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 싱싱하고 맛있다

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 싱싱하고 맛있다

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 싱싱하고 맛있다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에는 맛있는 음식도 참 많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충무김밥부터 해산물이 한 상 가득 올라오는 회정식까지 손으로 다 꼽기조차 어렵다.

통영의 새로운 맛으로 뜨는 메뉴가 있다. 왕새우양식장에서 맛보는 새우요리다.

나폴리의 아름다운 해안을 걷다가 먹는 큼직한 왕새우요리가 제격이듯, 통영왕새우양식장에서 싱싱하고 담백한 맛의 왕새우요리를 만나보자.

바다의 귀족으로 대접받는 고급 왕새우는 수염이 길게 늘어졌다고 해서 바다의 어른이라고도 불린다.

바다에서도 인정받는 왕새우는 꽤 비싼 값을 치러야 먹을 수 있는 고급 해산물인데,

그 어느 곳보다 저렴하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약 3만 3천㎡ 규모의 새우양식장을 운영하는 통영왕새우양식장이 그곳이다.

주인장 전양택 씨는 한국새우양식협회 경남지회장을 맡고 있는데, 새우박사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새우를 돌본다고 한다.

마치 새우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봄에 새우 종묘를 생산하고 가을걷이, 겨울 수확까지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새우양식은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성질이 급하고 까다로운 새우는 바이러스에 약한 데다 토양의 미네랄을 먹고 살기 때문에 양식장 환경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식당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친환경 왕새우양식장은 두루미가 모여들 만큼 청정지역에 자리했다.

친환경 새우 유기 양식이라는 방식을 통해 청정지역 양식장에서 새우를 키우고 지하 200m에서

끌어올린 해수를 이용해 새우를 순치시키는 방법은 주인장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이다.

바다의 염도보다 싱겁고 깨끗한 지하 해수에서 하루 이틀 순치시킨 새우는 불순물과 잡냄새가 사라져 깔끔하고 쫀득한 맛이 살아난다.

8년 전부터는 국산 흰다리새우라는 일반 대하를 양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에 적합하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품종으로 육질이 탱탱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9월이 오면 왕새우의 계절이 시작된다. 7월 말부터 작은 새우가 잡히지만 역시 가을부터 겨울까지 잡히는 것이 살이 알차고 맛도 좋다.

1년 내내 즐길 수 있는 왕새우는 제철에 건져 올려 급속 냉동했다가 조리하기 때문에 언제 먹어도 신선한 맛에 변함이 없다.

왕새우요리 중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담백한 왕새우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소금구이다.

간단하면서 왕새우의 참맛을 살려주는 즉석 요리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프라이팬에 굵은 천일염을 1cm 이상 깔고 그 위에 싱싱한 왕새우를 굽는다.

소금을 먼저 달궈 수분을 없앤 뒤 새우를 얹어 몸 전체가 붉게 물들 때까지 뒤적이며 천천히 굽는다.

천일염에 구우면 새우의 비린내와 쓴맛이 빠지면서 소금간이 은근하게 배어 감칠맛이 좋아진다.

따끈하게 구워진 왕새우의 껍질을 벗겨내고 한입 먹어보면 속살 맛이 일품이다.

짭조름하게 간이 배어든 왕새우는 그냥 먹어도 쫀득하고, 매콤한 겨자 소스에 찍어 먹어도 개운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이곳에는 새우로 만드는 맛있는 요리가 다 있다.

누구나 좋아하는 바삭한 새우튀김과 새콤달콤한 새우탕수육, 고소한 새우해물파전, 새우죽, 새우볶음밥에 새우라면까지 새우 마니아들의 환호를 받을 만하다.

어린이 손님을 위해 새우살로 만든 수제 새우돈가스까지 새로운 메뉴로 등장했다니 새우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새우라면은 새우구이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큼 인기 있는 메뉴다.

새우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서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에 라면을 끓이는데, 스프로 맛을 내는 육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통영의 바다 향이 느껴질 만큼 시원하고 개운한 맛에 새우라면 한 냄비가 눈 깜짝할 새 비워진다.

양식장에서 잡는 왕새우를 식당에서 거의 다 소비한다니, 새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맛을 확인하러 가볼 만하다.

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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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탕 애주가 살리는 겨울 별미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겨울이 되면 거제도 어부의 통발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12월~3월 산란기를 맞아 심해에서 연안으로 올라온 ‘꼼치’ 또는 ‘물메기’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물메기는 ‘물텀벙’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생선이 잡히면 도로 바다에 던져져 “텀벙”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인데, 물메기탕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라면 이 속설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조라마을 포구, 바다와 나란히 횟집과 식당이 즐비하다.

