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사임당 빛의 일기 강릉 오죽헌과 선교장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배우 이영애가 기나긴 침묵을 깨고 지난 1월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 이후 13년 만이다. 그녀의 반가운 귀환을 알린 작품은 <사임당 빛의 일기>.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사실과 픽션이 교차하는 퓨전사극이다.

극중 이영애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과 조선시대 사임당 1인 2역을 연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현모양처로만 알고 있는 사임당을 재해석하여 예술혼에 불타는 ‘천재화가’이자 이겸(송승헌 분)과 첫사랑에 빠지는 ‘여자’ 사임당을 동시에 그려내는 중이다.

또 하나의 대작이 탄생한 곳, 강릉 오죽헌(이하 오죽헌)과 강릉 선교장(이하 선교장)을 찾았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한국미술사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수진방일기(드라마 상 허구로 설정된 책)>를 입수하면서 시작한다.

<수진방일기>는 신사임당의 일기로 추정된다. 서지윤은 이를 해독하던 중 사임당과 이겸(드라마 상 허구의 인물)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오죽헌으로 향한다.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이자 사임당의 외가이다. 흔히 경내에 자리한 별당, 안채와 바깥채,

문성사, 어제각을 합하여 오죽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율곡이 태어난 별당을 말한다.

오죽헌은 뜰에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유독 많다 하여 이름 붙었다.

율곡이 태어난 방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질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용꿈을 꾸었기 때문에 몽룡실이라 불린다. 현재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졌다.

오죽헌은 현존하는 주거용 주택 중 비교적 오래된 축에 속한다.

간결한 형식으로 지어져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어떻게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의 존재 덕분이다. 율곡은 여덟 살 때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팔세부시(八歲賦時)’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다.

열세 살 때 치른 진사시 초시를 시작으로 스물아홉 살 때 치른 문과에 이르기까지 아홉 번의 과거시험에서

모두 다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능히 조선 최고의 천재라 불릴 만하다.

오죽헌 왼편 건물은 문성사다. 율곡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인조가 율곡에게 내린 시호(학덕 높은 선비가 죽은 뒤 임금으로부터 받은 이름)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건립했다.

오죽헌 왼쪽 통로를 통해 안채와 바깥채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택의 고즈넉함을 느껴 볼 수 있다.

바깥채는 오죽헌 정화사업 당시 오죽헌과 더불어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은 고마운 존재이다.

툇마루 기둥에 걸린 주련(기둥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라 하니 그 가치가 각별하다.

어제각에는 율곡이 어릴 때 사용했던 벼루와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격몽요결을 전시하고 있다.

뒤뜰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길이 있는데, 이겸(송승헌 분)이 고뇌에 잠긴 채 걷는 장면을 촬영한 길이다.

이겸은 사임당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인물이다. 도포를 멋지게 차려입은 이겸이 감정을 잡고 터벅터벅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솔내음 짙게 배어 있는 소나무길은 상쾌한 산책로로 제격이지만 아쉽게도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사주문 밖 율곡기념관에서는 사임당의 수묵화와 글씨, 율곡의 저서, 사임당의 그림을 살아 움직이듯이 표현한 디지털갤러리 등을 감상할 수 있으니 빼놓지 말자.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짧은 주말, 아이들에게 역사적으로 유익한 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수원과 화성을 1박 2일로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수원과 화성에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정조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조선후기의 걸출한 군주 정조가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자.

특히 수원화성은 그 아름다움과 규모 그리고 과학성으로 인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성곽건축기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곽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수원화성은 둘레가 약 5.7킬로미터에 성벽의 높이는 평균 5미터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다.

화성을 건축하는데 들어간 벽돌 수만 하더라도 거의 70만장에 육박한다.

한국전쟁당시 화성 성곽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자세한 건축과정이 기록되어 있어서 복구가 가능했다.

수원화성을 건축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정조시대의 대 학자 정약용 이다.

