는 팔당호를 가까이서 여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주차가 여유롭지는 않지만 식당을 그대로 지나쳐 호반 산책만 즐긴다 해도 뭐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리 동구릉에서 만나는 조선 왕릉의 역사

구리 동구릉에서 만나는 조선 왕릉의 역사

구리 동구릉에서 만나는 조선 왕릉의 역사

구리 숭릉 비밀의 능에 신록이 깃들다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왕조 500여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왕릉이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건원릉을 조성한 뒤 능이 하나씩 늘어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 수릉을 조성하면서 동구릉이 되었다.

동구릉은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4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성되다 보니 왕릉이 변하는 과정이나 문석인과 무석인, 병풍석과 혼유석 등 조형물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봉분 하나에 한 분을 모신 단릉,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합장릉, 봉분이 2기인 쌍릉, 정자각 하나를 중심으로 봉분이 다른 언덕에 있는 동원이강릉 등 형태도 다양하다.

건원릉과 휘릉, 혜릉은 단릉이고, 수릉은 합장릉, 원릉과 숭릉은 쌍릉, 현릉과 목릉은 동원이강릉이다.

경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봉분 3기가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이다.

먼저 동구릉역사문화관에 들러보자. 조선 왕릉과 동구릉에 대한 정보가 전시되었고, 조선 왕릉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역사문화관을 둘러보면 왕릉과 조선의 역사가 좀더 쉽게 다가온다.

역사문화관에서 나오면 동구릉의 유일한 합장릉이자, 추존 문조의 능인 수릉을 가장 먼저 만난다.

문조는 조선 23대 순조의 아들로 22세에 요절했다.

학문과 예술 분야에 재능이 뛰어나 효명세자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 이영(박보검 분)이 바로 효명세자다.

수릉에 이어 만나는 현릉은 조선 5대 문종과 현덕왕후가 잠든 동원이강릉이다.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첫 번째 능으로, 선대의 능보다 검소하다.

동구릉을 대표하는 능은 건원릉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의 능이고, 조선 왕릉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건원릉은 규모가 크고 조형물도 웅장하다.

봉분 위로 거칠게 자란 억새가 인상적인데,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를 모신 동원이강릉이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목릉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요?”라고 물었는데, 한 사람이 “동원삼강릉이오”라고 해서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고 한다.

동원이강릉은 다를 이(異)에 언덕 강(崗) 자를 써서 정자각을 중심으로 다른 언덕에 조성된 능을 말하는데,

목릉이 세 언덕에 봉분이 있고 다를 이(異) 자를 두 이(二)로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생긴 일화다.

건원릉 왼쪽으로 휘릉을 지나 원릉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가 잠든 곳이다.

원래 17대 효종의 능이 있던 자리인데, 석물에 틈이 생겨 여주 영릉으로 옮기면서 원릉으로 조성했다.

원릉에서 나오면 삼연릉인 경릉, 단릉인 혜릉, 쌍릉으로 조성된 숭릉이 차례로 이어진다.

동구릉에 잠든 왕과 왕비들은 조선 최고의 위치에서 나라를 좌지우지했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지극한 사랑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살아서는 뜻대로 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죽어서는 그러지 못했다.

건원릉의 태조는 계비 신덕왕후 곁에 묻히길 원했으나 건원릉에 홀로 남았고, 영조 또한 정비 정성왕후가 있는 홍릉에 묻히길 원했지만 계비 정순왕후와 함께 원릉에 잠들었다.

가장 행복한 왕을 꼽으라면 헌종이 아닐까 싶다. 정비 효현황후, 계비 효정황후와 나란히 경릉에 잠들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