제철인 물메기가 수족관에서 짧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축구 선수 종아리처럼 굵은 몸통과 메기처럼 넓은 입에서 대어의 풍모를 풍기지만, 눈은 어찌나 작은지

이 녀석은 배고프면 동족의 알을 먹기도 하는데, 아마 자기네 알인지 분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고 작은 카메라 화면으로 보니 꼭 올챙이 같다.

이 생선이 보여줄 맛이 궁금하다.

수족관에 살아있는 물메기를 넣은 집은 하나같이 ‘물메기탕’이 써진 종이를 입간판 주위에 최소 한 장은 붙여 놨다.

물메기는 4계절 내내 잡히는 어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집에 들어가 물메기탕을 주문했다.

거제도 하면 대구로 축제도 하는 곳이기에 주인장에게 물었다.

“대구탕하고 물메기탕 중에 어느 게 더 맛있어요?” “대구탕도 맛있고 물메기탕도 맛있지 우리 집 대구탕은 더 맛있고” 주인장 입담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결 편안해지면서 혼자 왔는가?, 어디서 왔는가? 연이어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흔쾌히 취재협조를 수락하신다.

수족관 유리에 발판을 붙이고 있던 녀석을 채로 건져내자 두 번 팔딱거리는데, 주인장 팔이 흔들릴 정도로 힘이 세다.

거제의 물메기탕은 김치나 고춧가루 없이 맑게 요리하기 때문에 물메기의 신선도가 중요하단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인 도마 위에 물메기를 얹고 손질을 시작한다.

머리와 몸통 사이에 칼집을 내고 순식간에 껍질을 벗기자 반투명하면서 뽀얀 살이 드러난다.

마치 젤리처럼 탱탱한 것이 살아있는 물메기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어서 머리를 자른 후 내장을 빼낸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물메기는 먹음직스런 4~5토막 탕거리로 바뀌어있다.

흐르는 물에 씻긴 후 미리 무를 넣어둔 끓는 육수에 넣는다.

물메기와 술의 관계가 알면 알수록 참 재밌다. 물메기의 살은 연하기 때문에 회로 먹기가 어렵다.

그래서 물메기를 반건조해 먹기도 하는데, 이게 술안주로 제격이란다.

물메기, 술맛 돋궈놓고 나중에 달래주기도 하는 ‘병 주고 약 주는’ 녀석이다.

일례로, 강원도에서는 물메기탕이 맛없다고 하면 “아직 술이 덜 취했구먼”이라고 한마디 듣는다고 한다.

약한 불에 끓고 있는 물메기탕과 경남 거제의 찬이 놓인 한상이 차려졌다.

물메기탕을 국자로 크게 한번 덜어낸 후, 지느러미와 뼈를 발라내니 하얗고 통통한 살이 먹음직스럽다.

젓가락으로 집어보지만 이내 부서지고 만다. 숟가락으로 건더기와 살점을 크게 떠서 한입 물었다.

조금은 생소한 식감과 맛이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딱히 인상적으로 남는 포인트가 없다.

비린 느낌도 전혀 없이 고추 몇 조각이 우려진 미미한 칼칼함이 뒷맛에 남는다.

왜 맑게 끓이는 지, 살아있는 신선한 생선을 고집하는지 알 것도 같다.

물메기 특유의 맛을 살리려면 양념을 최소화해야했던 것이다.

이어서 먹다 보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기 시작해 몸에 기분 좋은 온기가 돈다.

물메기탕이 시원한 맛으로 유명한 이유를 2접시 정도 비워보니 알 수 있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후릅 마시듯 먹는 사이에 냄비는 금방 허전하게 변했다.

먹는 양에 비해 포만감도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허전하게 남은 냄비의 국물은 허전한 것이 아니다.

국물에는 바스러진 물메기살과 특유의 풍미가 가득 고여 있다.

국물을 퍼서 밥과 말아 드시라. 조금 맛이 밋밋하다 싶으면 김치나 고춧가루를 넣으면 밥 두 그릇은 금방이다.

이런 시원한 맛이 매력임에도 물메기라는 생선과 물메기탕이란 음식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음식대열에 끼진 못한 듯하다.

얼마 전 예능 프로에서 ‘꼼치’라는 말을 출연자가 은연중에 내뱉는데,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생선인지 찾아보는 상황이 방송되기도 했다.

물메기 특유의 식감과 흐물거리는 살점이 일부 사람에겐 거부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본 기자도 어렸을 땐 국물은 좋아했지만, 살은 쉽게 먹지 못했다.

그럼 주위 어른이 “아직 어려서 맛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좋아하는 탕 중 하나다.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문학작품을 따라가는 감성기행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문학에 여행이, 여행에 문학이 곁들여지는 문학 여행. 문학과 여행은 유용한 삶의 통로라는 점에서 닮았다.

자연 속에서 문학을 이야기하고, 상상을 공유하고, 느낌을 간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다독여진다.