정약용 선생은 중국의 [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참고로 하여 거중기를 발명하였으며,

도르레를 이용한 거중기를 통해 성곽을 건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었다.

수원화성의 성문은 모두 네 개(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인데 그 중 정문에 해당하는 문은 장안문이다.

장안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그 크기와 아름다움이 국보 제 1호인 숭례문과 비교되기도 한다.

장안문은 철통 방어시설인 옹성을 갖추고 있는데, 성문을 항아리 모양으로 한 겹 더 에워 싼

성벽을 의미하는 옹성은 화공 등의 공격에 대비하기위한 매우 훌륭한 방어시설이다.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 구실을 했던 이유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살피러 행차를 할 때 한양에서 수원화성으로 들어서는 가장 첫 번째 입구이기 때문이었다.

장안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화홍문을 만날 수 있다.

총 일곱 개의 수문 위에 세운 누각인데 수문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꽃비를 뿌린 듯이 아름답다.

사시사철 너무나 아름다운 화홍문 주변은 늘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조선 제일 명당인 융릉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융릉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이었다.

정조는 그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 성을 쌓고 집을 지을 돈과 이사비용까지 챙겨 사람들을 살게 하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의 수원화성이다.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에는 훗날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도 함께 묻혀있다.

융릉은 다른 능과는 좀 다르게 정자각과 능침이 이루는 축이 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비껴서 조성되어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효심 깊은 정조가 아버지의 능을 조성할 때 뒤주에 갇혀 돌아가실 때도 답답하셨을 것인데 정자각

바로 뒤에 능침을 조성한다면 얼마나 더 답답하시겠느냐 라는 말에 따른 것이라 한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산나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이다. 겨울철 잃었던 원기를 회복하고 다가올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산나물만한 것이 없다.

경기도 양평군은 친환경농업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용문산 일원은 산나물의 명산지로 소문이 자자하다.

용문사 입구 전통장터에서는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여행객들을 상대로 산나물이며 잡곡을 팔고 있다.

용문사로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친환경농업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용문사는 사찰 답사를 목적으로 한 여행객들이나 용문산 등산객들로 주중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절집 초입에는 무료로 운영되는 친환경농업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다.

박물관 앞뜰은 분수가 시원하게 솟아오르고 바람 시원한 산책로가 잘 갖춰진 공원이다.

박물관의 규모는 비록 작지만 용문사 답사나 용문산 등산에 앞서 미리 둘러보면 왜 양평군이 ‘친환경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1층은 갤러리 ‘미지’로 활용되고 2층에 양평역사실, 친환경농업실, 자연음식연구소, 무료다도체험장으로 쓰이는 누각인 용화대 등이 오밀조밀 들어찼다.

현재 갤러리에서는 ‘사찰의 후원 : 양평의 산나물축제와 함께하는 사찰음식의 향연’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6월 9일까지 이어진다. 전시회장 곳곳에 ‘사찰음식의 정의’, ‘발우공양의 정신’, ‘사찰음식의 특징’, ‘현재 한국 사찰에서 먹는 음식’

‘사찰의 천연조미료’, ‘계절별 대표 음식’ 등에 대해 설명해놓은 대형 패널이 걸려 있어 찬찬히 읽어두면 좋다.

‘사찰의 후원’ 전시회를 둘러보는 발걸음이 차분해진다. 도심 속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럴싸한 작품들은 없지만 벽면에 전시된 안내 패널, 기둥 옆에 놓인 발우

각종 다구가 놓인 선반 등을 하나하나 살펴볼 때마다 탑돌이를 하듯 발걸음이 느려진다.

특히 ‘발우공양의 정신’을 설명한 안내문 앞에서 한동안 발길이 머문다.

발우공양의 첫번째 정신은 평등사상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대중이 차별 없이 나눠 먹는다는 뜻이 담겼다.

둘째는 청결사상으로 자신이 먹을 만큼만 개인의 발우에 덜어 먹는다. 셋째는 절약사상.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고 그릇 씻은 청수까지 마시기에 음식물쓰레기를 전혀 남기지 않는다.

넷째는 음식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먹는 공동체사상. 마지막 다섯째는 복덕사상이다.

우주 만물의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자는 복덕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사찰 답사 시 가능하면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고 발우공양도 직접 경험하길 권해본다.

양평역사실로 들어서면 선사시대의 생활상부터 관람하게 된다.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에서 발굴된 유적을 토대로 선사시대의 주거생활, 수렵생활, 농경생활 등을 모형으로 재미나게 재현됐다.

이어서 ‘함왕혈’이 양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큰 나무와 큰 돌멩이들에 둘러싸인 땅바닥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파여 있다. 이것이 함왕혈이다.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 한과명장 김규흔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

한과는 우리의 전통 과자다. 손님을 대접하는 다과상이나 주안상은 물론, 생일과 혼례, 제사 등 의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은 음식이다.

찹쌀가루에 콩물과 술을 넣은 반죽을 삶아서 얇게 밀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다음 쌀 고물을 묻힌 유과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어 만드는 약과,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혹은 열매에 꿀을 넣고 조린 정과

녹말이나 송홧가루 등을 꿀로 반죽해 다식판에 찍어낸 다식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해방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고 양과자가 보편화되면서 한과는 명절이나 제사 때 필요한 음식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한과 만들기를 숙명으로 여기고, 한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인생의 과제로 여기는 이가 있다.

국가 지정 전통 한과 제조 기능 명인이자, 대한민국 한과명장 1호(약과 분야) 김규흔 씨다. 김규흔 명장에게 한과는 아련한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6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영덕의 바닷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과자는 언감생심이었다.

한과도 제사 때나 명절에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바삭하게 씹히는데다 달콤한 조청 맛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은 때 먹은 한과는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성인이 되어 제약 회사, 섬유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한과와 인연을 맺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 들어 살던 집 아주머니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처가가 한과 공장을 했다.

그 공장에서 일한 것이 한과에 인생을 거는 계기가 되었다.

2년 남짓 한과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물일곱 살 때 월계동 시장 골목에 조그만 한과 공장을 차렸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한과는 주로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경동시장 등에서 도매로 거래되었다.

거래처가 없는 상황에서 동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성실과 실력을 무기로 거래처를 뚫으려 해도 제작원가부터 경쟁이 되지 않았다.

다른 공장은 밀가루 100포와 엿 100통을 도매가로 구입할 때, 김규흔 명장은 밀가루 5포와 엿 1~2통을 소매가로 사서 한과를 만들었다.

장사도 안 되고 재료비도 비싸서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유년 시절 먹은 한과의 달콤함을 기억하기에 ‘세 살 입맛이 평생 간다’고 믿었다.

맛있는 한과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컸다. 포기하지 않고 거래처를 찾아다니는 한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한과 개발에 힘썼다.

한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난감했다.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발로 뛰며 배웠다.

맛있다는 한과를 먹어보고, 잘 만든다는 공장에서 비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당시 약과의 모양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옛날 방식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한과를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연꽃 모양과 마름모꼴 약과를 만들었다.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다른 업체가 모방하면 다시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조안면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경기도 남양주시는 물의 고장이자 조선후기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남양주 물의 정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의 시작을 알리고 다산의 생가와 무덤이 나란히 자리한 다산유적지를 지나 서울로 향한다.

남양주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흐르는 강물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한강 제1경(두물경)을 이루고

다산유적지를 통해 면면히 전해지는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은 생각하는 인문여행지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다산의 뜻을 새기는 여행. 바로 ‘다(산)정(약용) 마을 한강제일경 인문여행’이다.