작가가 특정 지역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얻은 영감과 위안 자체가 책만큼 매혹적인 문학 여행을 떠나보자.

한국 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는 ‘토지’의 작가.

하동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 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동 평사리 여행 코스

고소성에서 시작해 최참판댁을 돌아보고 매암차문화박물관, 조씨고가, 문암송을 거쳐 악양들판에서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걷기여행은 좀 특별하기도, 평범하기도 하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처럼 온통 산길이나 들길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적한 길을 걸어 산에도 오르고, 차도 한 잔 마시고, 경치도 한 번 구경할 뿐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줄곧 악양들판이 길동무 한다는 점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만나는 악양들판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최참판댁에서 소설을 보고, 문암송에서 시를 읊고, 차박물관에서 은은한 차 향기를 맡는다. 차와 문학이 어우러진 여행길은 악양들판이 옆에 있어 더욱 빛난다.

‘깃발’ ‘일월’ 등으로 유명한 민족시인 청마 유치환. 한국 근대 시문학사에 생명을 소재로 가장 치열한 사상과 열정을 토해낸 시인이다.

통영 예술인 생가 투어

민족시인 유치환님의 기념공간인 청마문학관을 둘러보고 통영예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 다음으로 ‘꽃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춘수생가를 둘러보고 그의 빛나는 예술업적을 감상한다.

그리고 다음코스로는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남망산국제조각 공원은 바다와 육지가 조화된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한 예술품들과 자연경관의 조화를 감상한다.

한창 외로울때 동료 유강렬과 잠시 지냈던 이중섭이 기거하던 곳을 둘러서 우리민족고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 김상옥생가를 둘러보고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스민 곳으로 유명한 청마거리를 감상하시고,김약국의 딸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생가를 지나서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거리를 관람한다.

장편소설 ‘탁류’의 작가. 부조리에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자 군산을 무대로 식민지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수작이다.

군산 문학, 역사코스

군산에는 바다를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다. 군산시 문학.

역사여행코스는 하루만에 군산의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여행 코스이다.

여행의 시작은 군산의 상징 월명공원으며, 군산항의 세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옛군산세관을 거쳐, 바다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지난다.

이후로는 채만식문학관과 금강철새조망대를 거쳐 최호장군 유지를 마지막으로 문화역사여행을 마무리 된다.

우리나라 단편 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해마다 ‘메밀꽃 필무렵’ 효석 문화제로 칭하는 축제가 열린다.

강원도 자연, 문학 코스

첫날 일정은 휴양림에 도착하여 목공예 체험으로 시작하자.

목공예 체험은 손재주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핸드폰 고리와 같은 소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간단하다.

점심 후에는 염색체험을 하고 숲 해설을 들어보자. 이 곳은 여러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군데에서 천천히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코스다.

둘째 날의 일정은 여유롭게 시작한다. 숲체원에서 가볍게 산책한 뒤 봉평읍으로 향한다.

봉평원에는 허브나라 식물원이 있고 오후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내원야영장과 달궁야영장 어머니 품 지리산에 잠들다

한국전쟁 시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캠퍼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리산에 머무는 것을 꿈꾼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으로 흔히 어머니 산이라 불린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에서 뒹굴다 보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智異山). 이 한마디만으로도 지리산에 머물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은 취사와 숙영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지리산의 자연 속에서 내원야영장과 하룻밤을 보내려면 야영장을 이용하면 된다.

3개 도와 5개 시군, 15개 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은 모두 8개의 야영장을 갖추고 있다.

경남에는 산청군 내원야영장, 소막골야영장, 중산리야영장 그리고 함양군 백무동야영장이 있고, 전북에는 남원시 덕동야영장,

달궁야영장, 뱀사골야영장, 뱀사골자동차야영장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야영장 중 하나가 내원야영장이다.

내원야영장은 지리산 내원사 아래 둥지를 틀고 있다.

자동차 야영장 41면, 데크 시설 11면, 일반 야영장 53면 등 모두 105개 사이트를 갖추었다.

화장실, 취사장 등 모든 편의시설이 걸어서 2~3분 이내에 있어 아늑하고 편리하다.

일반 야영장은 주차장에서 리어카로 짐을 옮겨야 하지만, 주차장과 그리 멀지 않고 숲속에 자리해 자동차 사이트 못지않게 인기 있다.

전기 사용이 가능한 자동차 야영장과 데크 야영장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일반 야영장은 선착순이다.

내원야영장의 가장 큰 장점은 야영장 옆으로 흐르는 지리산 계곡이다.

지리산은 뱀사골, 피아골 등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름난 계곡을 포함해 30개의 계곡을 품고 있다.

내원골과 장단골에서 흘러와 내원사 앞으로 흐르는 내원사계곡은 지리산의 숨은 비경 중 하나다.