200년 전 조선 최고의 학자가 거닐었던 발자취를 따라 그가 꿈꾸던 나라를 생각하며 걸어보자.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걸어서 10분. 물의정원은 이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물길 따라 자라난 풀나무와 그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가 한가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금강산에서 출발한 북한강이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두물머리에서 만나기 전 잠시 쉬어가는 곳.

해마다 6월이면 붉은 양귀비꽃이 가득 피어난다는 물향기길에는 꽃철 지난 가을에도 하트 모양 산책로를 따라 다정히 걷는 연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물의정원에 잠시 머물던 강물은 쉬엄쉬엄 다시 흘러 다산생태공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공원 이름이 다산인 것은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죽은 동네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

공원 곳곳에는 다산의 저서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있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기록한 《목민심서》, 조선 후기 제도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

우리 역사 최초의 형법 연구서인 《흠흠신서》까지 평생 백성의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추구했던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저서들이다.

긴 유배 생활 동안 집필한 책들을 완성한 곳이 이 근처 생가였으니, 다산도 강물이 빚어내는 한 폭 수채화 같은 풍광을 자주 찾지 않았을까.

글을 쓰느라 어지러워진 머리도 식히고, 뜻을 펼치지 못해 답답한 마음도 다스렸을 터.

지금은 팔당호의 풍부한 물과 여름이면 만발하는 연꽃단지가 더해져 그때보다 더욱 수려해졌을 것이다.

다산의 생가와 사당, 무덤 등이 자리 잡은 다산유적지도 그 시절 그 모습은 아니다.

1925년 ‘을축대홍수’가 이 지역을 덮친 후에 대부분 다시 지어졌다니까. 그래도 ‘여유당(與猶堂)’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생가는 옛날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후손들이 덧붙인 다산기념관과 다산문화관에선 위대한 학자이자 관료였던 다산의 삶과 사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다산유적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실학박물관에서는 성호 이익에서 시작되어 다산 정약용에 이르는 실학의 다양한 흐름이 한눈에,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다산생태공원을 휘감아 돈 강물은 팔당댐을 지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회귀의 길목에서 팔당역 조금 못 미처 남양주역사박물관과 만난다. 잠시 이곳에 들러 조선의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남양주의 역사를 살펴봐도 좋을 듯 하다.

아담한 사이즈에 아기자기한 유물을 갖춘 남양주역사박물관은 물의정원에서 출발해 다산유적지를 두루 살펴본 생태 인문여행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다.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구름 위에 텐트를 세우다 정선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매월 셋째 주 토요일, 경기도 양평의 작은 동네 문호리가 들썩거린다.

한 달에 한 번, 이 동네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문호리 강변을 따라 열리는 정겨운 장, ‘문호리 리버마켓’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장을 구경하려고 모여든다.

전국의 수많은 플리마켓 중 유독 더 주목받고 있는 문호리 리버마켓을 찾아가봤다.

벼르고 별렀다. 자칭 ‘플리마켓 마니아’로서 지난해 여름부터 문호리 리버마켓 소식을 접하고 방문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셋째 주 토요일, 일요일이라는 시간을 맞추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꼭 그때마다 다른 일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번 놓치면 다음 프리마켓 일정을 기다려야 하는 터라 더욱 간절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호리 리버마켓을 찾았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이미 제대로 입소문을 탔다. 리버마켓이 열리는 강변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그 인기를 증명한다.

차를 타고 갈 경우, 내비게이션에 ‘문호리 리버마켓’이나 ‘현대수상스키’ 또는 ‘서종수상스키’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찾아가면 된다.

찾아오는 이가 많아지면서 경의중앙선 양수역과 문호강변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되고 있다.

문호강변 인근에 다다르자 안내판이 보인다. 주차장 쪽은 이미 만원이다. 어렵사리 차를 세우고 문호리 리버마켓으로 향한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다양한 사람들이 리버마켓을 찾았다. 강변을 따라 하얀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린 시절 종합선물세트를 손에 들고 풀어보기 전 ‘어떤 것들이 들었을까’ 상상하던 그 설렘을 안고 리버마켓으로 들어간다.

소박한 천에 귀여운 병아리 그림과 함께 ‘문호리 리버마켓’이라는 글자가 앙증맞게 앉아 있다.

천에 함께 적힌 ‘만들고, 놀고, 꿈꾸고’라는 글자가 빛난다.

‘만들고, 놀고, 꿈꾸는’ 사람들이 셀러로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만나는 셀러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2014년 4월, 문호강변에서 ‘문호리 프리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다.

문호리에 정착한 지역민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됐다. 처음에 60여 셀러가 참여하다가 현재는 170여 셀러가 참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다.

처음보다 몸집이 커지고 판매 품목도 다양해졌지만, 손수 농사짓거나 만든 것들만 판매한다는 취지는 변함이 없다.

셀러 중 상당수가 양평 주민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으로, 기본 조건만 갖추면 누구든 셀러로 동참할 수 있다.

문호리 리버마켓 온라인 카페(www.rivermarket.kr)에 참여를 신청해서 통과되면 리버마켓 속 작은 마켓인 ‘병아리 마켓’에 참여할 수 있다.

리버마켓의 인기에 힘입어 병아리 마켓에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병아리 마켓에는 신예 셀러뿐 아니라, 리버마켓의 다른 셀러들도 참여한다. 리버마켓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여유롭게 리버마켓을 즐기고 싶다면 조금 일찍 찾아가도록 하자.

구름 위에 텐트를 세우다 정선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구름 위에 텐트를 세우다 정선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구름 위에 텐트를 세우다 정선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양양 낙산사 화마 이겨낸 해수관음의 성지

동강은 장장 65km, 강원도 첩첩산중을 휘감아 흐른다.

멍석을 깔고 누우면 멍석만 한 하늘이 보인다는 정선의 오지를 달려온 동강은 평창과 영월로 넘어가기 전 백운산 자락을 만난다.

절반쯤 달려와 만난 백운산이 힘에 부치는 듯, 그곳에서 몇 굽이 S라인을 연출하며 힘겹게 휘고 또 휘어 돈다.

동강이 힘겹게 그려낸 최고의 절경을 사이에 두고 백운산과 마주한 뒷골에 동강전망자연휴양림이 들어섰다.

해발 600m 동강전망자연휴양림에 둥지를 튼 오토캠핑장은 풍경 하나만큼은 가장 높은 계급장인 별 5개로도 부족하다.

눈앞에는 산이 너울너울 능선을 이루고, 발아래 강이 굽이굽이 산을 휘감아 흐른다.

강과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명품이지만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운해다.

백운산과 그 뒤로 겹겹이 서 있는 능선 사이로 넘실대는 운해가 말 그대로 장관을 이룬다.

발아래 구름바다가 펼쳐지면 마치 구름 위에 텐트를 친 듯 황홀하다.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는 전망대 옆으로 이어져 있는 데크 사이트다.

텐트 문만 열면 동강과 백운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 중 명당이다.

텐트 앞에 테이블을 펼치면 풍경만으로도 풍성한 식탁이 차려진다.

데크 사이트 옆에는 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강과 백운산이 그려내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스마트폰에는 한 컷에 담기 어려워 파노라마 기능으로 담아야 할 만큼 광활한 풍경이다.

사이트 위쪽에는 동강의 사행천을 형상화한 광장이 있다. 여럿이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30분 남짓 소요되는 산책로는 비교적 짧지만 산나물이 자라는 숲길을 지나 동강의 전망을 즐기며 가볍게 걷기에 좋다.

잘 다듬어진 길에 나뭇조각들을 깔아두어 걸음이 편안하고, 발을 옮길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도 즐겁다.