발이 훤히 내려다보일 만큼 물이 맑고, 한여름 더위도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다.

특히 야영장 바로 옆 계곡은 야트막하고 넓어 아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내원야영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샤워장이 없다는 것.

텐트 치며 흘린 땀은 시원한 계곡 바람이 금방 식혀주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계곡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내원야영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내원사는 신라 말기에 창건되었고,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계곡 물소리가 아름다운 절이다.

남명기념관과 덕천서원은 자동차로 10분 거리, 남사예담촌은 30분 거리, 배달민족의 성전으로 불리는 삼성궁은 40분이면 닿는다.

내원야영장에 머물며 지리산 둘레에 자리한 보고들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지리산 자락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비가 자주 내린다.

캠핑의 낭만인 우중 캠핑을 경험하려면 달궁야영장에서 비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비 오는 날 캠핑장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다.

텐트 지붕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어느 재즈 연주보다 감미롭다.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드럼이 어우러진 빗소리 사이사이로 귀뚜라미의 바이올린 솔로 연주가 어우러지며 잊지 못할 낭만 연주회를 선사한다.

커피 한잔 들고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온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어도 좋고,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즐겨도 좋다.

우중 캠핑이 길어져 지루해진다면 떡볶이나 부침개 등 비 오는 날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보자.

우중 캠핑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조건이 있다. 무엇보다 바닥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질퍽거려 흙이 튀면 낭만 뒤에 고통이 따른다. 달궁야영장은 걱정 없다.

바닥이 아주 고운 파쇄석으로 되어 있어 물 빠짐이 좋고, 흙이 튀지 않아 비가 온 뒤에도 장비 상태가 깨끗하다. 바로 우중 캠핑의 최적지인 셈이다.

한국전쟁 시기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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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부산 하면 해운대와 광안리, 부산국제영화제를 떠올린다면 부산에 안 가봤거나 부산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부산의 속살을 살펴보면 예상외로 매력 있는 여행지가 넘쳐난다.

광복에서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전후 어렵던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장소도 그중 하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고향을 등지고 부산으로 내려온 건 피란민뿐만 아니다.

수도도 옮겨져 부산이 임시 수도(1950~1953년)가 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에 있던 경남도지사 관사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며 집무를 수행하고, 국빈을 맞았다.

지금은 이곳이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꾸며져 전시에 대통령이 사용하던 유품과 각종 사진 자료를 전시한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임시 수도 시기의 대통령 관저와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부산 경무대라 불리는 대통령 관저는 1926년에 경남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된 외관에 네모반듯한 창이 여러 개 있고, 잘 손질된 정원수를 보면 일본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내는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던 때의 구조와 분위기 그대로다.

1층은 대통령이 정부 각료들과 회의하고 외교 업무를 보던 응접실, 대통령 내외가 사용하던 자개장과 반닫이 등 가구가 놓인 내실,

책을 읽고 나라의 미래를 구상하던 서재, 거실, 식당과 부엌 등으로 꾸며졌다.

‘증언의 방’에서는 한국전쟁 때 특공대 요원으로 첩보 수집과 인민군 생포 임무를 수행한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2층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방 부대와 훈련소를 시찰하면서 입은 방한복,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은 코트 등 부부의 유품과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자리한 전시관은 1987년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검찰청사가 이전하면서 2002년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이 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열차 모형,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아버지의 위문편지, 부산에 자리 잡은 피란민이 생활하던 판잣집,

일거리를 찾아 나선 피란민, 피란 학교의 모습 등 당시 피란민의 삶과 한국 경제의 실상을 보여준다.

중구 대청산 자락의 중앙공원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이 모여 산 판자촌이 있던 곳이다.

중앙공원에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뒤 1945년 8월 15일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에 항거한 부산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 수 있는 부산광복기념관이 들어섰다.

규모가 작고 전시물도 많지 않지만

부산의 3·1운동, 동래장터 독립만세운동,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등에 대한 기록물이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애국 계몽 운동, 사회 문화 운동, 학생들의 독립운동 등 광복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사 전반에 대해 이해를 돕는 자료가 있다.

위패 봉안실에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431명(2015년 5월 현재)의 위패를 봉안해 그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린다.

감천문화마을도 한국전쟁과 인연이 깊다.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으로 가득 찼고, 집 한 칸 없는 피란민은 산기슭에 작은 집을 지어 몸을 누였다.

감천문화마을도 이때 생겼다.

1950년 태극도 교주 조철제가 피란한 신도들과 옥녀봉 아래 집단 거주지를 형성한 것이 감천문화마을이다.

산비탈을 개간하면서 슬래브 지붕을 얹은 계단식 주택을 지었고, 앞집이 뒷집의 조망을 가로막지 않으며, 모든 골목이 이어져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흘렀어도 달동네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했고, 지붕은 파란색과 분홍색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 색감이 풍부해졌다.