2013년 6월에 개장한 캠핑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산채밭에는 곰취, 곤드레, 취나물 등 각종 산나물이 한창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산나물을 채취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 방금 채취한 산나물로 캠핑 요리가 더 풍성해질 전망이다. 그와 함께 모노레일도 설치 중이다.

캠핑장은 48만 8,966㎡ 부지에 휴양림과 함께 조성되었다. 데크 사이트 18동과 일반 사이트 18동으로 이루어졌다.

동강의 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사이트가 부족할 만큼 인기가 높다.

현재 데크 사이트 10동을 더 늘리고 있으며, 추가로 사이트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데크의 크기는 4m×5.6m로 거실형 텐트가 올라가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샤워장과 화장실, 취사장을 완벽하게 갖췄으며 온수와 전기도 사용할 수 있다.

애견과 함께 입장할 수 있어 반려견이 있는 가족들에게 반가운 캠핑장이다.

모든 사이트는 현재 선착순으로 운영 중이며, 예약제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요금은 전기 사용료를 포함해 1박에 2만 원.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의 요리 테마는 강원도다. 이맘때 강원도에는 곤드레나물이 지천이다.

곤드레나물 한 봉지를 사다가 곤드레나물밥에 도전해보자. 담백하고 향긋한 곤드레나물밥은 뜻밖에도 요리하기가 쉽다.

싱싱한 곤드레나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들기름에 볶은 다음, 불려놓은 쌀에 얹어 밥을 짓고 양념장에 쓱쓱 비비면 끝.

양양 낙산사 화마 이겨낸 해수관음의 성지

양양 낙산사 화마 이겨낸 해수관음의 성지

양양 낙산사 화마 이겨낸 해수관음의 성지

꽃만큼 곱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방림별곡 평창사랑

신선이 노닐고 구름이 쉬어가는 곳, 강원도. 지난겨울 막바지에 너무 많은 눈구름이 쉬어갔다.

끝없이 내리는 눈은 자연재해가 되어 강원도에 큰 피해를 입혔다. 지난 2005년, 강풍을 타고 넘어온 산불이 낙산사를 덮쳤다.

아이러니하게도 4월 5일 식목일이었다. 산불로 인해 낙산사는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원통보전이 불타고,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동종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차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불심으로 다시 일어난 낙산사는 해수관음의 성지로서 면모가 여전하다.

통일신라 위기 때 나타난 관음보살

낙산사 창건 전, 당나라 유학을 중단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는 걱정이 많았다.

그는 당나라의 침입을 예감하고 있었고, 삼국통일에 반감을 품은 귀족의 반란 징후가 곳곳에 나타났으며, 문무왕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부적 단합이 중요하던 그때, 의상대사는 강원도 양양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관음보살은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보살이기에 의상대사는 바로 양양으로 향했다.

홍련암 아래 관음굴에서 21일 동안 기도한 그는 마침내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었다.

관음보살은 대나무가 쌍으로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리라고 전했다.

대나무가 돋아난 곳에 의상대사는 원통보전을 세웠다. 낙산사 전각 중 원통보전과 홍련암을 대표적 전각으로 꼽는 이유다.

낙산사 복원에는 국가유산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원통보전의 복원에는 양양에서 자란 소나무를 사용했다.

조선 초기 다포식 양식인 원통보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중앙 법당다운 안정감과 장엄한 기운을 지녔다.

원통보전에 다가설수록 색감은 생생해지고 단청의 화려함은 섬세해지는데,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다.

서까래만 봐도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원통보전 가까이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담장(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등 문화재가 모여 있다.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원통보전 내부에 있다.

고려 후반 전통 양식을 띤 이 불상은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온화한 표정, 가냘픈 손가락, 섬세한 옷 주름 등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원통보전 정면으로 칠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7층으로 높였다.

부분적으로 손상됐으나 탑 꼭대기에 있는 쇠붙이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기단부에서 투박한 겹연꽃 무늬를 볼 수 있다.