여기에 마을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지역 예술인과 마을 주민이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동네를 만들었다.

미로 같은 골목은 불편함보다 옛 추억과 재미를 주는 길이 되었고, 낡고 허름한 집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처럼 다가왔다.

구석구석 멋진 미술 작품이 더해져서 감천문화마을은 지붕 없는 거대한 미술관이 되었다.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바다 공부 어렵지 않아요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

“바다는 미래다. 그 깊이는 미답이요, 그 힘은 헤아릴 길 없고, 그 수평선은 끝 간 데 없다. 바다는 역사다. 생명은 여기에서 돋아나고 문명은 여기에서 자랐다.

역사의 열매 이것이 미래다. (중략) 젊은이여, 가자 바다로! 그 무한한 가능성과 자원을 찾아서.

그 장대 섬미한 자연에 마음을 싣고, 인류 행복의 근원을 캐내리.” ― <젊은이여 바다로>, 《해양명시집》(해문출판사, 1998) 중에서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인간이 동경하는 영원성의 상징이다.

그 속에서 역사가 시작되고 문학이 피어난다.

끝없는 바다와 험한 뱃길에는 사람들의 환희, 희망, 좌절, 영광의 노래가 담겨 있다.

더 나아가 바다는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무궁한 가치이자 미래의 삶의 터전이다.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은 우리가 바다를 알고 그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물론, 즐거운 학습과 체험의 기회를 통해 해양 개척의 비전을 제시하는 학습공간이다.

지난 2012년 7월 9일 부산 영도구에 국내 최대의 해양문화공간인 국립해양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나의 바다, 우리의 미래’라는 콘셉트로 바다의 문화, 역사, 생물, 자원, 과학 등 해양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 최초의 종합 해양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도착하면 멋진 외관에 놀란다.

물방울이 떨어져 튀는 모양을 형상화한 세련된 모습이 우주기지를 연상케 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최첨단 해양기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

과학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박물관에 들어서서 먼저 3층으로 향한다. 4층으로 된 전시공간 중 가장 핵심이자 인기 있는 공간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름 11m의 대형 원통 수족관이다.

300여 마리의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가오리가 화려하게 유영하며 관람객을 유혹한다.

터널형이라 바다 속을 걸으며 물고기를 보는 느낌이다.

비싼 입장료를 치러야 들어갈 수 있는 아쿠아리움에서 볼 수 있는 시설이라 수족관 앞은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수족관 뒤로 조개, 성게, 불가사리 등 어린이들이 바다 생물을 만져볼 수 있는 해양생물체험관, 유람선을 직접 조종하거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요트를 운전해보는 해양체험관이 이어진다.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해양생물과 접촉하고 해양 레저를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바다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다.

눈요기로 수족관을 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항해선박, 해양역사인물, 해양문화를 관람할 차례다.

우리 배의 생김새, 우리 배가 누빈 바다, 교류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상적인 것은 입구에 놓인 커다란 목선이다.

조선통신사들이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간 열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오가는 데 사용한 배를 실물 크기의 절반으로 복원한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유선형이나 선수가 뾰족하지 않고 평면이며 밑바닥은 평평한 평저선이다.

바닥이 V자형인 첨저선은 해류 변화에 민감해 좌초 위험이 높아 서·남해안처럼 해류가 거칠고 암초가 많은 우리 바다에서는 해류의 영향을 덜 받는 평저선을 이용했다.

이 외에도 떼배, 통나무배, 널빤지배 등 다양한 선박 모형을 전시해 우리나라 선박의 발달 과정을 소개한다.

조선통신사선 앞에 전시된 지구의와 천구의, 해도첩 등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이들 전시물은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지구의는 1797년, 천구의는 1790년에 항해를 위해 제작되었다.

주목할 점은 동해를 ‘한국해(MARE COREA)’, 대한해협은 ‘한국해협(Fretum Corea)’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도첩은 1646년 영국의 유명 지도제작자 더들리(Dudley)가 해도만을 모아서 만든 세계 최초의 해도첩인 《바다의 비밀》 초판본이다.

근대 지도제작법의 시초가 된 메카토르 방식으로 그린 전 세계 해도 총 220장과 해양 측량 방법과 기술에 대한 설명서 146장이 들어 있다.

여기서도 동해를 ‘한국해(MARE DI CORAI)’로 표기하고 있다.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

해를 품에 안다 천수만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을숙도는 낙동강과 남해가 들고나는 낙동강 끝자락에 자리한 하중도(河中島)이다.

1916년경 진우도·대마등 등과 함께 등장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에 속한다.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하단역까지 지하철로 20분 남짓, 하단역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만 이동하면 을숙도에 닿는다.