원통보전 담장은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와와 흙을 차례로 쌓고 곳곳에 원형 단면의 화강암을 넣었다.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으로 평가받는다.

담장 주위엔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대나무가 자란다.

홍예문에서 원통보전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여느 고찰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마치 세조가 다녀간 뒤 중수 직후의 모습이 지금 같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선명함과 생생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향하면 낙산사의 또 다른 매력이 기다린다. 해수관음상에서 의상대를 지나 홍련암에 이르는 구간이다.

꽃만큼 곱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방림별곡 평창사랑

꽃만큼 곱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방림별곡 평창사랑

꽃만큼 곱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방림별곡 평창사랑

따사로운 품격 있는 삼척 속으로

여행에서 사람을 빼고 나면 속 빈 강정이 되기 마련이다.

길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들풀과 바람에 실려오는 고소한 음식 내음도 좋지만, 삶을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는 사람만 하다고 할 수 없다.

강원도 평창군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믿는 이들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신들의 공간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관광두레 주민사업체가 있다.

내 손으로 구운 달콤한 쿠키 한 입, 방림별곡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창군 방림리 마을 어귀.

작은 카페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쉬게 하고 갈증을 풀어준다.

‘방림별곡’. 옛 스러움이 묻어나는 이름의 카페는 방림드림주민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마을 카페다.

대표도 직원도 모두 마을주민이다. 서로가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가족처럼 보인다.

손님들도 가족처럼 친근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화가애애한 풍경이다.

마을 사랑방으로 시작해서 5년이 지난 지금은 방림면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자 여행지로 우뚝 섰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구석 자리에 앉는다.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 내 공간이자 나만의 시간을 보장받을 아지트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카페를 들고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윗집 삼촌이 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랫동네 외숙이 다녀가신 것도 같다. 모두 한 동네 주민이라 식구처럼 살갑게 서로를 반긴다.

시골 사람들은 카페에서 무엇을 주문할까. 다방커피? 쌍화차? 예상 외로 특별한 커피가 인기다.

에스프레소에서 달달한 카라멜마끼야또는 기본. 커피 원두와 평창 메밀을 블렌딩한 메미리카노라는 이색 커피도 있다.

부드러운 커피에 단짝인 쿠키가 빠지면 섭섭하다.

쿠키 만들기는 조물조물 반죽하는 재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표체험이다 방림별곡에서는 쿠키 반죽에 평창 땅이 키운 메밀가루를 넣어 맛은 물론 건강까지 챙겼다.

쿠키용 반죽 두께는 5mm 정도가 적당하다. 반죽이 완성되면 귀여운 동물 모양 쿠키커터로 찍어 170℃로 예열한 오븐에서 15분 정도 구워내면 끝.

쿠키커터에는 평창의 대표 먹거리인 송어를 본뜬 모형도 있으니 잘 찾아 볼 것.

완성된 쿠키에 달콤함을 추가하고 싶다면 초코 펜을 이용해 예쁜 그림을 그려 넣으면 된다.

방림별곡에서 정성껏 구워낸 소금빵과 크루아상은 매일 아침 11시에 맛볼 수 있다.

방림별곡에서 쿠키 만들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 카페 앞 평창강 산책로도 반드시 걸어보자.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가장 늦게 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방림별곡을 나서려니 주인장이 한 곳을 가리킨다. 방림드림마켓이다.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판매하는 마켓이다.

사탕수수로 만든 종이 박스에 담은 고체치약이나 비건 성분으로 제작한 비누 등의 제품을 판매한다.

리필용 천연 세탁세제는 빈 용기에 필요한 만큼 담아갈 수 있다. 리필 비용은 100g에 500원이다.

천혜의 자연이 내어준 건강한 여행, 평창사랑

평창군 대화면 등용봉 자락의 해발 680m. 활짝 열린 파란 하늘 아래 넓은 사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따사로운 품격 있는 삼척 속으로

따사로운 품격 있는 삼척 속으로

따사로운 품격 있는 삼척 속으로

괴산과 올갱이 그리고 옛맛 담긴 뚝배기

쇠심줄 같던 잎맥에 힘이 빠졌나 보다. 나뭇잎이 벌써 바닥에 깔려 바스러지고 있다.