거리만 놓고 보자면 그리 멀지 않지만 남포동이나 해운대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조금은 생소한 공간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매년 겨울 뉴스에서 ‘철새’와 함께 을숙도라는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철새들의 휴식지로 더 친근한 을숙도를 찾았다.

사람들보다 철새들에게 유명할 것 같은 을숙도. 철새들은 어째서 이곳을 찾는 것일까.

‘을숙도(乙淑島)’라는 이름부터 새와의 인연을 눈치 챌 수 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낙동강이 먼저다.

을숙도가 낙동강 하구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 함백산(1573m)에서 발원해 영남 전역을 위아래로 관통해 남해로 흘러간다.

1300리, 한반도에서 압록강(803km) 다음으로 긴 물줄기다.

함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안동 부근에서 반변천 등의 지류와 합류와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는 점촌 부근에서 내성천과 영강을 품고 남쪽으로 향하다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을 받아들인다.

합천과 창녕을 지날 때 까지 남류하던 물줄기는 함안 부근에서 남강과 합수하며 동쪽으로 물길을 바꾼다.

밀양강을 지나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물줄기는 부산을 지나 남해 짠물과 닿는다.

영남 전역을 관통한 낙동강 줄기가 강의 일생을 마치고 남해바다와 몸을 섞기 전, 낙동강 하굿둑이 있는 그곳에 을숙도가 있다.

기나긴 물길을 흘러온 강줄기는 모래 등의 퇴적물도 함께 쌓여 강 하구에 이르러 유속이 느려진다.

긴 여정에 지쳤는지 힘이 빠진 모양이다. 흐름은 느려졌지만 물줄기는 쉬지 않고 이어지니 퇴적물 역시 흩어질 틈 없이 쌓인다.

이렇게 강 하구에 형성되는 퇴적지형을 삼각주라고 한다. 삼각형과 닮은 모양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풍부한 퇴적물로 이루어진 만큼 영양가 넘치는 비옥한 땅이다. 이곳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가 대표적인 삼각주에 속한다.

드넓은 김해평야는 인간을 먹이고 강 하구의 모래사주는 철새들의 휴식처가 된다.

강의 하구 즉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퇴적지형, 모래사주는 늘어난다. 을숙도도 그 중 하나,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하중도이다.

비옥한 토양에는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짠물과 민물이 뒤섞이니 어패류도 다양하다.

넉넉한 공간에 먹이까지 풍부하니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이 쉬어가기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1950년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덕분에 을숙도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1966년의 일이다.

하지만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낙동강하구둑의 완공과 함께 섬이 공원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들의 휴식처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뀌어갔다. 낙동강하구둑 상단 일응도와 하단 을숙도가 하나로 된 것도 이즈음 이었다.

해를 품에 안다 천수만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해를 품에 안다 천수만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해를 품에 안다 천수만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사계절 숲체험이 가능한 편백나무숲 우드랜드

황도의 해돋이는 기러기 떼의 편대비행과 함께 시작된다.

먼동이 틀 무렵 황도 바닷가에 서면 기러기 떼의 울음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천수만의 간월호와 부남호에서 겨울을 나는 기러기 떼, 가창오리 떼는 참으로 부지런해서 이른 새벽부터 V자 편대 비행을 하거나 군무를 시작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건만 겨울 철새들은 저마다 방향을 잡아 아침먹이를 찾아 나선다.

황도 동쪽 편 해안길이나 선착장 방파제에서 천수만 건너편으로 새벽 공기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불빛이 보인다.

간월도 상가에서 뻗어 나오는 불빛이다.

그 불빛의 남쪽 끄트머리를 유심히 바라보면 간월암이 자리 잡고 있다.

간월암 새벽 예불의 목탁소리가 바다를 건너 해돋이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귀에까지 들리는 듯하다.

안면도와 홍성, 보령 사이에 깊숙이 들어온 천수만은 물안개가 자주 낀다.

해가 뜨기 전 자욱한 물안개를 헤치고 작은 고깃배들이 통통거리면서 잔잔하기 이를 데 없는 천수만을 헤엄친다.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시적인 모습이다.

황도 바닷가에서 체험하는 해돋이 감상의 즐거움은 해가 완전히 홍성의 야산 위로 솟아올랐어도 끝나질 않는다.

아침 햇살을 가득 받아 한없이 따스하게만 느껴지는 갯벌로 시선을 두면 굴을 캐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고 나오는 황도 주민들의 부지런한 삶이 파인더에 들어온다.

지난여름 바지락을 캐느라 험해진 그들의 손마디는 겨울이 되어서도 고와질 틈이 없다.

그들은 한겨울에도 천수만 굴을 캐기에 바쁘다. 이곳 굴은 남해안 지방의 굴과 달리 크기가 자잘하다.

비록 몸체는 작지만 썰물 때 햇볕을 많이 받아서 풍미가 그윽하다고 주민들은 자랑한다.

황도 바닷가에서 일출 감상을 끝내고 돌아 나올 때 지금은 폐교된 황도초등학교를 지난다.

2003년 문을 닫은 황도초등학교의 담과 건물에는 앙증맞은 명패와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발걸음을 붙잡는다.

여행객들 역시 유년시절로 돌아가 무너져버린 교사와 주차장으로 변한 운동장을 돌면서 추억에 잠긴다.

황도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황도붕기풍어제’ 사당을 볼 수 있다.

사당 앞에 선 수령 2백 년의 홰나무 뒤로 풍어제 유래비가 세워져 있고 그 뒤에 사당이 자리를 잡았다.

고기가 많이 잡히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붕기풍어제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부터 초사흗날까지 벌어지는 민속 행사이다.

황도붕기풍어제는 1977년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민속놀이로 지금도 설날 다음날이면 각지에서 풍어제를 구경하려는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황도에서는 붕기풍어놀이가 가장 큰 연중행사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주민이 참여한다.

제례는 피고사를 시작으로 해서 본굿, 뱃기경주, 지숙경쟁, 뱃고사, 강변용신굿으로 이어진다.

사계절 숲체험이 가능한 편백나무숲 우드랜드

사계절 숲체험이 가능한 편백나무숲 우드랜드

사계절 숲체험이 가능한 편백나무숲 우드랜드

서해의 땅끝 해가 뜨고 지는 충남 당진 왜목마을

편백나무숲에 드니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사이로 새어나오는 아침 햇살은 몽환적인 편백나무숲에 조금씩 생기를 불어넣는다.

햇살 한 줌만으로 어두운 숲이 금세 환해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울울창창 온통 편백나무다.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한 장흥의 우드랜드에서는 아침 일찍 숲에 드는 것이 좋다.

초록이 묻어날 것만 같은 신선한 공기와 그윽한 나무냄새, 안개 속에서 베일을 벗는 편백 군락을 보려면 아침나절이 제격이다.

장흥군 억불산 기슭에 자리한 우드랜드는 약 100ha에 40년생 이상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숲을 이룬 건강휴양촌이다.

우드랜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시설이 임올대와 억불대이다.

임올대는 편백나무로 만든 목공예와 가구를 전시, 판매하는 전시관이고, 억불대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목공소 같은 곳이다.

본격적인 편백나무숲은 이곳을 지나 데크로드를 따라 100미터 이상 올라가야 시작된다.

편백나무숲의 기점은 목재문화체험관이다.

이곳은 전시와 체험공간으로 나뉘는데, 전시관에는 숲과 나무에 관한 내용을, 체험관에는 목재문화 전반에 관한 내용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목재문화체험관을 나오면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갈리고, 오솔길을 따라 숙박이 가능한 황토흙집(4동)과 통나무집(7동), 전통한옥(4동)이 기슭을 나눠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 한옥 한 채는 50여 명이 단체로 묵을 수 있는 대규모 기와집이다.

소박하게 지은 황토흙집 한 채는 드라마 <대물>에서 고현정이 머물던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탔다.

이들 숙소는 모두 편백나무 등 친환경 자재만을 사용하여 지은 생태주택으로 일명 ‘숲 치유 체험장’으로 불린다.

우드랜드에서는 목공건축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다.

체험장은 강의동과 실습동, 기계실 등을 갖추고 목공예와 함께 목조 건축의 기술을 익히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편백톱밥 찜질방과 소금의 집도 눈길을 끈다.

편백톱밥 찜질방은 마치 거품목욕을 하듯 편백나무 톱밥 속에 묻혀 심신을 안정시키고, 아토피 등 환경성 피부질환을 치유하는 곳이다.

소금의 집은 소금의 살균, 탈취, 정화 효과를 체험하는 소금동굴과 피부미용에 좋은 천일염 마사지를 할 수 있는 소금 마사지방,

체내의 독소 배출을 도와주는 솔트디톡스 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는 소금 해독방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드랜드의 매력은 숲체험에 있다. ‘치유의 숲’으로 이름붙인 이곳의 숲체험은 간단하다.

데크로드를 따라 편백나무숲을 그저 천천히 걷는 것이다. 걷는 것만으로 삼림욕 효과는 충분하다.

우드랜드의 데크로드는 억불산 정상부 인근까지 설치되어 있는데, 놀라운 점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이 정상부까지 데크로드를 따라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계단을 만들지 않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지그재그로 데크로드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나 노약자에게도 치유의 숲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사실 편백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피톤치드(나무가 병충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출하는 항균성분)를 몇 배나 더 방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두 배 이상의 피톤치드를 생산하는데, 편백나무는 다른 침엽수종인 잣나무나 소나무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피톤치드를 내뿜는다고 한다.