삼척 취재 중 가을 앓이가 도졌고, 온갖 잡생각이 끊이질 않고 머릿속을 헤집으니 걸음이 시시때때로 멈춘다.

나무, 바위에 꽂힌 시선은 쉬이 빠지지 않았고 미처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며 여정을 이어갔다.

삼척에는 온 국민이 알만한 인지도 높은 관광지가 드문 편이다.

삼척시의 관광지도를 펼치면 환선굴을 제외하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유명세를 타서 친숙한 관광지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가서 둘러보고 문화해설을 들어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고유의 향이 마음에 스며든다.

어느 곳, 어느 땅에 서더라도 그곳은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함이 있음을 일깨워준 삼척, 그 첫 목적지는 코스모스 꽃밭이다.

코스모스가 파도친다. 성격 급한 일부만 꽃을 피운 상태지만, 노랑, 분홍, 흰 코스모스가 파스텔 톤으로 살랑거리는 것이 장관이다.

눈길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산이 사방으로 솟아 있다. 고운 능선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하늘이 예쁘게 오려진 하늘색 종이 같다.

그 아래로 코스모스가 주인공처럼 무대를 장악한 모습이다.

한 주민의 텃밭으로 보이는 곳, 산 중턱에 너른 터 등 아기자기한 코스모스 꽃밭도 눈길을 끈다.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코스모스 축제장,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일대의 9월말 풍경이다.

얼마 후면 만발할 꽃 사이로 얼굴을 내민 사람들, 카메라 셔터 소리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좁은 수로를 따라 꽃밭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길을 걷다가 신발이 젖을 수 있으니 장화 또는 샌들을 준비하면 좋겠다.

사진을 찍으러 간다면 삼각대도 큰 도움이 된다.

왕의 코스모스 축제는 이번이 제1회, 첫선을 보이는 삼척의 야심 찬 작품이다.

굽이진 길을 따라 산속으로 꽤 들어와야 하는 내미로리 일대는 그야말로 깊은 산골마을.

이곳 주민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비옥한 땅임에도 노는 땅이 늘어가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삼척시가 나서서 코스모스를 활용한 축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외진 산골마을은 공기도 좋고 물도 맑아 참 좋다.

하지만 마을은 절반이 노인, 절반이 허름한 집이라 떠나는 길에 마음이 시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골에서 펼쳐지는 코스모스 축제가 더욱 반갑다. 마을 주민도 좋고 여행객도 좋은 이번 축제에 많은 기대를 해본다.

코스모스 꽃밭에 정신이 팔려 왜 축제이름에 ‘왕’이 들어가게 됐는지 뒤늦은 궁금증이 난다.

이를 해결해줄 다음 행선지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준경묘’이다.

주차장에서 약 1.8km를 걸어가야 한다. 초반에 깔딱 고개라고 불리는 오르막이 있는데, 경사가 이름값을 한다.

오르막 후 내리막 있다고 했던가. 준경묘 가는 길은 오르막 후 삼척 10경 중 한 경치가 펼쳐진다.

깔딱고개 정상에서 숨을 가다듬는다. 고개로 모이는 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흙길은 걷는 맛을 돋운다.

수림이 울창해 산림욕 효과가 좋을 듯하다.

숲내음에서 썩는 냄새가 미진하게 도는 것이 확실히 가을이다.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본 하늘은 언제 저렇게 높아졌는지 구름이 멀다.

여름이 두고 간 열기는 안간힘을 내며 눈 부신 햇살을 쏟는다. 베슬거리던 산바람도 조금 거칠게 산을 훑자 기다렸다는 듯 나뭇잎이 갈지자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