특히 편백나무는 천식이나 아토피와 같은 환경성 질환에도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실험 결과에 따르면 나무가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계절은 여름이고, 시간대는 낮 12시 전후라고 한다.

당연히 이 시간대에 삼림욕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다.

보다 적극적인 삼림욕을 원한다면 일명 누드삼림욕장이라 불리는 ‘비비에코토피아(풍욕장)’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겨울에는 운영을 하지 않고 관람만 가능하다.

누드삼림욕장이라 해서 누드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곳을 이용할 때는 얇은 종이옷을 걸치고 들어가게 돼 있다.

물론 이 안에서 신체를 노출하는 것은 자유이고, 풍욕의 효과를 높이려면 노출을 하는 것이 더 좋긴 하다.

서해의 땅끝 해가 뜨고 지는 충남 당진 왜목마을

서해의 땅끝 해가 뜨고 지는 충남 당진 왜목마을

서해의 땅끝 해가 뜨고 지는 충남 당진 왜목마을

장흥 남포마을 영화 축제의 마을에서 맞는 일출

매일 뜨고 지는 똑같은 태양이건만 그래도 한해의 마지막 태양이 지는 것을 보면 어쩐지 나의 한해도 마무리가 되는 것만 같다.

새해의 첫해 역시 마찬가지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올해는 사람 되겠다고 얼마나 간절하게 외쳤던가.

2013년이 떠나가는 지금, 지는 태양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러 가보자.

2014년 새해맞이는 보너스다. 해가 뜨고 지는 곳, 충남 당진 왜목마을에선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삐죽 튀어나온 서해의 땅끝, 왜목마을이라 하지요

해돋이라 하면 으레 동해라고 여기던 이들에게 서해 해돋이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직접 본 이들은 동해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면서도 서정적이라는 평을 내 놓는다.

게다가 같은 장소에서 뜨고 지는 해를 볼 수 있으니 한해를 정리하는 동시에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을 만끽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왜목마을은 곶(串)처럼 위로 툭 튀어나와 양쪽이 바다에 안겨 있다.

서해땅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이유다.

땅의 모양이 가느다란 ‘왜가리 목’을 닮았다고 왜목마을이라고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의 목을 뜻하는 와목(臥木)에서 유래했다고도 전해진다.

‘왜목마을’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면 지도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충남 당진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화성과 평택을 마주한다.

아산만 위에 놓인 서해대교가 물길에 헤어진 이들을 잇는다.

당진에 이어 서산 태안 보령을 지나 서천까지 이어진 충남은 금강 줄기가 전북 군산 사이를 파고들 때까지 서해안을 따라 자리한다.

금강이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을 나누듯 아산만은 경기 평택과 충남 당진의 경계가 된다.

당진은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충남의 서해를 품고 있다.

실제로 왜목마을에서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국화도 등의 섬은 모두 경기도 소속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가깝지는 않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당진IC로 빠져나와 약 30km 정도 달려야 왜목마을에 닿는다.

송악IC에서 석문방조제를 따라가는 방법도 있다.

왜목마을로 향하다 보면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 열채도 되지 않는 초가집들이 자리한 한적한 어촌이었다는 사실이 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해돋이와 해넘이 풍광으로 먼저 사진가들에게 알려진 왜목마을.

지금처럼 관광객들이 몰려든 것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았다.

해넘이 해돋이 모두 볼 수 있는 석문산, 그 외 사진 포인트도 여럿

해넘이와 해돋이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찾은 당진 북쪽 끝자락의 왜목마을은 한적했다.

짠물이 빠져나간 갯벌위로 몇몇의 배들이 갈매기와 함께 졸고 있었다.

굴을 캐고 낙지를 잡는 마을 주민들 손놀림만 바쁠 뿐이다. “부지런만 떨면 이거 잡아서 팔고 반찬도 해 먹는다”며 찬바람에도 허리 한번 펴지를 않는다.

“맛좀 보라”며 건네준 굴은 씨알은 작지만 짭조름하면서도 달디 달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찬거리를 구하러 집앞 바다마당으로 나간다.

해돋이 축제 전이기 때문일까. 예전의 초가집 대신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자리한 뭍도 기대만큼 번잡하지는 않다.

왜목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오작교다.

잔잔한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져 연인들의 견우직녀 놀이를 부추긴다.

해안선을 따라 야외공연장이며 벤치 등이 자리해 천천히 걸으며 바다 구경하기에 좋다.

걷다보면 해양경찰서 옆으로 석문산 입구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동네산’ ‘뒷산’이라고 부르는 해발 70여m의 산이다.

왜목마을에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는 포인트로 꼽힌다.

매년 새해 첫날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사진을 건지고 싶다면 일출일몰시간을 체크해서 올라가보자. 넉넉하게 잡아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